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나영석PD 사칭, 보이스피싱 사기범 검거

3개월간 8명에게 2700여만원 가로채

최우영 기자  |  2011.02.10 16:04
'1박2일' 나영석 PD부터 박찬호 선수·교도관 등을 사칭해 '보이스피싱' 수법으로 사기행각을 벌여온 30대가 재판에 넘겨졌다.


이 30대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 중에는 지난해 발생한 '서울 양천경찰서 가혹행위 사건'으로 구속된 전직 경찰관의 부인도 포함됐다.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안원구 전 서울국세청 세원관리국장의 부인인 홍혜경 가인갤러리 대표도 범행대상이 됐다.

이 사건의 장본인인 김모씨(32·무직·전과 9범)가 '사기범죄'로 눈을 돌린 것은 2003년. 외환위기 당시이던 1999년 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자살한 이후 가세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고, 직업 없이 '백수 신세'를 면치 못하던 김씨는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고 말았다.


마땅한 범행수법을 모색하던 김씨는 얼굴 등 신상이 알려질 가능성이 적고, 전화 한통으로 쉽게 큰돈을 거머쥘 수 있는 '보이스피싱'을 하기로 결심하고 범행대상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 부인에도 접근


언론에서 이슈화된 인물들이나 교도소에서 만난 동료 재소자들의 가족들이 범행대상이 됐다. 김씨는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이들의 연락처를 알아낸 뒤 전화를 걸어 교도관이나 경찰관을 사칭해 사기행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피해자들에게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본인 명의로 된 은행계좌와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대담성도 보였다.

김씨는 출소 직후인 지난해 10월 언론을 통해 안 전 국장의 구속 소식을 접한 뒤 그의 가족을 상대로 돈을 뜯어내기로 결심했다. 대형 화랑을 운영하는 안 전 국장의 부인 홍씨에게 전화를 걸어 교도관을 사칭해 "남편이 전주교도소로 이감되는데 그 곳에 친한 교도관들이 많으니 잘 돌봐달라고 부탁해주겠다"며 300만원을 요구했다.


홍씨는 김씨의 말을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판단되는데다 돈을 마련할 형편도 되지 않아 김씨의 제안을 거절했다. 뒤늦게 김씨의 구속 소식을 접한 홍씨는 "선하고 거침없는 말투인데다 은행계좌가 본인 것이었기 때문에 사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양천서 고문 경관 부인은 220만원 뜯겨

홍씨에 대한 범행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김씨는 포기하지 않고 사기행각을 이어갔다. 같은 해 11월8일 서울 양천경찰서 피의자 가혹행위 사건으로 구속된 전직 경찰관 A씨의 부인 B씨(32)를 범행대상으로 지목했다. 김씨는 B씨에게 전화를 걸어 "교도관인데 남편이 교도소에서 사고를 쳤으니 잘 무마할 수 있게 500만원을 송금하라"며 돈을 요구했다.

김씨의 말에 속은 피해자 B씨는 김씨가 돈을 입금하라며 알려준 은행계좌로 220만원을 송금했다. 이후 B씨는 남편의 동료 경찰관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리고 뒤늦게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땅을 쳤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린 후였다.

김씨는 이후에도 같은 수법으로 범행을 계속하다 피해자들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에 범행 3개월 만에 꼬리가 잡혔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지난 1월 2일 대전에 있는 어머니 집에서 머무르던 김씨를 검거해 상습사기 혐의로 구속했고 김씨는 재판에 넘겨졌다.

나영석 PD. 나영석 PD.
경찰 조사결과 김씨는 지난해 9월26일 교도소에서 출소한 직후부터 검거 직전까지 8명에게 '보이스피싱' 수법으로 2700여만원의 금품을 받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또 18차례에 걸쳐 같은 수법의 범행을 시도하다 미수에 그치고 대전의 한 당구장에서 손목시계와 반지까지 훔친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이밖에도 야구선수 박찬호와 '1박2일'의 나영석 PD를 사칭해 사기를 치려다 실패하기도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한편 10일 오전 서울남부지법에서 첫 재판을 받은 김씨는 법정에서 "피해자들에게 사죄편지를 쓰고 있고 감옥에 갔다 온 뒤부터는 한식조리사와 제빵사 자격증을 취득해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겠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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