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일 기자 eddie@
'짝패'는 이상윤(30)에게 모험과도 같은 드라마다. 월화드라마 1위를 지키고 있는 MBC 특별기획드라마 '짝패'(극본 김운경·연출 임태우 이성준)에서 그는 귀동 역을 맡았다. 신분제가 엄격했던 조선시대, 부잣집 도령으로서 의심 없이 살았던 삶이 일순에 뒤바뀌는 혼란을 겪게 된 인물이다. 쉽지 않은 만큼 즐겁고 힘들다.
이상윤이 '남자 김태희'란 수식어를 과거의 것으로 만든 건 지난 4년을 쉼 없이 달린 노력 덕분이다. 그러나 이상윤에게 서울대에 재학중인 엘리트 모범생이라는 꼬리표는 여전하다. 물리학도와 연기자 사이 그 쉽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그에게선 연기에 대한 목마름이 느껴졌다. 인터뷰 내내 연기 얘기만 했다.
-'짝패'가 월화극 시청률 1위를 지키고 있다.
▶기분 좋다. 시청률이야 저희가 올렸나. 아역 부분에서 올라간 걸 흐름 타고 가는 거지. 시청률보다도 할 게 참 많은 드라마라, 할 게 너무 많아서 제가 다 소화를 해낼 수 없을 정도로 역량 이상의 것을 해내야 하는 드라마라 더 기쁘다. 사실 '즐거운 나의 집' 때는 하고 싶은 거에 비해서 맡겨진 것이 적어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10년 세월을 건너뛴 성인 등장이 꽤 부담스러웠을 텐데. 연기하기가 쉽지 않은 역할이기도 하고.
▶성인이 돼서 흐름이 살짝 끊길 거라고는 생각했다. 방송을 보니까 아쉬움이 남더라. 물론 떨어진 긴장감은 지나면서 회복이 되겠지만 연기자로서 어떻게 하면 더 보탬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이젠 욕먹을 거 다 먹었고 상황 설명도 마쳤으니 흐름을 타고 가는 것만 남았다. 따로따로 흐르던 이야기들이 하나로 모이면 더 큰 힘을 받을 거라고 기대한다.
귀동이가 저는 어렵고 지금도 어렵다. 처음에는 너무 어렵더라. 워낙 다양한 면을 갖고 있는 인물인데다가 성인으로 넘어온 뒤 별다른 설명이 없는 가운데 각자 해석을 해야 했다. 굉장히 어려웠다. 아역에 치인 건 아니었다. 성인만의 바뀌는 걸 해야되는데 어떤 이유로 변했는지에 대한 것을 만들어내고 해석하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 버거운 감정을 깊이 받아들여야 했다. 저는 이제 막 귀동이에 적응을 했는데 절절한 감정이 막 터지는거다. 제 감정을 더 끌어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유동일 기자 eddie@
-감수성에 대한 목마름이 느껴지는 것 같다.
▶감수성이 부족한 느낌이 좀 아쉬운 건 있어요. 제가 특별히 이성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감성적인 사람도 아니었던 것 같다. 평균 정도가 아닐까? 고등학교 시절에는 TV 드라마도 더 즐겨보고 감성적인 면이 더 있었을텐데 대학생이 돼서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이성적인 건 꾸준히 공부했기 때문에 논리적인 사고가 깔려 있다. 기본적인 사고 체계 자체가 머리로 이해를 하고 그 다음에 마음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불합리한 연기라도 절절한 감정이 가슴에 와닿을 때가 있지 않나. 그런 면에서 저를 부족한 저를 계속 개발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더 다그치고 싶다.
-고교시절엔 드라마 광이었다고?
▶자율학습이 오후 10시에 끝나면 후다닥 뛰어와서 월화수목 드라마를 거의 챙겨봤다. 히트작만 보지는 않았다. '해피 투게더', '내 마음을 뺏어봐', '햇빛 속으로' 등등 드라마를 봤다. 그 시절엔 전지현이 신이었다.(웃음) 대학교 1학년 첫 달까지도 드라마를 봤는데 개강파티, 신입생 환영회 때문에 좋아하던 드라마 마지막회를 못 본 뒤에 드라마 시청과 연이 멀어졌다.(웃음)
-지금은 어떤가?
