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희 인턴기자
2008년 한국영화계에 앙팡 테리블이 등장했다. '과속스캔들'의 강형철, '추격자'의 나홍진,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비슷한 또래인 세 감독은 전혀 다른 색깔의 영화로 한국영화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로부터 2년이 조금 넘어 나홍진 감독은 '황해'로 영화적 야심을 드러냈다.
나홍진 감독과 74년 동갑내기인 강형철 감독은 5월4일 개봉을 앞둔 '써니'를 만들었다. '써니'는 고교시절 칠공주였던 아줌마가 친구들을 찾아 나서면서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를 긍정한다는 이야기. 강형철 감독은 80년대를 즐거운 한 때로 추억하며 영화적 재능을 입증했다.
-남자 감독이 여자, 더군다나 아줌마 이야기를 어떻게 착안했는지.
▶인생의 아이러니를 풀어보고 싶었다. 그러자면 사람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우리 엄마도 첫사랑이 있었을텐데, 라는 점에서 출발했다. 예를 들어 이모님이 굉장히 즐거운 소녀시절을 보내셨다고 들었다. 이모 이름 남희에서 따서 시나리오를 쓰다가 오타가 나서 나미로 썼다. 그런데 나미를 보니 그 노래를 따올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러면 더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제목도 칠공주파 이름을 제목으로 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보니엠의 '써니'가 떠올랐고, 의미도 좋고 아이들이 춤추는 모습도 연상됐다.
-80년대를 고통이나 회한이 아닌 즐거웠던 한 때로 그린 게 신선했는데. 80년대를 유년기에 보내 상대적으로 그 시대를 즐거운 한 때로 그리는데 죄의식이 없는 게 아닌가도 싶고.
▶이야기 정체성을 어디에 둬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 것 같다. 80년대가 정치적으로 우울했던 시대이긴 하지만 그런 것들은 상관없는 소녀들의 시대를 그리고 싶었다. 나뭇잎이 굴러도 웃는 소녀들의 시대였으니깐.
-데모대와 전경이 맞붙을 때, 칠공주와 상대편 칠공주가 싸운다. 그 장면에 조이의 '터치 바이 터치'를 배경 음악으로 삼은 게 인상 깊었는데.
▶17대 1처럼 개인사에 남아있는 무용담을 보여주고 싶었다. 선곡은 콘티 때부터 염두에 뒀다. 음악과 콘티, 이야기를 맞물리게 하고 싶었다.
-여고 교실 첫 장면이나 과거 비디오 장면 등 원신 원컷이 많다. 다양한 캐릭터와 이야기를 한 컷에 담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여고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컷으로 쪼개기보단 하나로 보여주고 싶었다.
-패거리들이 우르르 대결하는 장면이라든지, '라붐' 패러디라든지 의도적으로 촌스러운 표현을 써서 오히려 세련되게 느껴진다. '과속스캔들'의 투박함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은데.
▶전형적이고 유치한 콘티들인 게 맞다. 우리는 진지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웃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라붐' 패러디는 그 영화를 모르는 사람들이 봐도 웃기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류승희 인턴기자
-과거와 현재, 두개의 이야기를 절묘하게 넘어가는 게 능숙하게 느껴지는 한편 현재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밀도가 적다는 느낌도 있는데. 나미 딸을 괴롭히는 이야기를 좀 더 뒤로 넣던지, 장례식 장면에 눈물과 웃음을 더 끌어올릴 수도 있었을텐데.
▶두 개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따로 논다는 느낌을 주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지금 버전이 옳다고 생각했다. 과잉되지 않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후반부 수지에게 생기는 극적인 장면이 영화에 긴장을 더하는데, 상대적으로 갈등을 주는 인물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진 않은지.
▶갈등을 주는 친구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건 아쉽다. '칼리토'에서 알 파치노를 죽이는 게 별 비중없는 인물이었다. 그게 인생의 아이러니고, 그런 것을 넣고 싶었다. 아직 공부할 게 많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장례식 장면은 너무 친절하지 않냐는 의견도 있다. 감독이 행복한 이야기를 좋아하던지, 해피엔딩에 강박이 있던지, 란 생각이 들던데.
▶그 뒤로 이들은 잘 살았습니다란 동화적인 화법으로 끝을 내고 싶었다. 돈으로 다 해결한다는 의견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돈이 있다면 저렇게 쓰면 멋있지 않나 생각한다. 또 돈보다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를 주고 싶었다.
장례식에서 춤추는 언니들을 보면 멋지지 않나. 해피엔딩에 대한 강박이라기보다 다른 장르라면 다른 방식으로 마무리를 했을 것이다. 1차 관객으로 내가 제일 보고 싶고, 맞다고 생각한 결말이기도 하다.
-두 편 연속 코미디다. 휴먼에 방점이 찍히긴 하지만. 연출의 리듬이 절묘해서 다른 장르도 어울릴 것 같은데, 계속 이 장르를 하고 싶은지.
▶많은 이야기를, 많은 장르로 하고 싶다. 공포만 빼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냐에 따라 다를 것 같다. 그래도 느와르나 액션이라고 해도 유머가 있는 그런 이야기를 할 것 같다.
세 번째 영화가 달라진다고 해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코미디를 했던 건 분명히 아니다. 또 코미디라기보단 드라마에 유머를 넣는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신자로 은연중에 선한 창조에 대한 강박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무의식 중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종교 영화를 찍는다면 영화를 보는 내내 전혀 종교영화인지 모르지만 나중에 어떤 구절을 깨달을 수 있는 그런 영화를 하고 싶다.
-주요 아역만 7명에 성인 연기자도 그 만큼의 숫자다. 캐릭터를 다 살리면서 분위기를 끌어내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배우들이 너무 훌륭했다. 첫 번째 디렉션을 정말 잘 지켜줬다. 절대 친해지라고 했다. 서로 색깔이 다르기 때문에 경쟁도 없었고. 현장에서 재잘재잘 할 때는 신경이 쓰이기도 했지만 내가 시킨 건데 라면서 모니터만 열심히 봤다.
-데뷔작에 성공한 감독이 같은 제작사에서 한편 더 하는 일이 당연한 듯 하지만 드문 게 현실인데.
▶절대 정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제일 좋은 관계가 내가 이렇게밖에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렇게 해줬는데 너무 고마워, 란 관계인 것 같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이것밖에 못해줘, 이런 건 나와 안 맞는다. 토일렛 픽쳐스에서 '과속 스캔들'로 데뷔시켜줬고, 정말 잘해줬고, 그래서 이번 작품을 같이 한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