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중훈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유동일 기자 eddie@
박중훈은 익숙하다. 그러나 볼 때마다 새롭다. 친근하고 유쾌한 배우 박중훈이 신선하고 흥미로운 작품으로 관객을 찾는 탓이다.
개봉을 앞둔 그의 신작 '내 깡패같은 애인'(감독 김광식)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그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때리는 것보다 맞는 데 익숙한, 정 많은 3류 깡패 오동철로 분한 박중훈은 자신의 매력을 총망라한 듯한 이 작품에서 신나게 연기를 펼친다. 보는 사람도 신난다. 웃음 가운데 코 끝 찡해지는 공감을 선사하는 박중훈의 특기 역시 여전하다.
햇살 좋은 어느 오후, 삼청동의 카페에서 만난 박중훈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의 사람 좋은 웃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입심은 그대로였다. 함께하는 사람을 신나게 하는 에너지 역시 그대로였다.
-영화 잘 봤다. 박중훈과 '딱'이더라.
▶착착 붙죠? (웃음) 몸에 착 맞는 캐릭터를 만났다고 해야 되나. 연기 하면서도 좋았다. 감독이 좋았다. 디테일하면서도 정의파에 양질이고… 아주 좋은 감독을 만났다. 감독과 굉장히 많은 대화를 했다. 현장에 가면 바로 찍기만 하면 될 정도로 많은 부분 생각을 맞췄다.
-신인 감독과의 작품인데.
▶제 필모그래피를 보면 신인 감독이나 두번째 작품을 하는 감독과 호흡을 맞춘 게 꽤 된다. 박광수 감독과 장선우 감독의 데뷔작에 제가 출연하지 않았나. 신인감독과의 작업을 원래 두려워하지 않는다. 즐겁다.
-체중감량 때문에 얼굴에 날이 섰던데.
▶감량할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스스로 4가지 외향의 변화를 줬다. 살을 빼고, 머리를 깎고, 수염을 기르고, 얼굴을 태우고. 오래된 배우의 낯선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고 할까. 신인배우가 그 역할을 했다면 감량할 필요가 없었을 거다. 익숙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거다. 사실 얼굴을 태워서 더 느낌이 강해진 거지 지금이랑 영화 찍을 때랑 1kg 정도 차이다.
배우 박중훈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유동일 기자 eddie@
-이번 작품도 그렇고 '럭셔리'보다는 '루저' 역할을 많이 했다.
▶어떤 영화든 루저가 아닌 엘리트들이 극에서 주인공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럭셔리한 엘리트들은 조연이나 주조연을 하는 경우가 많지, 주연을 한다 해도 무너지는 엘리트가 대다수다. 따지고 보면 하자가 있어야 주연을 한다. '해운대'에서 맡았던 김휘 박사만 해도 가정적으로 불행하고 하자가 있지 않았나. 하자가 없다면 매력이 없는 거다. 이건 비단 박중훈의 영화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서민적인 이미지가 배우로서는 더 좋겠다.
▶배우로서 감사하는 부분도 있다. 제가 워낙 럭셔리하지 않은 이미지였는데, 2000년대 들어서 서민적인 이미지가 없어진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그런 서민적인 이미지가 '라디오스타'부터 다시 생긴 것 같다. 확 측은해지면서 전에 없던 동정표를 획득하고…(웃음). '박중훈쇼'도 거기에 도움이 된 것 같다.(웃음)
-배우 박중훈의 사생활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도 거기에 한 몫을 한 것 같다.
▶배우가 연기로 형성되는 이미지 외에 개인적이 이미지가 있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과도한 사생활 노출은 신비감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역할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점에서 좋지 않은 것 같다. 유명하다는 데서 오는 불편함이 크다. 인기와 사랑을 받으며 불편함을 감수하는 셈인데, 배우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인기와 사랑 없이 유명하기만 하다면 불편하기만 할 거다.
-요새는 의지와 상관없이 사생활이 유명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인터넷이 워낙 발달돼서.
▶그럴 수 있다. 아마 인터넷이 발달된 시절에 20대를 보냈으면 나는 매장당했을 거다.(웃음)
-그러고 보면 배우 박중훈이 지금까지 오는 데도 많은 일이 있었다. 순탄하지만은 않았는데.
▶밀물과 썰물의 공통점은 다 파도를 타고 물이 들어오고 나간다는 거다. 인생 그래프도 파도처럼 업다운을 하면서 움직인다. 그래프가 수직으로 상승할 수는 없다. 그 전체를 봐야지 파도를 보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전체 그래프 상으로는 잘 상승곡선을 탄 것 같다.
수많은 업다운을 하는 게 인생이다. 모든 것에서 초월할 수는 없지만 일희일비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파도가 없다면 서핑도 못하지 않겠나. 풍랑도 만나고, 고요한 바다도 만나고, 아름다운 바다도 만났다가, 관심 밖의 바다도 됐다가 하는 거지.(웃음)
배우 박중훈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유동일 기자 eddie@
-정유미와의 호흡은 어땠나. 사람들이 충무로에서 제일 말 잘하는 배우하고 제일 말 못하는 배우가 만났다고들 했다.
▶정유미씨가 일반적이지는 않다.(웃음) 영화에서야 대사가 있고 상황이 있으니까 그런 일이 없었는데, 낯도 좀 가리는 것 같고 독특했다. 순수해서 그렇다. 개중에 4차원으로 보이려고 연기하는 사람이 있고,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는데, 후자다. 4차원인 척 하는 가증스러움은 없잖나. 그런 거 닭살이다.
-박중훈은 충무로에서 손꼽히는 말 잘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감독들도 그렇고 말 잘하는 사람이 작품도 잘 만드는 경우가 많다.
▶말의 논리가 30%가 안 된다. 사람을 설득시킬 땐 논리가 아니라 감성으로 설득하는 거다. 눈빛, 표정, 몸짓, 태도 등등. 연기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이 타당하냐가 아니라 주인공의 감성을 따라갈 수 있느냐가 문제다. 논리는 정확한데 공감이 안될 땐 내가 왜 밀어주나 하는 생각이 들고, 감성만 있을 땐 논거가 약하니까 공허하다. 스토리나 논리적 배경이 약 20%라면 진심이 어떻게 보이느냐가 80%가 될 거다. 그러고보니 우리 영화도 그런 영화다. 논리와 진심이 잘 어우러진.
-영화를 보는 20대 관객들은 88세대의 절망에 공감할 것이고, 30·40대들은 박중훈의 모습에 또한 공감할 것 같다. 취업 때문에 고민하는 20대를 보면서 젊은 시절을 떠올리지는 않았는지.
▶영화가 잘 된다면 '다양한 계층에게서 사랑받겠구나' 했다. 40대야 '박중훈의 느와르다' 하고 좋아할 수도 있겠고. 나는 386세대다. 취업에 대한 걱정을 안 하던 세대다. 하지만 요즘 취업을 앞둔, 혹은 방금 취업한 20대들에게는 악몽 같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거 아니냐. 각기 노력과는 별개로 사회의 부조리 때문에 정상적인 취업을 못한다는 게 얼마나 힘들겠나. 영화 속에서는 무식한 깡패가 아주 본능적으로 위로를 해 주는데, 내가 배우로서 수많은 오디션에 떨어졌다는 데서 굳이 유추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아픔을 짐작할 수 있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그런 시대의 불안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