▶그 뒤로도 드라마를 보긴 했지만 오히려 이 일을 하고 난 뒤에는 드라마를 많이 안 보게 되더라. 지금 생각해 보면 겁이 난 것 같다. 제 드라마도 그렇고, 남이 나오는 것도 그렇고. 예전에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봤던 걸 지금은 그렇지 못하게 되니까.
'짝패'에서 아버지로 나오시는 최종환 선배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 미드, 일드 볼 게 아니라 우리 나라 연기자는 우리나라 드라마를 봐야 한다고. 잘하는 사람은 왜 그런지, 못 하는 사람은 또 왜 그런지 보면서 배워야 한다고. 맞는 말씀인 것 같다. 스스로 반성하게 됐다.
-학업을 함께하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학교에 다니는 건 굉장히 이성적인 활동이다. 연기를 한다는 건 반대로 무척 감성적인 활동이고. 하나를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둘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다. 시간이 부족할 정도다. 그런데 학교를 졸업해야 하는 건 제게 현실적인 과제다. 열심히 하면서 최대한 연기적으로 나를 훈련시키는 데 투자하고 노력하려고 한다.
ⓒ유동일 기자 eddie@
-물리학도이자 연기자다.
▶사실 적성 평가에서 문과보다는 굉장히 이과 쪽으로 치우친 결과를 받았다. 문학이나 인문학은 참 어렵다. 학창시절에도 제일 약했던 과목이 국어다. 역시 보완해야 할 점이다. 선배들을 보면 대본 접근법이 다르다는 걸 느낀다. 나보다 넓고 깊게 보시는구나, 입체적으로 보시는구나 알게 된다.
물론 경험의 차이도 있을 것이고, 천부적인 연기자도 있겠지만, 요즘에는 연기를 전공한다는 데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론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겟다는 생각이 들고. 저는 현장에서 부딪히고 깨지면서 배워왔는데, 덧셈 뺄셈 배우듯이 항상 훈련을 받으며 배우는 연기도 차이가 있다고 느끼게 된다. 대학원에서라도 연기를 배워 볼 마음도 있다.
-일탈에 대한 욕심은 없나? 그게 연기에 도움이 된다고도 한다.
▶일탈도 많이 시도했다. 특히 재작년 '맨땅에 헤딩'을 하면서 더 그랬다. 나를 많이 깨자, 내가 못 하는 일을 막 하도록 만들자며 망가지려고 했다. 술도 마시고, 깽판도 부리고, 클럽도 가서 놀고 하면서 안하는 짓을 하려고 했었다.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다. 그 때는 직접 경험의 중요성을 크게 생각하던 때라 직접 몸으로 느껴봐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작년에 '인생을 아름다워' 때 선배님이나 김혜수 선배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의 전환이 되더라. 그 전까지는 내가 갖고 있던 걸 버리고 새로운 걸 하자는 생각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가진 걸 더 크게 만들자는 식으로 바뀌었다. 사고도 더 유연하게, 삶도 더 유연하게 바꾸고 마음을 열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걸 그 전에는 잘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해 많이 고민해온 것 같다.
▶연기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신인으로서는 폭발시키고 카타르시스를 얻는 연기를 해보고 싶지 않겠나. '신의 저울'이 제가 하는 것 이상으로 공부를 한 작품이었다면 그 다음 작품들은 조금씩 아쉬움이 있었거든요. 이번 작품이 왔을 때 드디어 기회가 왔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해보니 알게 된 거죠.
제가 100을 표현해야 하는데 딱 100을 갖고 있다면 미숙하지만 막 집중하고 열심히 해서 80, 90은 표현할 수 있을지 몰라요. 미친듯이 해서 120을 할 수도 있죠. 그런데 선배들은 이미 가진 게 500이고 1000이신 거예요. 10%만 보여줘도 100인데 그 이상을 보여주시거든요. 그 연륜과 내공을 보면서 나를 채우기로 했어요. 내가 100을 넘어 200이 되고 300이 되어야지요. 그게 제게도 즐거울 것 같고요.
-어떤 연기자가 되고 싶나.
▶요새 바뀌었다. 늘 대답이 그랬다. 다양한 역을 소화할 수 있고 어떤 역을 맡겨도 되는 전천후 연기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지금은 정말 모든 상황을 절절히 느낄 수 있는 역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뭐든 걸 잘 느꼈으면 좋겠어요. 가슴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