이준익 감독 "'왕의 남자'가 족쇄..발가벗었다"(인터뷰)

전형화 기자  |  2010.04.22 10:30
이명근 기자 qwe123@ 이명근 기자 qwe123@


이준익 감독이 또 한 번 사극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황산벌' '왕의 남자'에 이어 다시 과거를 빌어 현재를 풍자했다. 29일 개봉하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이준익 감독이 '님은 먼곳에'의 부진을 딛고 절치부심한 작품.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임진왜란 직전 혁명을 통해 새 세상을 이루려는 혁명가 이몽학과 친구의 욕심을 경계하는 맹인검객 황정학, 그리고 맹인검객을 사부로 모신 서자견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준익 감독은 박흥용 화백의 동양화 같은 원작을 극적으로 재구성해 스크린에 옮겼다.

그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 등장하는 견자를 통해 꿈을 유배당한 88세대를 그렸다. 또 이몽학을 통해 욕망이 구름처럼 피어나 달이라는 목적을 잃어버린 남자도 이야기했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황산벌'과 '왕의 남자' '라디오스타' '님은 먼곳에' 등 이준익 감독의 전작과 닮은 듯 하면서도 철저히 다르다. 낯설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다. 이준익 감독은 "나를 철저히 넘어서려 했다"고 했다.

-'개새끼'라 자조하는 견자의 성장담이 담겨 있는데.


▶요즘 젊은이들을 88세대라고 하지 않나. 휴대전화 약정에 묶여있듯이 돈의 논리에 묶여 있어 꿈을 잃어버렸다. 그런 현실을 견자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견자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서자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몽학에 죽자 복수를 꿈꾼다. 하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다. 그래서 '넌 꿈이 없어서 이몽학을 못 이긴다'는 대사가 나오는 것이다. 요즘 세대는 견자세대다. 그런 것을 관객에 보여주고 싶었다.

-원작은 철저히 견자의 성장담을 그린 반면 영화는 이몽학과 황정학의 대립이 큰 틀을 이루는데.

▶대중영화 감독으로서 한 사람의 성장담을 50억원을 들여서 찍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다양하고 극적으로 만들어야 관객과 소통할 수 있고. 황정민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나랑 차승원은 나중에 조연상 후보에 오르고 견자를 연기한 백성현은 신인상 후보에 올랐으면 좋겠다고. 이 영화 등장인물은 그런 관계인 것이다.

-전작들과 닮은 듯 하면서도 다르다. 은유적이지 않고 직설적인데. 이야기를 쉽게 풀어냈고.

▶전작을 은유적으로 풀어냈다면 이번에는 직유적으로 풀어내려 했다. 산을 돌아가는 게 아니라 터널로 바로 통과하는 듯한. 터널을 지나는 동안 암흑이지 않나. 끝에는 빛이 보이고. 그게 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님은 먼곳에'가 관객과 많은 소통을 하지 못한 데 따른 반성인가.

▶그런 것도 없진 않다. 하지만 이런 거다. 원작은 견자의 성장담과 견자와 황정학의 버디다. 그런데 버디로 풀면 '라디오스타'고, 로드무비로 풀면 '님은 먼곳에'고, 인물을 감정을 쌓아올리면 '왕의 남자'를 복제한 것 밖에 안된다. 관객이 '왕의 남자' 답습이라고 느끼지 않기 위해 이야기를 철저히 해체했다.

-이준익 문법에 익숙한 관객들에겐 모험일 수 있는데.

▶알고서 선택한 것이다. 배우들도 모두 처음하고, 스태프도 전부 나와 처음 일하는 사람들로 바꿨다. 위험한 선택인 줄 알지만 그렇다고 내가 싼 똥에서 콩나물을 빼 먹을 순 없잖나. 과거의 내 영화가 족쇄인 것 맞다. 관객들은 내 문법에 익숙해져 있다. 그렇기에 다른 방식으로 한 것이다. 난 확신범이다. 발가벗고 관객과 만난 것이다.

-현실에 대한 풍자는 여전한데. 특히 왕을 정점으로 동인과 서인의 대립은 코미디에 가까운데.

▶당연히 이번에도 사회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담겨있다. '황산벌'은 DJ정부 시절 기획해 노무현 정부 시절 선보였다. '왕의 남자'는 노무현 정부 시절 기획되고 개봉됐고. 이번에는 MB정부에서 만들었으니깐. 구름이 달을 가린다고 달이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이 헛된 욕망에 휘둘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이명근 기자 qwe123@ 이명근 기자 qwe123@


-극 중 이몽학은 혁명을 꿈꾼다. '브레이브 하트'처럼 묘사할 수도 있었을텐데 실패한 혁명으로 그려지는데.

▶거짓 희망을 주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점점 판타지 영화에 빠지는 것은 거짓 희망을 영화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를 하면서 할리우드처럼 가짜 혁명을 팔아먹고 싶지 않았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 이어 또 사극인 '평양성'을 기획하는데. 왜 사극인가.

▶요즘 한국영화에 사극을 다루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나. 해외에선 일본이나 중국사극은 다 알아본다. 그들의 문화를 아는 것이다. 우리 문화를 알려주고 싶었다. 또 과거를 통해 현재를 그리고 싶었고. 사실 '님은 먼곳에'를 내놨을 때 젊은 관객들이 불과 40년전인 월남전을 모르더라. 충격이었다. 그래서 아예 먼 곳으로 달려간 것이다.

-차승원과 황정민은 검증된 배우지만 견자를 맡은 백성현은 의외인데.

▶백성현은 아역부터 시작해 연기가 검증된 배우다. '왕의 남자' 때도 이준기와 마지막까지 저울질했고, '즐거운 인생' 때도 고민했었다. 이번에 기회가 닿았다. 그런 그를 놓고 제2의 이준기 운운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백성현은 연기적으로 아주 제 몫을 다했다.

-멜로는 좀 약하더라.

▶할 수 없잖나. 연출DNA는 안바뀌는데.(웃음) 여배우들이 감독님은 멜로 못하잖아요라고 놀리더라. 이번에 옷은 바꿔 있었지만 내 DNA는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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