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기자
8년만에 복귀라는데, 여전히 곱기도 하다. 배우 박주미(38)다. 앳되고 청순한 얼굴은 그대로인데, 첫째가 9살, 둘째가 4살 두 아이의 엄마에 어엿한 학부형까지 됐단다. 배우 박주미라는 이름 대신 아내로 엄마로 긴 시간을 보냈던 그녀가 선택한 복귀작은 엄마의 마음이 절절히 묻어나는 작품 '파괴된 사나이'(연출 우민호)다.
극중에서도 그녀는 엄마다. 어린 딸이 유괴된 지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딸을 되찾겠다는 의지와 희망을 굽히지 않는 엄마. 가슴이 아파 어린이 유괴에 대한 영화는 잘 보지도 않는 그녀이건만, 이번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출연을 결심했다. 외부에는 그녀의 복귀가 대대적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출연 분량도 많지 않다. 스스로는 '8년만의 복귀'라는 말이 어색할 정도다.
"분량이 적다고 다들 의아해 하시더라고요. 저도 고민을 안 했던 건 아니에요. 분량 생각했으면 안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며 메시지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영화 자체가 등장인물이 많지 않거든요. 너무 많았으면 더 겁먹었을 수도 있어요. 분량이 적었으니까 더 쉽게 결심했겠죠. 영화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배우고 공부한 것 같아요. 감을 찾을 만 한 데서 끝났지만.(웃음)"
덕분에 어머니이자 성균관대 영상학과 학생이기도 한 그녀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배우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쉬움도 컸다. 짧은 출연 분량 탓은 아니었다. 더 지독하게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미련이다.
"연기를 하고 나서 침대에 누우면 '나 바보같아'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 할 수 있는데도 어색하달까.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있는데 제가 그냥 먹먹하게 하고 있더라고요. 꾸준히 하는 감이란 걸 무시할 수 없나봐요. 일단은 이만큼이라도 한 데 만족해요. 물론 아쉬움이 있죠. 살도 빼고, 머리도 부스스하게 파마하고, 얼굴에 칠도 했지만 영화를 보니 내가 더 퀭했어도 괜찮겠더라고요."
이동훈 기자
박주미에게 8년만에 돌아오니 무엇이 가장 달라졌느냐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영화계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매체 환경을 꼽았다. 최근 시사회에서 다른 드라마 캐스팅에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가 곤혹을 치렀던 터다.
"예전엔 기자들도 다 얼굴을 아니까 다 얼굴 맞대고 인사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인간적으로 의지할 곳 없는 친구들이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지 조금은 알겠더라고요. 여기가 무서운 데구나.
제가 했던 이야기는 사석에서 나올 이야기였던거죠. 아쉽다는 식으로 한 이야기인데, 중간에 다 자르고 앞 이야기, 뒷 이야기 붙이니까 제가 봐도 '아 이 말이 그렇게 되는구나' 싶게 되더라고요. 몰랐던 제 탓이에요. 그 동안 인터넷에 제 경력이 잘못 올라가 있든, 성형이네 어쩌고 얘기가 나오든 '아니면 된 거지' 하고 살았어요. 집, 학교에만 있다가 오랜만에 나와서 크게 터뜨린거죠."
"요즘 데뷔를 했다면 아마 어림 반품어치도 없었을 거예요. 그 예전에도 내가 막 열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사랑받고 기회를 얻은 건 정말 감사한 일이죠. 그 사이 너무 바빴어요. 요새는 가사에 대한 임금도 측정하고 한다지만 사람들은 여자가 집에서 살림하면, 일 하던 사람이 일을 안하면 노는 줄 알아요. 그게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었다면 저도 뛰쳐나갔겠죠. 하지만 하루하루 바쁘고 하다보니 뒤도 안 돌아보고 8년이 지났어요. 은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도."
이동훈 기자
9살, 4살인 그녀의 아이들은 엄마의 출연작이 뭔지 잘 모른다. 박주미는 훗날 아이들이 자라 '엄마는 예전에 뭐 했어요'라고 물으면 대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아시아나 항공 모델로 사랑받다 '허준', '내 안의 천사', '여인천하' 등에서도 활약했었지만, 스스로는 대표작도 없고, 해줄 말도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단다.
"주부가 되면 이름이 사라진다고 하잖아요. 정말 제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요. 학교 가서 이름 찾는 건 참 어색했고요. 이곳에 오니까 제 이름을 불러주더라고요. 내 존재를 찾는 달까.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살다보니 후회되는 게 있어요. 내가 왜 욕심을 부리지 않았을까. 그땐 내가 욕심 안 부리고 아등바등 살지 않는 게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보니 약간의 자만이기도 하고, 어리석었던 거더라고요. 제 자리를 찾아야 했어요."
그래서 박주미는 최근 이창동 감독의 '시'로 한국 여배우의 저력을 떨친 대선배 배우 윤정희가 더욱 반갑고 감사하다. 활동을 쉬기 전에도 대 배우였지만, 16년만의 복귀에서도 그런 존재감과 연기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긴장감을 조금 덜어줬다.
"내가 더 나이들기 전에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는데, 그게 조금 깨진 것 같아요. 예쁘고 젊을 때 뭔가를 하려고 발버둥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고. 지금 당장 뭔가를 보이라고 하는 것, 그게 무서워요. 또 덫에 걸릴까봐. 스스로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갈래요. 천천히. 조금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