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민상 ⓒ류승희 인턴기자 grsh15@
'평양성'의 머시기. 이름만으로는 누구나 거시기(이문식 분)의 동생이나 아들쯤으로 생각할 테지만 그는 거시기와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소년병사다. '황산벌'의 관창이 그랬듯, 그 또한 전쟁의 비극에 희생당하는 슬픈 청춘일 따름이다.
극중 머시기 역을 맡아 연기한 것은 아역출신 배우 김민상이다. 지난해 SBS 드라마 '커피 하우스'로 브라운관 복귀 신고식을 치른 그는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에서 전투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 대열을 이탈하는 머시기를 통해 스크린 첫 성인연기에 도전했다. 1997년 SBS 드라마 '아름다운 그녀'에서 이병헌 심은하의 아들로 등장했던 일곱 살 아역배우는 어느새 어엿한 성인연기자로 성장했다.
"연기를 처음 시작한 건 7살 때였어요. 5살 때 주변 분의 추천으로 모델 콘테스트에 나갔다가 최우수상을 받으면서 어쩌다보니 CF도 찍고 연기도 하게 된 거죠. 어머니께서는 제가 힘들어하는 걸 보시면서 말리셨는데 저는 그 때부터 재미를 느꼈던 것 같고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세 남자 세 여자' '황금시대' '달콤한 인생' '아름다운 말들' '약속' '불꽃' '로맨스' '아름다운 그녀'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아역배우로 활발히 활동하던 김민상은 2001년 부친을 따라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8년간의 미국 유학 생활 속에도 '언젠가는 돌아가서 카메라 앞에 서리라'고 다짐했다고.
"늘 돌아가서는 연기를 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전문적으로 연기 공부를 할 기회는 없었지만 연극부에서 활동했어요. 자주는 아니지만 틈틈이 공연무대에도 섰구요."
'평양성'의 출연은 치열한 오디션 끝에 결정됐다. 짧은 출연분량이지만 전쟁 속에서 고통 받는 민초들을 대변하는 역할이니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 했다고. 전라도 출신인 머시기로 완벽히 변신하기 위해 무작정 해남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는 그다.
"처음에는 혼자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되더라구요. 별수 없이 어학연수를 떠났죠.(웃음) 이틀 동안 어르신 분들께서 대화하시는 것도 유심히 듣고, 대본도 읽어봐 달라 부탁드리고 녹음해서 계속 듣고 하면서 사투리가 익숙해지도록 했어요."
배우 김민상 ⓒ류승희 인턴기자 grsh15@
김민상은 영화 '평양성'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가마솥 신을 꼽았다. 신라군이 굶주리는 고구려군을 약 올리는 장면으로 직접 제안해 삽입된 장면이라고. 선배 연기자들과 함께 노래도 만들고 안무 연습도 하는 과정들이 고스란히 기억 속에 남아있단다.
"원래는 그냥 '쌀을 뿌려서 고구려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설정이었는데 가마솥도 추가하고 직접 노래도 만들어서 함께 불렀어요. 처음에 일을 벌일 때는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는데 어쩌다보니 여장까지 하게 됐죠.(웃음) 안무도 다들 춤에 조예가 없어서 한 달 동안이나 연습했는데 정작 영화에는 리허설 할 때 짠 안무가 사용됐어요. 결국 연습한 건 아무 소용이 없었죠."
1998년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이후 13년 만. 처음이나 다름없는 영화 현장은 새로움과 설렘의 연속이었다. 막내로서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김민상은 가족적인 현장 분위기 속에서 영화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2, 3주 정도 전주를 오가면서 촬영했어요. 저는 정말 힘들다는 전쟁 신에는 출연하지도 않았는데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고 힘들기도 했어요. 그래도 쟁쟁한 선배님들께서 카메라에 잘 잡히는 방법이라든가 노하우도 많이 가르쳐 주시고, 촬영 외적으로는 밥도 챙겨주셔서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당연합군과 고구려의 전투가 배경이니만큼, 양 진영 출연자들끼리의 신경전도 펼쳐졌다. 서로의 기세에 밀리지 않으려는 선배들을 보며 놀라기도 했다고.
"대본 리딩 때부터 양 진영이 서로 소리를 지르고 신경전이 장난아니었어요. 심지어 엑스트라 분들도 나뉘어서 밥을 드시더라구요. 워낙에 선배님들끼리 친하시고 장난삼아서 그러시는 거지만 처음에는 살짝 놀라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신경전이 서로 자극이 되서 약간의 상승작용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 스물 한 살. 연기말고는 다른 진로를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김민상의 꿈은 크고도 원대하다. 2000년 SBS 연기대상 아역탤런트상을 받을 때 수상소감으로 말했던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그의 꿈이란다.
"할리우드 진출을 조심스레 꿈꿔봐요. 영어라는 장점이 있으니까 노력하면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우리나라의 국가 이미지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9년 만에 돌아온 고국, 그리고 꿈을 향해 다시금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배우 김민상. "이상하게 보는 역할마다 다 멋있어 보이고 해보고 싶다"는 그의 비상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