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재윤ⓒ홍봉진기자 honggga@
'김민자, 최명길, 심혜진, 손창민, 정보석….'
브라운관에서 보기 힘든 배우들이 모였다. 드라마 '야망의 세월', '에덴의 동쪽'의 나연숙 작가의 컴백작 이었다. 첫 회 오프닝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로 시작됐다.
일일 드라마의 블록버스트라고나 할까. 그러나 결과는 조기종영. 방송사가 들이민 잣대는 시청률이었다.
연극무대를 떠올리게 하는 낯선 어감의 대사가 시청자들에게 거부감을 산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대가족을 일궈온 한 여인의 집념과 다리를 저는 여리디 여린 소녀가 내뿜는 강인함을 그려낸 이 작품은 분명 막장 일색인 오늘날 브라운관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출연 배우 대다수는 당장의 시청률보다 가능성을 믿었다. 혹여나 시청률이 쭉 낮게 간다고 해도 모이기 힘든 배우와 제작진의 웰메이드 드라마를 향한 열정은 시청률 이상의 가치로 인정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전무후무한 방식으로 조기 종영됐다. 그간 많은 드라마들이 저조한 시청률을 이유로 조기종영의 희생양이 됐지만 뭉뚱그려 반 가까이 잘려나간 사례는 실상 이번이 처음.
바로 지난 2월 25일 69회로 종영한 MBC 일일드라마 '폭풍의 연인' 이야기다. 그리고 배우 이재윤(27)은 바로 그 비운의 작품의 남자 주인공이었다.
조기 종영 이후 꼬박 2주 만에 그를 만났다. 흔히들 하는 홍보를 목적으로 한 인터뷰는 아니었다. 그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그는 요청에 응했다.
캐나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애초에 배우를 할 마음을 먹지는 않았다고 한다. 탄탄한 체격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그는 운동 쪽에 소질이 있었고 대학에서의 전공도 신체운동학이었다.
"캐나다에서는 신체운동학을 전공했어요. 운동을 좋아하고 오래 했죠. 육상도 했어요. 그러니 늘 제가 가고자 했던 길은 운동과 관련된 길이었어요. 아마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스포츠 메디슨 쪽으로 진출했을 거에요."
재능도 있었다. 자메이카 출신 유명 육상선수 벤 존슨의 눈에 띄어 개인 트레이너로 발탁됐다. 하지만 호기심 반으로 우연히 응시해본 오디션에 덜컥 합격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간 그는 지난 2002년 발악 페스티벌-Made in Canada라는 타이틀의 오디션에 도전했고 연기자 우수상을 거머쥐었다. 사진작가 김중만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주변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반대할 것 같았던 어머니는 도리어 관심을 보였다. 결국 몸을 던졌다.
초반에는 화보나 잡지, 광고 쪽으로 주로 활동했다. 그는 "캐나다에서는 연예계도 생소하고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인 만큼 섣불리 할 마음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 때 나이가 19살 이었다.
하지만 우연처럼 시작한 연기는 점점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후 MBC 드라마 '늑대' SBS 드라마 '행복합니다'를 거쳐 MBC '맨땅에 헤딩'과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까지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맨땅에 헤딩' 역시 시청률이 낮아 조기 종영된 아픔을 겪었지만, 유노윤호 이윤지 아라 등 또래 배우들과 함께 해 행복했다. 이후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에 출연했지만 이 작품 역시 초반 블록버스터로 과대 홍보돼 시청자들의 혹평이 빗발쳤다. 그렇게 단단히 매를 맞고 첫 주연작 '폭풍의 연인'을 만났다.
캐나다에서 오래 산 그의 경력을 살려 첫 편에는 영어대사도 많이 등장했다. 부유한 환경에서 밝게 자라나 노력으로 꿈을 이루려는 열혈 청년 이형철의 이미지도 그의 선하며 강인한 눈매와 퍽 어울렸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이번에도 조기종영. 그래도 이재윤은 희망을 말한다.
"물론 고민도 많이 했고 힘들었어요. 안타깝기도 하고 자책을 하기도 했죠. 하지만 조기종영 소식이 들린 후에도 촬영장 분위기는 좋았어요. 선배들의 다독임이 희망으로 이어진 것 같네요. 모두들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보다 '끝날 때 까지 잘 해보자'였어요. 감독님 역시 전혀 흐트러지지 않으셨고...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김민자 심혜진 최명길 정보석 손창민 선생님.....그렇게 사람을 얻은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배우 이재윤ⓒ홍봉진기자 hongg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