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희 인턴기자
장진 감독의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굿모닝 프레지던트' '퀴즈왕'에 이어 24일 개봉하는 '로맨틱 헤븐'까지 여러 주인공이 등장해 옴니버스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영화들을 쉼 없이 내놓고 있다.
'퀴즈왕'과 '로맨틱 헤븐'은 아예 제작방식까지 바꿨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투자자로 제작에 참여,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돈을 받는 방식을 택했다. 장진 감독으로선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지만 영화계에선 지금까지 장진 감독에 신세졌던 사람들이 품앗이에 나섰다는 말로 폄하하기도 했다.
장진 감독은 영화계에 늘 신선함을 던져주곤 했다. 1998년 '기막힌 사내들'로 감독으로 데뷔한 이래 그는 특유의 엇박자 코미디와 독특한 감성으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비록 연출한 영화는 대박이 안 나고 제작한 영화는 터진다는 징크스에 시달리곤 하지만 장진 감독에겐 열광적인 지지자가 따른다. 충무로에는 연기는 장진에게 배워라는 속설까지 있을 정도로 배우들의 연기를 끌어내는데도 정평이 나있다.
장진 감독은 열정적인 팬들 만큼 심드렁한 반대 세력도 만만찮다. 그의 영화가 먹물 코미디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부터 정치부터 종교까지 삐딱한 시선에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들도 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9편의 영화를 연출하면서 작가 대접도 받았다. 작가 대접이 웬말이냐는 사람도 많다.
장진만큼 이야깃거리를 몰고 다니는 감독도 한국영화계에 드물다.
'로맨틱 헤븐'은 그런 장진 감독의 10번째 영화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모두 천국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란 따뜻한 전제에서 출발했다. 김수로 임원희 이한위 심은경 등 장진 사단이 두루 출동했다. 그는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퀴즈왕'에 이어 이번에도 가내 수공업 방식을 택했는데.
▶40억원짜리로 3년을 기획했다가 16억원으로 제작했다. 줄어든 제작비에 맞춰 고치지 않고 원래 시나리오를 갖고 그대로 찍었으니 고생이 많았다. 그만큼 이 이야기가 좋았던 것 같다.
-어머니의 죽음, 아내의 죽음, 그리고 첫사랑까지 각 에피소드가 남자의 판타지던데. 경찰소도 또 등장하고. 여전히 재밌는 군상들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내가 촌스런 가부장이라서.(웃음)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 정말 그렇다. 경찰서는 내가 살아가면서 본 가장 재미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군상 영화에 관심이 많다기보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계속 그랬던 것 같다. 다음 영화는 하나의 큰 줄거리에 주인공 3명이 붙어가는 이야기다. 꼭 군상 영화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요즘 작품만 그랬지, 뭐.
-'로맨틱 헤븐'에서 어떤 에피소드가 가장 끌리나.
▶아무래도 김수로가 끌어가는 에피소드. 아내가 갑자기 없어지면 그 헛헛한 심정을 어떻게 감당할까란 생각에 먹먹해진다. 사실 이 영화는 4년 전에 유서처럼 쓴 기획한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하나 둘 사람들이 떠나가는 데 그렇게 이별하는 게 허무하기도 하고. 그래서 아내가 이 시나리오를 보여주면서 나 죽으면 이런 곳에 갈 테니 걱정말라고 했다. 바로 딴 사람 만나지 말라면서.(웃음) 아내가 기술시사에서 영화를 본 뒤 "정말 좋다"면서도 "그래도 먼저 죽지마"라고 문자를 보냈더라.
-최근 영화들의 스코어가 그렇게 좋지 못하다. 참여한 사람들이 투자한 방식으로 진행한 '퀴즈왕' 때는 야심찬 시도였기도 했는데.
▶오히려 위기감이 없다. 이제 10편이나 했는데 아둥바둥하면 쪽팔리기도 하고. 지금까지 내가 연출한 영화들만 놓고 보면 내 돈은 아니지만 80~90억원 정도 벌었다. 각본과 제작까지 참여한 영화들까지 합하면 '웰컴 투 동막골'이 워낙 터졌으니 300억원 정도 되고. 이 정도면 한국영화에 산업적으로 나쁜 영향은 끼치지 않았구나란 생각을 한다. 내 색깔 유지하면서 이 정도 했으면 흥행에 계속 연연하지는 말아야지라면서 스스로 위안을 한다. 가열찬 지지와 매서운 비난을 받으면서 맷집이 워낙 좋아졌다.
-가톨릭 신자인데 지옥이 아예 없고 스님마저 천국에 온다는 설정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을 큰 주제로 삼았지만 기독교 도그마를 깬 부분이 있는데.
▶나 혼자 생각하는 이야기를 그렸을 뿐 의식적으로 도그마를 깨려 한 건 아니다. 그래도 감독으로 교리적인 부분을 놓고 몇몇 장면에 고민을 많이 했다. 스님도 천국에 온다는 발상은 단순한 재미적인 부분도 있고 왠지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담은 것이다.
류승희 인턴기자
-자기 복제란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군상영화에 에피소드식으로 전개하는 방식이 계속 이어져서 그럴텐데.
▶이번 영화는 감성적인 부분은 오히려 '아는 여자'랑 닮았다. 그냥 내가 재미있으니깐 그냥 가자란 방식으로 했다. 구조적인 방식이 공교롭게도 이어지긴 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니깐. 구조나 형식미, 미쟝센을 뜯으면서 보는 영화도 있지만 그냥 재미있게 보는 영화도 있다. 누가 작가로 생각해달라고 했나, 난 그냥 후자쪽 영화를 만드는데. 쩝.
-신예 김지원을 쓰기도 했고, 장진 사단도 두루 출동했는데.
▶김지원은 내가 해낼 수 있을까란 고민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아주 잘해줬다. 물론 주위에 여러 선배들이 워낙 잘해주기도 했지만. 같이 한 배우들은 아, 고민이 많다. 인생의 숙제다. '이끼' 개봉 뒤풀이 때 유해진과 유준상이 "10년 동안 같이 하자면서 말만 한다"며 뭐라고 막 하더라. 그랬더니 죽 듣고 있던 김준배가 "감독님 그러면 안되요"라고 했다. 그랬다가 김준배랑 다음 작품을 하게 됐는데 어느날 유해진이 전화가 왔다. "잘해봐요"라면서. 아, 숙제다.
-소녀시대 멤버들과 친분이 있던데. 같이 작품을 하려고 했다는 소리도 계속 있었고.
▶유리와 제시카 등이 VIP 시사회에 온다고 했는데 일본 지진 사태가 있는데 스타들이 사진 찍히고 그러는 게 좀 그렇지 않겠니라고 했더니 결국 안 왔다. 유리와는 작업을 계속 하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스케줄이 안 맞아서 어긋났다. SM엔터테인먼트 가수들과 작업을 하려는 게 꽤 있었는데 그 때마다 번번이 틀어졌다. 이번에는 유리가 '로맨틱 헤븐' 포스터를 봤는데 가슴이 아프다며 문자도 왔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도 숙제다.
-차기작 '아시안 뷰티'와 '에일리언 안첨지'는 어떻게 되가나.
▶'아시안 뷰티'는 한중일 합작으로 진행된다. 미스터리 액션물이다. A와 B에 시나리오를 줬는데 다들 일정이 영 안맞을 것 같아서 고민 중이다. '에일리언 안첨지'는 내년에 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