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러브' 홍일점 유선 "복실이보다 힘들었어요"(인터뷰)

영화 '글러브'의 유선 인터뷰

김현록 기자  |  2011.01.25 10:44
ⓒ임성균 기자 tjdrbs23@ ⓒ임성균 기자 tjdrbs23@


연이어 홍일점이다. 그런데 180도 다르다. '이끼'에 이어 '글러브'로 돌아온 배우 유선(35) 이야기다.

지난 여름 스릴러 '이끼'에서 서늘한 매력을 풍기는 여인 영지로 350만 관객을 불러모았던 유선은 새 영화 '글러브'에서는 발랄한 선생님 주원 역을 맡아 다시 관객몰이에 나섰다. 둘 모두 충무로 승부사 강우석 감독의 작품이고, 두 작품 모두에서 유선은 남자들만 우글우글한 영화 속의 돋보이는 홍일점으로 시선을 집중시킨다.


생기발랄한 그녀의 모습이 반가워 '이번엔 좀 쉽게 연기했겠다' 인사를 건넸더니 유선은 '정말 힘들었다'고 도리어 손사래를 쳤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유선을 보여주는 것이 연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녀. 유선은 "비슷해서 더 힘들었다"며 가만가만 자신의 고민을 들려줬다.

-쾌활하고 밝은 캐릭터다. '솔악국집 아들들' 복실이랑은 조금 다르지만, 즐겁게 촬영했을 것 같다.


▶찍을 땐 오히려 힘들었다. 드라마의 복실이가 오히려 편안하게 놀 수 있는 캐릭터였다면, 나주원은 가볍게 보여져선 안 됐고 무엇보다 리얼리티가 중요했다. 드라마는 호흡이 과장되고 미화된 캐릭터들도 자연스럽게 흡수가 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캐릭터가 붕 뜨면 안 되니까.

감독님께서도 주원이란 인물을 생기있고 통통 튀게 그리고 싶어하셨지만 그렇게 요구하시다가도 그런 부분을 빼고 두 가지 버전으로 찍고 수위를 어떻게 하나 고민하시기도 했다. 저도 그게 어려웠던 것 같다. 통통 튀고 발랄하게 표현하면서도 아이들에게 쏟는 지극정성과 정감어린 마음도 그려야 했다. 아이들과 코치 상남(정재영 분)을 이어주는 캐릭터로 수화도 계속해야 했다. 숙제가 많았다.


-캐릭터가 달라진 만큼 '이끼' 때와 감독의 지시도 많이 달라졌겠다.

▶'이끼'보다 많이 디렉션을 받았다. '이끼' 때는 준비해서 보여드리는 데 대해 감독님이 상황을 색다르게 던져주시는 것 외에 연기에 대해서는 코멘트를 많이 하지 않으셨다. 반면 주원 같은 경우는 지시가 많았다. 특히 코믹한 부분에서는 더 그랬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감독님과 코믹 호흡이 처음이었다. '이끼' 때는 그 심각했던 이장님도 새우깡 먹고 야쿠르트 먹고 하는 코미디가 있었는데 저만 시종일관 진지하지 않았나. 코믹 디렉션을 처음 하시고 또 처음 받으면서 서로가 당황했다. 감독님은 제가 원하는 걸 바로 못하니까 당황스러우시고 저는 감독님이 뭘 하라고 하시는건지 당혹스러웠다.

ⓒ임성균 기자 tjdrbs23@ ⓒ임성균 기자 tjdrbs23@


-강우석 감독과 두번을 연이어 작업했는데.


▶'이끼' 땐 낯설고 거리감이 있어서 감독님이 '뒷물신'은 스크립트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그랬다. 이번에는 너무 편해지셔서 과감가헤 말슴해셨다. '야, 유선. 그게 아니라니까' 하시는 걸 보며 '감독님이 많이 편해지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글러브'에선 너무 편안해서 식구들처럼 지냈다.

-그게 더 큰 부담이 됐을텐데.

▶사실 현장은 모든 게 좀 더 편안했다. 스스로 갖고 있었던 부담은 두번째라 더 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믿고 뭔가를 맡겨줬는데, 그만큼 못했을 때 실망감을 늠기고 싶지 않다는 마음, 기대하고 신뢰한 만큼 이상으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지 못하면 스스로 견디질 못하겠는 거다. 그래서 초반에 감독님이랑 소통이 잘 안 될때는 더 힘들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술자리, 회식 자리가 매일 있는데 이번엔 절반이나 나갔나. 재영 선배는 '왜 사람이 변하냐' 장난도 쳤는데, 다음 촬영에 대한 부담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수화 촬영이 있는 날이면 준비할 게 너무 많고, 그러다보면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거다. 서운함을 드렸을 수도 있는데, 사실은 더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영화 평이 참 좋다. 실제 보면서는 어땠나.

