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근 기자
송새벽(32)이 떴다. 신인 여배우가 아니다. '방자전'에 변학도로 출연했다. 전작이라곤 '마더' 뿐이다. 세팍타크로로 원빈의 입에 문 사과를 날려버린, 딱 그 정도로만 기억되는 배우였다.
그런 송새벽이 충무로의 핫이슈가 됐다. 송새벽이 '방자전'에서 "나는 세상에서 그게 제일 좋아요"라며 어눌한 전라도 사투리로 입을 열면 극장이 웃음으로 뒤흔들린다.
스타탄생이다. 송강호가 '넘버3'에서 "배..배..배신이야"라고 했을 때 폭발적인 반응이 일었던 것과 비슷하다. 송새벽은 '방자전' 이후 '시라노:연애조작단' '해결사'를 찍었고, '부당거래'에 연이어 출연한다. 이후 '칠광구'에도 합류한다. 올 하반기 내로라하는 작품들이다.
영화 제작이 줄어든, 그래서 웬만한 배우들도 손가락만 빨고 있는 요즘, 송새벽의 전성시대가 시작됐다.
"그냥 죽기 살기로 하는거쥬~." 느릿한 전라도 사투리다. 송새벽은 전북 군산에서 대학까지 나왔다. 철학을 전공했다. 공부는 못했다. 성격도 1년 동안 반 아이들 이름을 전부 못 외울 정도로 내성적이었다. 그랬던 송새벽은 대학 신입생 때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
"선배들이 무대에 서서 연기하고 그러는 게 너무 재미있어보이더라구요." 1년 동안 청소하고 분장하고 포스터를 붙였다. 그래도 좋았다. 전경으로 제대한 뒤 곧장 서울로 올라왔다. 연기하려면 서울이 좋을 것 같아서다. 서울에서 연극하는 군산 선배 연락처 하나만 갖고 왔다. 선배 소개로 극단에서 먹고 잤다. 신문배달을 하고 계단청소도 했고 포스터도 붙였다.
그리고 2002년 연우무대 오디션을 통과했다. '날 보러와요' '해무' 등을 하면서 연기경험을 쌓았다. 어느 날 봉준호 감독이 '해무'를 보러 왔다. 연락이 왔다. '마더' 오디션을 보지 않겠냐고. 영화라곤 단편 몇 번 찍어본 게 전부였다.
봉준호 감독이 "함께 하자"고 했다. "기분이 째졌죠." 첫 장편이었던 터라 긴장도 많이 했다. 더군다나 잘못해서 원빈 얼굴이라도 차게 되면 어쩌나 잠도 설쳤다. 소설가인 아버지는 '마더'를 보더니 "생각보다 대사가 많더라"고 했다. "장가는 갈랑가 모르겠다"면서도 마음대로 연기하도록 허락해준 아버지가 그의 연기를 보고 한 첫마디였다.
ⓒ이명근 기자
'방자전'을 하게 됐다. '마더' 제작사인 바른손엔터테인먼트가 '방자전'을 제작하는 게 인연이 됐다. 뉴욕제과에서 김대우 감독과 만났다. '마더'를 잘 봤다고 했다. "사실 그거 밖에 없지요."
'방자전'에서 변학도는 사실 유명한 배우가 할 뻔했다. 신인인 송새벽을 김대우 감독이 밀었을 때 반대도 많았다. 하지만 첫 리딩 때 배우와 스태프가 '빵' 터지면서 반대 여론은 단번에 사라졌다. 영화에서 선보인 예의 변학도 연기를 선보인 것이다.
"제 입으로 말하는 게 쑥스럽지만 캐릭터를 준비해서 갔어요." 다른 곳에서 참조했을 리가 없다. 탐관오리 변학도를 하늘에서 떨어진 듯한 엉뚱한 캐릭터로 만들었으니깐.
송새벽은 '방자전'이 개봉한 후 관객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 개봉관을 몰래 찾기도 했다. 물론 알아본 사람은 없었다. 밤새 촬영을 하고 영화 본 뒤 또 촬영하러 가야 했지만 폭발적인 관객 반응에 피곤은 사라졌다.
좋은 배우는 좋은 배우가 알아본다. '방자전'에서 그와 함께 한 류승범이 류승완 감독에게 그를 추천했다. 류승완 감독은 '해결사' 제작자며, '부당거래' 감독이다. 방안에서 담배를 피면 2시간이 넘도록 연기가 안 빠지는 창문 없는 고시원방에서 살던 그였다.
"'방자전'을 할 때는 걱정도 많이 했어요. 연극처럼 리허설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바로 슛에 들어가니깐." 선수들은 그래서 선수구나란 것을 느꼈다. 카메라 감독이 그를 보고 웃다가 카메라가 흔들려 NG가 난 적은 있지만.
"작은 아버지가 새벽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어요. 동틀 녘에 세상을 빛내는 뭐 그런 사람이 되라는...제 입으로 이야기하니깐 쪼매 그러내요."
새벽종이냐, 종치고 왔냐, 고 놀림 받던 송새벽은 2010년 한국영화의 발견이 됐다. 그가 무서운 아이가 될지, 아니면 빤짝이다 사라질지, 아무튼 송새벽의 시대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