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제거 예찬? 가창력, 똑같은 잣대 필요한가

[기자수첩]'필'과 '본능 표현'이 더 중요하다

길혜성 기자  |  2010.11.09 14:39
소녀시대. 소녀시대는 MR제거를 통해 가창력을 인정받은 걸그룹이기도 하다. 소녀시대. 소녀시대는 MR제거를 통해 가창력을 인정받은 걸그룹이기도 하다.


요즘 가요계 밖에서 가수들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게 바로 '가창력'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논란은 애초부터 논란 제기의 기준 자체에 문제가 있다. 가수들의 가창력을 일정한 기준으로만 평가하려 들기 때문이다. 마치 어느 정도의 고음이 올라가고 일정 수준의 바이브레이션을 해야, 노래 잘하는 가수로 인정하려는 느낌까지 들 정도다.


가수란 사전적 의미로 '노래 부르는 것이 직업인 사람'을 가리킨다. 물론 '부르는'이란 뜻 속에는 '잘 부르는' 의미가 당연히 포함된다. 하지만 '잘'이란 것은 '똑같이 잘'이 아니다. 때론 음정 박자가 조금 틀리더라도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목소리와 느낌 즉, '필'(feel)을 살려 부르면 그게 진정으로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라 할 수 있다.

지난 7일 방송된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는 아이돌그룹이 득세하고 있는 요즘 가요계를 거론하며, 가수들의 가창력 논란을 오토튠(각양각색의 기계음을 통해 본래 목소리를 보정하거나 변화시키는 장치 혹은 그 기술 자체. 가요계에서는 보통 기계음이라 칭함) 등과 결합시켜 지적했다.


또한 최근 들어 네티즌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MR제거'(Music Recorded. 원래는 반주만 녹음한 CD 및 테이프 등을 뜻함. 하지만 요즘 가수들은 MR CD에 목소리도 입히는 경우가 많음)도 다뤘다.

하지만 이를 보는 가요 관계자들의 마음은 그리 좋지 않았고, 지적 사항 역시 가슴에 별로 다가오지 않았다. '똑같은 기준'으로 가수들의 가창력을 평가하려 했기 때문이다. MR 제거 때 음정 박자가 조금 틀렸더라도 노래를 잘 부른다 인정받는 가수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가요업계의 선수들, 그리고 음악을 잘 아는 가요팬들에 오토튠 사용이나 MR 제거는 그리 중요치 않다. 이들은 가수들을 가창력을 평가할 때 노래에 얼마나 몰입했는가, 아니면 자신만의 느낌과 목소리로 그 노래를 소화했는가가 더 중요하다. 때문에 모든 가수들에게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지 않을 뿐더러, 그럴 수도 없다. 가수들마다 목소리가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기 때문이다.

20년 경력의 가수 김장훈의 말을 빌리자면, 지금도 너무나 멋진 보컬리스트로 평가받는 고 김현식은 죽음을 맞기 직전 한 호텔 라운지에서 술에 취해 음정 박자가 맞지 않으면서도 '비처럼 음악처럼'을 자신만의 본능과 필로 멋들어지게 소화했다. 고 김현식의 이 깜짝 무대는 지금도 김장훈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최고 보컬리스트의 무대로 자리하고 있다.

지금도 가요계에서 노래 잘하는 가수로 거론되는 나훈아 조용필 이승철 신승훈 김건모 모두 똑같은 기준을 들이대면 1등과 꼴찌를 나눌 수 있다. 하지만 누가 과연 이들의 가창력을 두고 감히 순위를 매길 수 있을까. 이들은 자신만의 목소리와 느낌으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 즉 '진정한 가수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 들어 가요계 밖에서 가수들의 가창력을 지적하는데도 분명 이유가 있다. 아이돌이 가요계의 중심축으로 이동하며, 비주얼과 자극적인 소리가 더 노래보다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가수들의 가창력을 단순히 MR 제거 등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한 걸음 더 들어가 그 가수의 본능적 목소리, 몰입도, 느낌 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럴 때, 똑 같은 기준으로 가수들의 가창력을 결론내리는 일차원적 평가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 '똑 같은' 가수들을 만나지 않을 수 있다.

여기에는 '가수'는 '노래를 부르는 게 직업인 사람'이란 본래 뜻을, 아이돌그룹을 포함한 모든 가수들이 잊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 당연이 전제된다. 그럴 때에만,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 받는, 가수로서 이른바 자존심 상하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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