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균 기자 tjdrbs23@
전국대회 1승이란 소박하지만 만만찮은 목표를 향해가는 청각장애인 야구부를 내세운 '글러브'에서 정재영은 든든한 코치로 아이들을 이끈다. 늘 믿음직한 배우인 그는 이번 '글러브'에서도 역할에 쏙 녹아든 듯한 모습으로 용기와 희망, 그리고 최선에 대해 이야기한다. "야구가 장난인 줄 아냐"며 선수들과 아이들을 맹렬하게 다그치는 김상남의 모습은 정재영의 모습과 퍽 닮았다. 정재영은 말했다. "흘린 땀만 믿는 게 정확한 것 같다. 야구든, 연기든."
-강우석 감독과 벌써 4번째 호흡이다. '강우석의 페르소나'라는 말도 나왔다.
▶그렇게 된다면야 영광이다. 강 감독님은 '걔가 무슨 페르소나야' 그럴 수 있지만.(웃음) 누군가의 페르소나가 된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누군가와 작품을 같이했을 때 빛을 발한다는 평가라면 너무 기분좋다. 앞으로 모든 감독님의 페르소나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듣기좋은 말인 것 같다. 흥행도 좋고. 망한 작품이 없다. 망해도 무슨 손해를 보거나 하는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실미도'부터 '글러브'까지, 어떤 변화가 있었나.
▶감독님 스타일은 변화가 없다. 오히려 거꾸로 간다. 나이가 들면 편안하게 안정적으로 가려고 하고, 보수적이 되는 경향이 있잖나. 그런데 2011년도에도 또 새로운 걸 하려고 하신다. 욕 먹거나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없다. '이끼' 때도 그랬고 착한영화 '글러브'도 그렇다. '하고 싶으니까 한다' 하고 바로 들어간다. 너무 열정적이다. 아직도 신인 감독을 보는 것처럼 '저 사람, 다음엔 뭘 할까' 기대가 된다. 물론 장르는 달라도 작품 안에서 강우석 감독의 뚝심이 느껴진다. 그게 다 밸런스가 되는 거지.
-강 감독은 '정재영은 연기에 미쳤다'고 하더라.
▶연기가 안 되는 사람이 주로 그렇게 한다.(웃음) 누구나 촬영할 땐 사생활이 없다. 촬영하면서 제 할 일 하고 여행 다니면 안되지 않나. 최선을 다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이제 나이도 그렇고 다른 배우들에게도 성실한 모습을 보여줘야지. 특히 강 감독님 영화에선 성실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다. 최고로 생각하시는 게 성실함이니까. 스태프들이 '준비 다 되면 오셨으면 좋겠다' 해도 지각 한 번이 없다. 사생활이 없는 건 오히려 감독님이다. 내가 많이 배웠다.
-듣다보면 두 사람이 비슷한 데가 있는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또 만나고 할 수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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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모든 게 연장선상이다. 뭔가가 연속되면 소모되는 것 같다가, 다른 걸 하면 또 옛날 생각 잊어버리고 그 때를 추억하게 되고. 잔머리 굴리는 건 아니지만 밸런스라고 해야할까, 관객을 위해서라도 비슷한 걸 계속 하면서 완전히 소진되기보단 여지를 남겨두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거 하는 건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재미없다.
-'아는 여자'에 이어 2번째로 야구 선수 역할을 맡았다.
▶그것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사회인 야구를 하는 것도 아닌데 야구 소재 영화를 두 편이나 하고. 물론 캐릭터가 다르지만 그 자체로도 재밌다.
-야구의 재미도 느꼈나. 진짜 선수 같은 포스가 인상적이었다.
▶야구선수는 울룩불룩 근육질이면 안된다더라. 최고의 야구 선수들은 부드러움이 생명이라고 해서 일부러 근육을 만들지는 않았다. 팔굽혀펴기 정도만 했다. 비밀인데 CG의 힘도 조금 빌렸지. 찍으면서 몰랐던 야구의 맛을 느꼈다고나 할까. 제작보고회 때 김제동씨가 그랬다. '모든 구기 종목은 공이 들어가야 점수가 인정되는데 야구는 사람이 들어가야 점수가 인정된다'고. 그래서 '사람이 먼저'라고.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찍고 야구를 사랑하게 됐다. 끝나서 지금은 헤어졌다. 그리 하라면 못한다. 배우라는 게 간사하다. (웃음)
-극중 김상남이 청각장애학생 선수들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많이 한다. 절절하지만 조금만 완급 조절에 실패하면 바로 표가 나는 위험도 있다.
▶평소에 그런 말을 감히 어떻게 하겠나. 그런 명언같은 말, 표어같은 말을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오글거리지 않게 보일까 고민을 많이 했다. 해 보는 수밖에 없다. 또 그 신에 맞아야 하고. 상황에 안 맞거나, 말이 오버면 바로 흐름을 깬다. 연출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외줄을 잘 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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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부터 소질있는 사람들, 별로 없다. 우직하게 한 사람은 버티면 어떻게든 되고, 소질이 아주 많았어도 나태하면 도태되고 그런 거다. 아이들이 프로야구 선수가 될 것도 아니지만 1승을 하겠다는 작은 꿈을 좇으면서 김상남도 잃어버렸던 꿈을 찾는다. 비전을 주는 거다. 사실 뭔가로 성공하기가 힘들다. 성공할 지 안 할 지 어떻게 아나. 어찌보면 용기의 문제고 의지의 문제다. 다 얻는 건 힘드니까. 나도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살아야지 행각을 했다. 개인적으로도 (야구선수로 나오는) 아이들이 촬영 전부터 끝까지 다쳐가며 열심히 하는 걸 보고 스스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연기를 계속하기로 했을 때 경험도 떠올랐겠다.
▶연기를 학교 다닐 때로 끝냈다면 아마 아무도 말을 안했을 거다. 그걸 밖으로까지 끌고 나왔을 때, 친척들한테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다. '정신 못 차리고 있네', '너 뭐하는 거야….' 나는 연기가 좋아서 최선을 다 했었던 건데, 뜬구름 잡고 스타가 되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TV를 안 나왔으니까 더 그랬을 거다. 연극 하고 영화 하면 안 보는 분들은 모르시니까.
-그렇게 보면 야구와 연기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점도 있지 않나? 흘린 땀만큼만 보상받지 않는 게 또 연기 아닐까.
▶그건 순간적인 거다. 결과적으로는 흘린 땀만큼 보상을 받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 것도 없는데 너무 멋져서 주목받았다고 치자. 그건 잠깐이고, 그렇다고 땀을 안 흘리면 곧 외면받는다. 늘 다음 타자가 기다리고 있다. 땀을 열심히 흘렸는데도 인정받지 못한다고 치자. 땀을 계속 흘리다보면 인정받게 돼 있다. 그렇게 받는 인정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운이 조금도 작용하지 않는다고는 못 하겠지만, 인정받으려면 땀을 흘려야 한다. 스포츠만큼 정직한 게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 세계에도 천재가 있다. 강철팔을 타고 나면 어떻게 하겠나. 하지만 그 사람도 컨트롤을 하고 게임을 하려면 땀을 흘려야 또한 인정받을 수 있는 거다. 박태환이 수영 천재라지만, 그 친구도 엄청난 땀을 흘렸을 거다. 흘린 땀만 믿는 게 정확한 것 같다. 야구든, 연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