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의 해변에서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장철수 감독이 환하게 웃고 있다.
장철수 감독은 신중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를 고르고 골라 입에서 내놨다. 그의 영화가 오랜 기다림 끝에 칸에 초청된 것도 이런 신중함 때문인 것 같았다.
장철수 감독이 16일(현지시간) 제63회 칸국제영화제가 한창인 프랑스 칸 해변에 위치한 영진위 부스에서 만났다. 그는 장편 데뷔작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이번 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돼 현지를 찾았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김기덕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장철수 감독의 장편 데뷔작. 서영희가 주인공 김복남 역을 맡았다. 이번 영화제에 초청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영화인 대부분은 깜짝 놀랐다. 그만큼 장철수 감독과 영화에 대한 정보가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지에서 시사회가 열린 뒤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장철수 감독은 시사회 직후 카이에 뒤 시네마, 프리미어 등 프랑스 언론을 비롯해 미국,벨기에,러시아 등 세계 20여곳의 매체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쇄도,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들뜰 법도 하지만 그는 차분했다. 인고의 시간을 거쳤기에 칸의 환호에 쉽게 휩쓸리지 않았다.
"영화를 찍고 난 뒤 배급사가 정해지지 않아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죠. 함께 스태프에도 미안하고 영화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것 같아 속상했어요."
행운은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에게 떨어지진 않는다. 장철수 감독에게 칸 초청도 어느 순간 다가온 행운은 물론 아니었다. 장 감독은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 출품작 공모 소식을 듣고 감독 버전 필름을 보냈다. 앞서 감독 버전이 아닌 필름은 배급사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은 뒤였다.
감독 버전은 프랑스 영화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전 편집장 샤를 떼송의 눈에 들었다. 샤를 떼송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을 적극적으로 추천했고, 현지 시사회에서도 직접 영화를 소개했다. 샤를 떼송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와 비슷하지만 또 다르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외딴 섬에서 낮에는 남편에 쥐어터지고 밤에는 시동생에 강간을 당하면서도 딸 하나만을 바라보고 미련스럽게 일만 하는 여인 김복남이 딸의 죽음을 계기로 그동안 자신을 짐승 취급했던 마을 사람 전체에 복수를 꾀하는 내용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초기작처럼 한 영화에 두 편의 영화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긴급출동 SOS'와 하드고어 무비가 한 편으로 묶여 있는 듯하다.
김기덕 감독의 자장에 있는 듯 하지만 장르적인 완성도가 빼어나다. 그건 김기덕 문하생으론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다. 또 김기덕 감독은 장철수 감독에 스승이자 은인이다.
장철수 감독은 일본에 영화공부를 하러 갔다가 우연히 김기덕 감독의 '섬'을 봤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다시 귀국, 김기덕 감독을 찾아갔다. 연출부가 빨리 떠나는 것으로 유명한 김기덕 감독 산하에서 '해안선'과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사마리아'를 함께 했다.
'의형제' 장훈 감독은 장철수 감독이 '사마리아' 조감독 때 뽑은 후배이기도 하다. 장훈 감독은 이후 상업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신부수업' 조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 뒤 본격적으로 장편 감독으로 데뷔하려 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영화로 사람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였지만 상업적이지 못할 것이란 편견에 기회를 잡을 수조차 없었다.
이때도 손을 내민 이는 김기덕이었다. 김기덕 감독이 단편을 연출해보라고 400만원을 지원해줬고, '천국의 에스컬레이터'를 만들었다. 그 작품을 보고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시나리오 작가가 함께 하자는 제의가 왔다. 이후 영진위에서 3억원을, 투자사에서 4억원을 받아 영화를 만들었다.
"대중적이지 않은 게 아니냐. 너무 김기덕 같은 게 아니냐고 하더라구요. 장르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설득해도 잘 안됐죠."
서영희를 만났다. 장철수 감독은 "이 영화로 억압받는 여인들이 한을 해결하는 그런 대리만족을 시켜주고 싶었다"면서 "서영희는 그런 모습을 너무나 잘 그려냈다"고 말했다.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여인"이었다는 장 감독은 "그 중에서 어머니가 7할이었다"고 했다. 장철수 감독은 6살 때까지 전기도 안들어왔던 강원도 영월의 시골에서 자란 터라 가부장적인 모습들을 보고 자랐다. 그렇게 어렵게 살던 어머니, 누이들에 영화로 위로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장철수 감독은 두 편의 영화가 연결된 것 같은 만듦새에 "앞부분에 리얼함을 살린 것은 그런 여인들의 어려운 삶을 보여주고 후반부에는 확실한 대리만족을 주려고 그렇게 연출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개봉도 못하고 영화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닌가 싶었죠. 칸 초청은 그래서 죽었다가 살아난 기분이에요."
한국영화계는 장철수 감독을 발견하지 못했다. 장철수 감독이 칸의 바람을 얻고 한국에서도 꽃을 필 수 있을지, 아직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배급사가 잡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