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부터 월드컵까지..키워드로 본 2010 상반기 영화계②

[상반기영화결산]

김현록 기자  |  2010.06.24 07:00


2010년, '아바타'의 흥행몰이가 휩쓸고 간 한국 박스오피스는 3D의 바람 속에 '전우치'와 '아이언맨2'로 대표되는 한국과 미국의 슈퍼히어로 영화, 역시 국적을 가리지 않는 고전의 재해석 작품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남과 북은 여전한 영화계의 테마였으며, 6월 시작한 월드컵은 영화계를 다시 긴장케 했다. 영진위를 둘러싼 잡음은 올해에도 계속되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2010년의 상반기 영화계를 키워드로 정리해 봤다.


1. 3D

어린이용 깜짝 영상이 3D 입체영화의 전부이던 시절은 지났다. 2010년은 3D 영화 대중화의 원년. 3D 없이 영화와 극장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가 왔다. 2009년 12월 중순 개봉, 전 세계를 강타한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아바타'를 시작으로 각종 할리우드산 3D 영화들이 한국 극장가에 상륙하며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영상의 사실감을 극대화하는 한편, 실제 이상의 입체감을 선사하는 3D는 영화 체험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흥행도 이어졌다. '아바타'는 6월 현재까지 북미에서 7억5000만 달러, 전 세계적으로는 27억 달러를 벌어들인 영화 역사 최고의 흥행작이 됐다. 한국에서도 1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1위에 올랐다. 그 이후에도 3D 열풍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애니메이션 '드래곤 길들이기', 영화 '타이탄'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3D영화들이 연이어 200만 관객을 넘어서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월드컵 극장 중계까지 3D로 대박을 낼 정도. '슈렉 포에버', '토이 스토리4' 등 개봉을 앞둔 화제작들도 3D 상영을 예고했다.

2. 칸영화제


지난 5월 열린 제 63회 칸 국제영화제는 한국영화계의 국제적 위상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이창동 감독의 '시'와 임상수 감독의 '하녀'가 경쟁부문에 나란히 초청돼 '시'가 각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칸의 남자' 홍상수 감독은 '하하하'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상을 수상했다.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은 화려한 수상 결과 이상이었다. '시'는 유력한 황금종려상 후보로 꼽혔고, 주인공 윤정희 역시 수상자 줄리엣 비노쉬와 함께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됐다. 장철수 감독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돋보이는 데뷔작으로 주목받았다. 필름마켓에서의 훈풍도 이어졌다. 유럽발 경제위기로 얼어붙은 시장 상황 속에서도 '시'와 '하녀' 외에 '악마를 보았다', '포화 속으로',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등이 해외에 판매되며 선전했다.

3. 슈퍼히어로


슈퍼히어로의 활약은 2010년에도 변함없었다. 한국과 미국의 슈퍼히어로들이 번갈아가며 스크린을 누볐다. 이는 박스오피스에서도 그대로 입증된다.

강동원이 주연을 맡은 '전우치'는 '아바타'의 거센 흥행돌풍 속에서도 누적관객 600만명을 돌파하며 한국 토종 히어로의 자존심을 제대로 세웠다. 2년만에 돌아온 '아이언맨'의 위력도 여전했다. '아이언맨2'는 440만 관객을 넘어서며 '아바타'에 이어 외화 흥행 2위에 올랐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 페르세우스의 이야기를 담은 '타이탄'이 266만으로 그 다음이다.

4. 고전의 재해석

고전의 재해석은 올해 개봉한 화제작을 아우르는 키워드다. 역사와 소설, 신화와 게임 속 인물들이 스크린으도 되살아나 재연의 재미, 전복의 재미를 동시에 선사했다.

