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넘버원'의 소지섭 <사진제공=MBC>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60년을 맞는 해다. 이를 겨냥한 다양한 기획 중에서도 눈에 띄는 작품이 있다.
소지섭은 한눈에도 검게 그을린 모습이었다. 분장을 했다지만 1월부터 시작된 고된 촬영으로 분장을 지워도 그을린 피부는 여전하다 했다. 소지섭은 한국전쟁 발발 60년을 맞아 6월 23일 첫 방송을 앞둔 MBC 드라마 '로드 넘버원'(극본 한지훈·연출 이장수 김진민)의 주인공. 검정 고무신에 해진 옷을 입은 채였던 그가 잠시 뒤엔 날 서게 다려진 군복에 장교 모자까지 눌러쓴 채 나타났다. 60년을 아우를 20부작 드라마에서 그가 보여줄 다양한 모습을 짐작케 하는 순간이다.
소지섭은 '로드 넘버원'에서 연인을 위해 모든 역경을 헤쳐 나가는 주인공 장우 역을 맡았다. 오랜 연인인 수연(김하늘 분)을 위해 빨치산 전투에 참전했다 기적적으로 돌아오지만 수연은 장우가 죽은 줄로만 알고 엘리트 군인 태호(윤계상 분)와 약혼을 한다. 그리고 수연과 태호의 결혼 하루를 앞두고 장우가 돌아온 다음날이 1950년 6월 25일. 세 사람은 그렇게 격랑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로드 넘버원'은 100% 사전제작을 목표로 했던 촬영이 80% 가량 마무리된 상태. 줄거리만으로도 '모래시계', '여명의 눈동자' 등 시대의 비극과 사랑을 절절하게 다룬 작품들을 연상케 한다. 더욱이 연출자는 히트 멜로 제조기 이장수 PD와 '신돈', '개와 늑대의 시간'의 김진민 PD.
"6.26를 전제 하에 촬영을 했잖아요. 전쟁을 배제할 수 있지만 그 안에 이뤄지는 이웃들의 삶, 사랑, 우정이 더 크게, 더 많이 비춰질 거예요. 그게 아마 다른 전쟁물과 비교해 우리 작품의 강점일 거구요."
'로드넘버원'의 소지섭과 김하늘 <사진제공=MBC>
무엇보다 기대되는 것이 소지섭과 김하늘의 멜로 호흡이다. '로드 넘버원'은 처음부터 두 남녀 장우와 수연의 진한 사랑을 전제로 시작한다.
"정말 멜로를 전투신처럼 촬영했어요. 저도 찍으면서 놀랐다니까요."
소지섭의 말에 파트너 김하늘이 얼굴을 가리고 웃으며 어쩔 줄을 몰라한다. 이날 현장공개를 앞두고 취재진에게 공개된 예고편에서는 이미 두 사람의 베드신, 정확하게 말하면 헛간신이 잠시 등장한 터였다. "나중에 보면 야하기보다는 아름답게 비춰질 것"이라는 게 소지섭의 설명이다.
소지섭과 김하늘은 1996년과 1997년 같은 패션 브랜드 모델로 비슷하게 데뷔했지만, 사적으로든 작품으로든 만난 건 이후 '로드 넘버원'이 처음이다. 소지섭이 너무 바쁜 촬영 덕에 따로 술 먹으며 친해질 틈이 없었다고 털어놓자 김하늘이 "저희는 그냥 애정신을 하면서 친해졌다"고 덧붙였다. 이곳저곳에서 폭소가 터진다.
다만 노출신에서도 그의 단단한 근육질 몸을 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작정하고 근육을 뺐기 때문이다. 김진민 PD는 "'람보' 드라마가 아니다. 한국전쟁은 평범한 사람에게 닥친 전쟁인데, 근육이 나온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소지섭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작품보다 2∼3kg 몸무게를 뺀 것은 맞아요. 그 전에는 몸이 좋게 나왔잖아요. 일부러라도 그런 이미지를 버리고 싶었거든요."
취재진 사이에서 아쉬움 섞인 '그래도 몸매로 알아주는 배우인데' 소리가 터져나오자 그가 아예 두 손을 내젓고 나섰다.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주셔야 돼요!(웃음)"
'로드넘버원'의 소지섭 <사진제공=MBC>
100% 사전제작 드라마 제작이 녹록할 리 없다. 더욱이 두 연출자는 "한국 드라마 제작의 모범을 보이겠다"며 정해진 스케줄에 딱 맞춰 촬영을 이어가고 있다. 이장수 PD는 "우리 애들이 참 무던한 애들이에요. 나 같으면 안 할 것 같아요. 한번쯤 쓰러져주길 바랐는데 안 쓰러져요. 군소리 한 마디 없이 했어요"라고 농담 섞인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소지섭 역시 어려움을 털어놨다.
"장단점이 있어요. 기존 드라마는 방송 나가면서 반응을 보면서 맞춰 찍는 부분이 있는데, 이건 아니거든요. 하지만 전투신이라든지 많은 장면들이 완벽하게 짜임새있게 준비되지 않으면 촬영 자체가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에요. 차이가 있습니다. 재미있게 찍고 있죠. 어려움이 있다면, 작품을 순서대로 찍으면 감정선 따라가기가 어렵지 않은데 중간부터 찍으면 그걸 잘 모르게 돼서. 그게 참 어려워요."
이날 하루만도 그랬다. 소지섭은 전쟁에 나서기 전 순수했던 청년 장우가 돼 김하늘을 업고 해맑게 웃으며 냇물을 건넜다가, 몇 시간 뒤엔 군복을 차려입고 빡빡머리 동료들과 뒤엉켜 기마전을 벌였다. 체력적으로도 만만찮은 일이다. 더욱이 소지섭의 전작은 사막과 도시를 오갔던 대작 '카인과 아벨'. 소지섭은 무거운 작품, 힘든 작품을 일부러 골라 하는 걸까?
"무거운 작품을 왜 많이 하냐고 많은 분들이 그러세요. 그런데 예전에 보면 재밌는 작품도 많이 했고요, 시트콤도 했어요. 이번에는 재밌는 모습도 있거든요. 이 작품 하는 걸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아직은 양복을 차려입고 멋을 내고 하는 게 재미가 없어요. 천하게 옷을 입고 땅바닥에서 움직이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다음 작품도 그런 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로드넘버원'의 윤계상 김하늘 소지섭(왼쪽부터) <사진제공=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