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근 기자 qwe123@
배우 이시영은 지난 주말 지상파 스포츠 뉴스에 나왔다. 나이 29세. 서른을 목전에 둔 이 여배우는 그날 아침 경북 안동에서 열린 아마추어 복싱 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터였다. '독특한 취미' 정도로 여기던 이들은 깜짝 놀랐고, 복싱을 추억하는 중년까지 그녀에게 환호했다.
순식간에 '후끈' 핫스타로 떠오른 이시영은 그 모든 것이 못내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더욱이 주연을 맡은 영화 '위험한 상견례'(감독 김진영)의 개봉을 앞둔 터. 난감하다는 듯 '부담된다', '창피하다'를 되뇌는 그녀. 긴 팔을 쭉 뻗어 상대를 제압하고 우승에 팔짝 뛰며 기뻐하던 미녀 배우 챔피언은 과연 어디에 간 걸까.
"저는 사실 너무 적응이 안되고요, 조심스럽고, 진짜 겁이 나요. 저는 그 전에도 재회에 나갔고, 전에도 나갔고 또 전에도 나갔거든요. 다 좋게 이야기해주시고 하니까 기분이 좋은데 너무 창피해요."
"칭찬해 주시는 건 기간에 비해 잘 한다는 거지 딱 놓고 봤을 때 잘 하는 건 아니예요. 부풀려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사실 더 많아요. 이번은 신인대회잖아요. 경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치르는 대회에 나간거고, 제 직업이 배우일 뿐인데 이런 초짜 배우 때문에 전국체전이며 올림픽 이야기가 나오니까 너무 죄송하고 조심스러워요. 다른 선수들이 볼 땐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요."
그녀가 처음 복싱에 맛을 들인 건 방송이 무산된 단막극에서 복싱선수 역할을 맡으면서였다. 다이어트를 위해서라면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 아니겠냐고 그녀는 반문했다. 복싱의 매력을 묻자 잠깐 생각하던 그녀는 '너무 힘든 거요?'라고 답했다.
"처음 했을 때 몸살나고 아프고 해서 후회도 하고, 내가 왜 이런 역할을 맡았나 했거든요. 줄넘기 3분을 하는데, 그게 너무 힘들고 하기 싫은거예요. 그런데 이런 것도 봇하면 어디 가서 못할거야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걸 이기면 다른 것도 잘 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하다보니 적응되고 좋아졌어요. 어떤 운동도 모를 땐 싫다가 진도가 나가면 재미있어지잖아요."
ⓒ이명근 기자 qwe123@
이시영은 데뷔까지 무려 5년이 걸린 늦깎이 스타다. 톡톡 튀는 매력이며 연기도 주목받았지만, 그 독특한 취향 또한 화제가 됐다. 2009년 드라마 '꽃보다 남자'와 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로 막 유명세를 탈 무렵, 그녀는 건담 마니아로 화제를 모으며 일본 애니메이션 동호인들 사이에 '여신'으로 떠올랐고, 프리미어 리그 리버풀에 대한 애정 인증으로 축구팬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그리고 복싱이다. 그러나 이번엔 좀 다르다.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은 있다. 그러나 누구나 그걸 하지는 못한다. 시사회 일정을 앞두고 안동까지 달려갔다 오는 수고를 마다않고 챔피언 벨트를 거머쥔 그녀가 그저 대견한 것은 뛰어난 복싱 재능 때문만은 아니다. 이시영은 "저라고 왜 공포가 없겠어요. 그러나 걱정보다도 하고 싶다는 생각 더 컸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복싱보다는 당연히 연기에 대한 열망이 더 크다"고 강조했다.
"성취감을 느꼈던 일은 그 전에도 많았어요. 데뷔를 했을 때도 그렇고, 작품을 끝냈을 때도 그렇고. 잘하지는 못했지만 뭔가를 해냈다는 것. 사실 성취감은 연기했을 때가 더 컸어요. 대회에 나간 이상 저 역시 절실했던 건 맞지만 누군가 이기고 우승하겠다는 게 목표는 아니었어요. 도리어 어린 친구들의 집념이나 열정을 보면서 더 많이 배웠어요. 연기적인 데 더 도움이 된 것 같고요.
뭔가 하다가 말면 마음이 안 편해요. 이왕 했는데 다 해봐야죠. 연기도 그렇고, 복싱도 그렇고 그만큼 힘드니까 중간에 포기하기가 더 힘든 것 같아요. 그래서 성취감도 더 크고요. 승부 근성, 그런 부분이 원래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연기는 그렇게 안 되니까 더 욕심이 나는 것 같아요. 퀴즈를 푸는 거야 맞춰서 이기면 만점이 있지만 연기는 그게 없잖아요."
그녀는 복싱만큼 연기에서도 승부 근성이 강한 연기자다. 충북 청원의 시골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경상도 처녀와 전라도 총각의 좌충우돌 만남과 요란한 상견례를 그린 이번 '위험한 상견례'에서 꽤 능숙한 경상도 사투리 연기를 펼친다. 펜팔로 남자친구를 만나고 음악다방에서 신청곡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어쩌면 촌스러운 그 시대의 사랑이야기 또한 능청스럽게 그려냈다.
"직접 경험한 건 아니지만 그런 아날로그적인 게 좋더라고요. 결혼에 대해서는 어렸을 때 더 생각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시절엔 야외 결혼식장에서 정말 예쁘게 결혼해야지, 20∼21살에 일찍 결혼해서 나는 아기 일찍 낳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늦둥이라 오빠랑 8살 차이가 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지금 해도 늦었죠."
파트너 송새벽과의 만남 또한 즐거웠단다. 이시영은 '방자전'에서 너무 재미있게 본 송새벽을 바로 영화에서 만나 좋았다며 "생각보다 너무 잘생겨서 깜짝 놀랐다. 피부가 되게 좋더라"고 웃음 지었다. 송새벽 외에도 김수미 백윤식 박철민 정성화 등 웃음의 달인들이 모인 촬영 현장에서 이시영은 웃음을 참지 못해 혼이 났다고 덧붙였다.
"데뷔할 땐 지금을 상상도 못했어요. 이렇게 큰 역할도 해보고 새벽 오빠랑 주인공도 하고 포스터도 찍고 이런 생각을 데뷔할 때는 전혀 하지 못했어요. 작은 역조차도 좋았고요. 데뷔 준비는 오래 했지만 데뷔 후엔 짧은 시간에 운이 좋아 여러 작품을 하고 주인공도 맡았어요. 몇 년 지나고 작품을 하면 고쳐지고 좋아지는 부분이 있을 텐데 그 기간을 최대한 단축시키는 게 저의 몫이죠."
ⓒ이명근 기자 qwe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