충무로와 할리우드 모두 기꺼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전우치전'의 주인공을 말썽꾸러기 도사로 풀어낸 '전우치'를 시작으로 김기영 감독의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하녀'와 고전 '춘향전'을 섹시한 코믹 풍자극으로 탈바꿈시킨 '방자전'이 연이어 개봉해 흥행에서 성공했다. 할리우드 쪽 성적도 이에 못지 않다. 루이스 캐롤의 동명 소설을 모티프로 삼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그리스 신화가 바탕이 된 '타이탄', 1990년대 인기 게임을 영화화한 '페르시아의 왕자:시간의 모래' 등. 11위를 기록한 '페르시아의 왕자' 외에 고전을 바탕으로 한 이들 한·미 영화 모두는 상반기 흥행 톱10에 이름을 올리며 초강세를 보였다.

5. 남과 북

한국전쟁 60년을 맞은 올해, 지난 3월말 터진 천안함 침몰 사건과 이를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내린 합조단의 조사는 남북 관계를 바닥 모를 수렁에 밀어 넣었다. 스크린인들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랴. 한국전쟁 60년인 올해 남과 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속속 개봉하면서 남북 관계가 스크린 흥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두고 영화계가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스크린의 남과 북은 천안함 사태를 누구도 예상 못했던 올 초엔 슬며시 손을 잡았다. 2월 개봉한 '의형제'에서는 북이 버린 남파 간첩과 남이 버린 전직 국정원 요원이 손을 잡고 540만 관객을 합작했다. 올해 개봉작 가운데 최고 흥행 기록이다. '꿈은 이루어진다'가 조용히 막을 내렸지만 남과 북을 다룬 영화의 흥행은 우려 속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71명 학도병의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 '포화속으로'는 월드컵 바람 속에서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예고했다.

6. 월드컵

2010 남아공 월드컵을 기쁨 반 근심 반으로 지켜보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영화계에 몸담은 이들이다. 한국 축구 대표팀의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로 잔치 분위기지만 마냥 웃을 수가 없는 건, 대표팀이 선전할수록 극장은 한산해지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관객수 급감의 악몽은 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극장가의 관객 감소 경향은 앞선 3번의 한국전을 통해 분명히 드러났다. 새벽 3시30분에 열린 마지막 나이지리아전을 제외하고는 경기가 열린 날마다 관객 수가 현저히 줄었다. 16강전이 열리는 오는 24일은 더구나 토요일이다.

그러나 올해는 월드컵 극장 중계 관람이라는 새로운 풍속도가 자리잡은 원년이기도 하다. 영화계 대세, 3D까지 힘들 보탰다. 대 아르헨티나전이 열린 지난 17일 극장에서 2D와 3D로 경기 중계를 본 이들이 무려 7만여명에 이를 정도다. 가뜩이나 어려운 월드컵 시즌, 월드컵 경기 중계마다 매진이 이어지고 관객이 꽉꽉 차니 극장으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제작자는 월드컵에 울어도 극장은 안 운다는 말이 새로 생길지 모르는 일이다.

7. 영진위

내홍 끝에 지난해 7월 영화진흥위원회 강한섭 위원장이 사퇴한 이후 영진위는 9월 조희문 교수를 신임 위원장에 앉혀 새롭게 진용을 꾸렸다. 그러나 잠잠해질 듯 했던 영진위를 둘러싼 갈등은 올해에도 이어졌다.

영진위는 올 초 독립영화 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자 선정의 공정성을 두고 한국독립영화협회 등과 갈등을 빚었다. 새 운영자로 선정된 단체들에 대한 자질 논란도 불거졌다. 감독 등 수백명의 영화인들이 독립영화 전용관 선정 결과에 반대하는 성명과 기자회견에 참여하기도 했다.

조희문 영진위원장은 독립영화 제작지원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눈란에도 휘말렸다. 칸 영화제 출장 중 독립영화 제작지원 심사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특정 작품을 뽑을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시'가 영진위의 제작지원작 심사에서는 0점을 받고 탈락한 것을 두고 영진위와 제작사가 전혀 다른 공식 입장을 발표하고 정면 충돌하기도 했다. 지켜보던 문화부마저 조희문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영진위를 둘러싼 잡음은 과연 언제쯤 조용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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