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혁 ⓒ임성균 기자 tjdrbs23@
장혁은 반듯한 남자다. 약속 시간도 철저히 지키고 상대방에 대한 예의도 깍듯하다. 그렇다고 바늘로 찔러 피 한 방울 안 날 남자도 아니다. 선함을 머금은 미소는 함께 하는 사람마저 미소 짓게 한다.
벌써 10년을 훌쩍 넘긴 연기에 대해 얘기할 때 그의 눈빛은 초롱초롱했고, 아내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때는 세상에 둘도 없는 행복한 아빠였다. 그러다 문득 스치는 표정에서 지울 수 없는 반항아의 향기도 묻어났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필모그래피를 통해 '천의 얼굴'이 돼가고 있는 그는 요즘 배우로 최고의 호시절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추노'로 거의 모든 시상식의 남우주연상을 휩쓸어서가 아니다.
"20대, 30대 모두 그 나이에 걸맞은 연기가 있다. 특히 남자 배우는 나이가 들면서 매력이라든지 표현할 수 있는 연기 폭이 상당히 넓어진다. 그런 점에서 나이가 드는 게 좋다. 물론 가능하다면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에 갇히고 싶다.(웃음) 표현할 수 있는 역량도, 힘도, 경험도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니까. 배우로 이 시간이 가는 게 아쉽다."
장혁 ⓒ임성균 기자 tjdrbs23@
애초 배우를 꿈꾼 것은 아니었지만 우연한 계기로 발을 들여놓은 이곳에서 장혁은 삶의 목표를 발견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보며 '배우다운 배우'로 꽃 피우고픈 갈망이 커졌다. 특히 한 작품, 한 작품 쌓여갈 때마다 더욱더.
"솔직히 연기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개인이 배우생활을 하며 접할 때의 자기 느낌을 표현하는 것뿐이다. 내게 있어 배우는 앨범처럼 매 작품에 당시의 '나'를 기록할 수 있어 좋고, 다른 사람의 탈을 쓰고 그 인물이 되어본다는 게 재미있다."
이미 10년 넘게 연기를 했지만 즐기기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장혁은 "'마이더스'에서 김희애, 윤제문 같은 선배와 연기하는 게 좋다"고 고백했다.
"좋은 선배와 하면 많은 영양분을 받는다. 배우는 그 캐릭터를 책임지고 살아 움직이게 하는 조종사인데 김희애, 윤제문 선배와 연기하며 선배들이 캐릭터를 표현해 내는 모습을 통해 많은 자양분을 얻는다."
이에 장혁은 배우로 어디쯤에 왔냐는 물음에 "위치랄 것도 없다"며 "선배들의 매력 적인 연기에 휩쓸리지 않게 내 중심을 지키는 게 오히려 힘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겸손했다. 하지만 착하기만 하다면 그 매력은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다. 겸손한 그지만 자신의 장점을 매력적으로 포장할 줄 안다.
"내가 진지해 보이나? 꼭 그렇지만도 않다. 하하하. 내가 이렇게 보이는 건 프로이고 싶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배우 자신은 사실 자신의 연기력이 어떤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96년 데뷔할 때와 지금의 내 연기는 많이 달라져 있겠지만 프로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매순간 배우로 최선을 다하게 한다."
철저해 보인 이유다. 그는 매력적인 프로 배우이고 싶다.
장혁 ⓒ임성균 기자 tjdrbs23@
"데뷔 후 숱한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엄밀히 따지면 배우는 나를 기용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무대가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난 나를 매력적으로 포장해야 한다. 옛날 오디션에서 떨어졌을 때를 생각해 보면 내가 매력이 없어 고배를 마신 거다. 그래서 지금은 작품이 끝난 후, 함께 한 스태프 중 다수가 다시 나와 일하고 싶은 욕심이 들게 하고 싶다."
물론 장혁은 "이건 일적인 부분에서의 나고 사적인 부분에서는 또 다르다"며 깨알 같은 웃음을 선사한다.
"마냥 진지하기만 하면 재미없지 않나?"
순간 '추노'에서 멋진 복근을 드러내고 거친 남성미를 풍기던 그가 보였다. 그러더니 이내 '마이더스' 속 컵라면 먹는 신 얘기를 꺼내며 "실은 튀김우동을 좋아한다"는 엉뚱한 답변을 내놓는다.
장혁은 틀에 갇힌 배우이길 거부한다. 프로이지만 늘 다양한 얼굴로 좌중을 사로잡는, 그래서 끊임없이 발전하는 영원한 반항아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