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내나는 사람들의 판타지, '글로리아'의 미덕

김현록 기자  |  2010.08.08 14:31
MBC 주말극 '글로리아'(극본 정지우·연출 김민식)가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7월31일 조용히 시작한 '글로리아'는 방송 3회가 지난 현재까지 한 자릿수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옛 '서울의 달' '파랑새는 있다'를 연상시키는, 지지리 궁상맞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꽤 묵직하게 가슴에 다가온다.


'글로리아'의 배경은 '추억 속으로'라는 촌스러운 이름의 나이트클럽이다. 휘청대다 언제 망할지 모르는 이곳의 사람들은 들여다볼수록 정겹다.

이곳엔 사고로 정신을 놓은 언니(오현경 분)와 험한 세상 근근이 살아가는 것만이 소원인 여인 진진(배두나 분)이 온갖 허드렛일을 하고 있고, 동네가 내놓은 '꼴통'인 진진의 죽마고우 동아(이천희 분)가 있다.


속정 깊은 포장마차 할머니(김영옥 분), 나이트클럽 사장님(이영하 분), 어리바리 웨이터(최재환 분) 등 말 많고 탈 많은 나이트클럽 사람들은 가족 같은 끈끈함으로 이어져 있다.

그 반대편에는 재벌가 2세들의 으리으리한 또 다른 세상이 있다.


겉보기에만 떵떵대는 재벌가의 사람들은 들여다볼수록 강퍅하다. 재벌가의 서자·서녀인 강석(김지석 분)과 윤서(소이현 분)는 사는 재미, 사는 이유를 잃고 겉돌며, 어머니들은 비뚤어진 모성으로 사람을 질리게 한다.

모두 두 개씩의 얼굴을 지닌 재벌가의 사람들은 피로 엮였으되 남처럼 알알이 겉돈다. 에어콘 바람 쐬며 우아하게 사는 그들은 '추억 속으로'의 사람들의 땀내는 풍기지 않겠지만, 애틋한 사람 냄새 또한 풍기지 못한다.

'글로리아'의 집필은 맡은 정지우 작가는 합의금 갚느라 월세방까지 뺀 진진이 처음으로 무대에 서게 되기까지를, 무대에서 처음 어떤 희열을 맛보기까지를 담담하고도 유쾌하게 그려냈다.


그들의 삶은 누추하지만 결코 퀴퀴하지 않다. 디테일은 곱씹을수록 찰지다. 억척녀가 된 배두나는 역시 제대로고, 이천희는 일취월장한 몰입력을 보여준다. 이성민 최재환 김영옥 나영희 천보근의 감초 군단도 훌륭하다. 간간이 흘러나오는 올드팝은 귀에 착착 감긴다. '글로리아'는 좋은 대본이 사려 깊은 연출과 실감나는 연기를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를 내는지 보여준다.

앞으로 '글로리아'는 전혀 다른 두 세계를 대비시키는 가운데, 처음으로 꿈을 꾸게 된 나진진의 성공 스토리를 그려갈 예정이다.

땀내 물씬 나는 이 이야기는 사실, 그 어느 막장 드라마보다 더한 판타지이기도 하다. 가난하고 착한 사람들의 정직한 성공기, 재벌가의 자제들이 이들에게 기대 삶의 위안을 얻는다는 설정은 개천에서 용 안 나오는 21세기의 한국에서는 드라마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일 수 있다.

이 사람 냄새 나는 드라마가 막장으로 빠질까 하는 걱정은 애초에 접으련다. '글로리아'의 가족 같은 이웃들, 아옹다옹하는 오랜 친구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머금어지는 까닭이다. 나진진의 기적 같은 인생역전 판타지 또한 땀내 나게 일하는 착한 사람들의 정직한 성공기로 그려질 것임을 믿어 마지않기 때문이다.

"송충이도 태어난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는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에게 그 정도 꿈은 사치가 아닐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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