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김기덕 임권택 김대우 장훈 김광식 감독(시계방향) <사진출처=영화스틸>
누구나 스승에 대한 기억 하나 쯤은 가슴에 품고 산다. 수학여행 때 술을 가르쳐 주신 은사님과 당시엔 쓰기만 했던 소주 맛. 스승의 날이면 소주 한 잔이 생각나는 이유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누군가에겐 모두가 선배고 스승인 법. 사랑과 은혜의 가르침은 극장가에서도 예외 없다. 극장가의 사제지간, 그 뜨겁고 질긴 인연을 거슬러 가봤다.
스승과 제자, 선의의 경쟁 - 이창동과 김광식
김광식 감독은 1997년 '우순경'이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되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2002년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의 조감독을 맡아 사제의 연을 맺은 그는 2008년에는 MBC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
이 두 사람이 선의의 경쟁을 벌이게 됐다. 지난 13일 이창동 감독의 '시'가 개봉한 데 이어 김광식 감독의 '내 깡패같은 애인'도 20일 개봉을 앞둔 것이다. '시'는 제 63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주목받고 있으며, '내 깡패같은 애인' 또한 88만원 세대를 조명해 눈길을 끌고 있다.
김광식 감독의 데뷔작 '내 깡패같은 애인'은 각박한 시대상과 소외된 '루저'들의 모습을 공감가게 그려내며 마냥 아름답기만 한 로맨틱 코미디로 남기를 거부한다. 쓰라린 일상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짚는 이창동 감독의 색깔이 묻어나는 부분이다. 다른 듯 어딘가 닮은 스승과 제자의 진검승부는 5월 극장가의 또 다른 볼거리다.
흥행에선 청출어람 - 김기덕과 장훈
'김기덕 사단', 장훈 감독은 2003년 10월 '사마리아'의 연출부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그는 '빈집', '활', '시간'의 조감독을 맡았으며, 2008년 저예산 영화 '영화는 영화다'로 입봉했다.
'영화는 영화다'는 김기덕 감독이 시나리오 뿐 아니라 제작 투자금까지 유치해 준 작품. 이쯤 되면 사제지간의 정이 깊어도 보통 깊은 게 아니다. 장 감독은 이러한 은혜를 갚기라도 하겠다는 듯 130만 관객을 동원하며 대형 신인 감독의 등장을 알렸으며, 제28회 영평상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과 나란히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작가주의 감독으로 유명한 김기덕과는 달리 '의형제'로 5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김기덕 감독의 최고 흥행작인 '나쁜남자'가 80만 관객을 동원했으니 흥행성적 만으로는 이미 스승을 앞지른 셈이다.
20년을 이어온 사제의 연 - 임권택과 김대승
충무로의 사제지간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1991년 '서편제'의 연출부로 영화를 시작한 이래 여전히 임권택 감독의 뒤를 묵묵히 따르고 있는 김대승 감독이다. 그는 임권택 감독 아래서 '태백산맥', '축제', '창','춘향뎐' 등의 작품을 거치며 내공을 쌓았으며, 이후 '번지점프를 하다', '혈의 누', '가을로' 등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물론 한국영화의 거목 임권택 감독의 제자가 그뿐만인 것은 아니다. 최근 '하녀'로 제 63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임상수 감독도 '장군의 아들' 시절부터 임권택 감독의 연출부로 활동했다. 그럼에도 '임권택의 제자' 하면 가장 먼저 '김대승'이 떠오르는 이유가 있다. 바로 스승의 뒤를 이어 제자들을 육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지난 3월 동서대 임권택영화예술대학 영화과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스승의 영화세계와 철학을 자신의 제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스승과 함께한 20년의 세월을 되새기고 그 유지를 계속해서 이어간다는 점에서 그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제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