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나는 가수다' 출연가수들. 이소라 윤도현 박정현 김연우 BMK 김범수(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리얼리티 속 음악들이 방송가를 넘어 가요계의 핵으로 떠올랐다.
노래 잘하는 가수들이 감동의 무대를 선사한 MBC '나는 가수다', 기성 가수들의 이색적인 오페라 도전기를 그린 tvN '오페라 스타', 가수의 꿈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MBC '위대한 탄생', 엠넷 '슈퍼스타K'까지, 이야기가 덧입혀진 방송 속 음악들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며 가요계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는 기존 가수들의 신곡을 제치며 응원차트에서도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무한도전'에 삽입된 이적의 옛 노래는 실시간 차트 1위에 올랐고, '1박2일'에 삽입돼 재조명된 조용필의 곡도 새삼 관심을 얻었다. 가수 이현은 트위터에 "'나는 가수다'의 노래들이 매주 가수들의 신곡을 제치고 1위 할 것 같아 걱정된다"는 글도 남겼다.
음악만으로 승부를 걸기에는 한계에 다다른 국내 가요계다. 가요계의 불황 속 대중은 TV에 한 없이 노출된다. 막강한 팬덤을 거느리는 몇몇 가수들을 제외하고는 음악을 제대로 홍보할 수 있는 창구도 없는 현실이다. 음악만 하는 가수들을 위해 예능이 아예 노래하는 판을 깔아준 '나는 가수다'는 분명 대중음악에 대한 관심을 이끌었지만 한편 씁쓸한 기운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빠르게 변하는 대중의 기호를 그대로 반영한 결과, 생생한 출연진들의 스토리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노래는 곧 짠한 감동을 주는 대형 히트곡으로 이어지고 있다. '슈퍼스타K'에 출연한 이들의 감동적인 사연이 노래에 집중하게끔 하고 오페라에 도전한 가수들의 색다른 음색에 클래식 차트도 오랜만에 들썩이는 요즘이다.
tvN '오페라스타' 출연가수들. 임정희 JK김동욱 김창렬 문희옥 테이(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방송 캡쳐
이 같은 분위기에 가요계는 대중음악의 다양한 활성화와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내고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강일권씨는 "TV 리얼리티쇼를 통해 음악이 인기를 끄는 것은 한국뿐만이 아니다. 방송에 삽입된 곡이 신곡을 제치고 인기를 얻고 몇 년 전 노래들이 다시금 주목도 받는다. 하지만 리얼리티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이자 대중음악계의 걱정거리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80년대 마이클 잭슨의 '문 워크' 신드롬과 함께 떠오른 뮤직비디오의 인기는 MTV시대를 열었고,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의 변화의 시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유튜브의 인기는 온갖 패러디 열풍도 낳으며 활기를 불러일으켰다. 이어 리얼리티 속 음악들이 가요계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가요 팬들의 음악을 인식하는 방식이 가벼운 엔터테인먼트로 기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음악이 디지털화되면서 음악을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대중이 줄어드는 요즘, 리얼리티 쇼의 가요계 장악은 음악계의 소비 패러다임의 변화를 낳는다. 가요 팬들은 점점 소극적인 소비 행태를 보이고 있고, 음악을 찾아듣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엔터테인먼트에 길들여져 대중에 맞춰지는 꼴이 된다는 의견이다.
강일권씨는 "리얼리티 쇼에 담긴 음악들은 오래된 명곡을 재조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시청률이 보장된 방송 속 음악들에 가요계가 이끌려 갈수도 있다. '나는 가수다'가 주기적으로 음원을 발매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생각해 봐야할 때다. 옛 노래와 신곡이 공존하는 가요계가 절실하다"라고 말했다.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고, 리얼리티 속 음악들이 비디오 스타를 죽였다. 귀로 듣는 음악은 있는 그대로의 음악으로서 존재해야 할 터. 보이는 것과 또 다른 자극적인 어떤 것에 점령당하는 요즘 가요계다. 다음엔 어떤 것에 음악이 죽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