▶처음 볼 땐 내가 초창기 힘들어했던 부분을 보면서 '역시 아쉽다' 생각했다. 감독님께서 집요하게 말씀하셨던 게 뭔지 조금은 알겠더라. 그렇게 체크하면서 봤는데 훈련하고 경기가 시작되니까 제가 쑥 빠져서 보게 되더라. 끝나고 나서 재영 선배랑 눈을 마주치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말로 표현은 안했지만 '우리 영화 참 좋다'는 동의가 오가갔다고 생각한다. 참 좋은 영화다, 거기에 참여한 게 뿌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한테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드렸다. 만들어놓고 보니 더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극중에서 내내 수화 연기를 한다. 쉽지 않았을텐데.

▶제일 힘든 건 초반에는 캐릭터였다. 안정감잇게 잡기가 힘들었는데 그 다음엔 수화였다. 본격적으로 훈련이 펼쳐질 땐 제가 옆에서 수화를 해야 하니까. 정말 많이 배웠고, 많이 연습했다. 그런데 영화에선 잘 안 나온다. 후반으로 가면 으레 제가 수화를 하고 있다는 걸 아니까 건너뛰어버린다. 심지어 아예 안나오기도 한다. 오죽하면 스크립터랑 같이 편집본을 보면서 '수화방송처럼 다 넣어주면 안되겠니? 그거 안되겠니?' 그랬다. 그 점이 너무 아쉽다. 감독님께 말씀드리면 아마 '편집해줄게 개인적으로 소장해' 그러실거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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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은 고민이 많고 조심스러워 보이는 배우다. 하지만 늘 쉽지 않은 역할, 진폭 큰 변신을 해왔다.

▶의식적인 건 아니다. 그런데 제가 꽂히는 걸 보면 쉽지 않은 것들에 꽂힌다. 도전할 거리가 있고 숙제가 있어야 자극이 된다. '아, 이건 누가 뭐래도 내가 잘 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건 아무나 못 할 것 같은데 내가 한 번 해보면 어떨까' 하는 도전의 욕망이랄까. 등산하는 분들이 더 험한 산에 도전하는 것 같다. 험한 산에 한 번 올라가서 성취감을 맛보고 나면, 그 맛을 못 잊는 거다. '내가 해냈네' 하는 짜릿함이 있다.

어떤 캐릭터든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50%의 자신감, 50%의 불안감을 갖고 시작하다가 불안이 조금씩 자신감으로 채워진다. '이건 내가 잘한다' 싶은 건 거의 없다. 성공하든 못하든 그렇게 작품에 어울려 가는 거지. '유선밖에 안 보인다' 이거보다는 작품 안에서 자연스럽게 감겨서 튀지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현실감 있게 다가가길 바란다.

-유선이 올라가기에 가장 험난했던 산은?

▶'검은 집'의 신이화였다. 모델도 없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느낌. 영화 전체의 공포감을 가져다주는 인물인데 긴장감을 살려야 한다는 점 때문에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인정받은 게 너무 좋다.

-'글러브'는 몇 번째인가.

▶그 다음이 글러브인 것 같다. 만만찮게 힘들었다. 사실 제 모습과 비슷한데, 그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저와 다른 사람은 생각하고 고민해서 뽑아내 연기했다면 이건 경계가 애매했다. 진짜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연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주어진 캐릭터를 분명히 갖고 있지만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게 한다는 게 어려웠다. 복실이랑은 비교도 안 된다. 친한 친구들은 '이번에 비슷하네', '편하게 했겠네' 하는데, 어휴 답답한 소리다. 더 힘들다.(웃음)

-산에 비유하다보면 연기가 알고 보니 고행이구나 싶었을 때는 없었나.

▶배우란 굉장히 힘든 직업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고 또 끌어가야 하고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야 하고. 나이가 드니 과제가 더 생긴다. 그 전엔 감정에 대한 진실성에만 집착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제 내 연기만 잘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스태프, 동료까지 아우를 수 있는 자리에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임감이 어깨에 더 지워진 달까. 생각할 게 많아졌다. 점점 어려워진다. '글러브' 하면서 후배들이 참 부러웠다. 영화를 찍는 것만으로도 신이 나는 모습이 보기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럽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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