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훈 감독 "'7광구' 비난, 90% 감독 탓"(인터뷰)

전형화 기자  |  2011.08.17 12:08
이기범 기자 leekb@ 이기범 기자 leekb@


'7광구'는 올 여름 가장 기대를 모은 한국형 블록버스터였다. 기름을 캐는 시추선에 괴물이 등장하면서 벌어진다는 내용에 본격적인 3D로 일찌감치 '해운대'를 잇는 천만 영화가 될 것이란 소리도 돌았다.


'화려한 휴가' 김지훈 감독의 연출에, '해운대' 윤제균 감독의 기획력, 모팩의 기술력이 3박자를 이룰 것이란 기대였다. 거기에 국내 최대 투자배급사 CJ E&M과 '시크릿 가든'으로 상종가를 올린 하지원까지, 금상첨화였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고 했나. 막상 뚜껑을 열자 '7광구'에는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3D가 어색하다, 배우들의 연기가 이상하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허술하다 등 숱한 비난에 질식 직전이다. 이런 폭풍 비난에 '7광구'는 900개가 넘는 스크린을 확보했는데도 불구하고 16일까지 215만명을 모으는데 그쳤다. 손익분기점인 400만명에 도달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7광구'의 김지훈 감독을 만났다. 비난이 과한 측면도 있고, 비난이 마치 놀이처럼 된 부분도 있다. 좋다고 옹호했다가 뭇매 맞는 모양새도 있다. 과연 김지훈 감독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 당초 김지훈 감독과 12일 만날 계획이었다. '타워'를 찍고 있는 와중에 약속을 잡았다. 하지만 스트레스로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약속을 미뤘다.

16일 김지훈 감독을 스타뉴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트레이드 마크인 선글라스는 벗었다. 긴 이야기를 가감 없이 옮긴다.


-건강은 어떤가. '7광구' 때리기가 과도한 측면도 있는 것 같은데.

▶마음은 많이 안정됐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실망이 커서 보상심리로 더 그렇지 않나 싶다. 상자를 열었는데 썩은 사과가 몇 개 있으면 안 썩은 사과가 많아도 열 받지 않나.

-'7광구'에 썩은 사과가 있단 소리인가.


▶그렇죠. 아무래도 허점이 있는데 그게 더 극대화된 게 아닌가 싶다. 숨기고 싶은 건 극대화되고 내세우고 싶은 건 인정해주지 않은 것 같다.

-어떤 부분이 숨기고 싶은 부분이었는지.

▶아무래도 3D에 대한 눈높이가 '아바타' 이후 높아졌는데 기준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지만 예산과 스케줄로 아쉬운 부분이 많다. 그래도 뭐가 잘못 됐는데 이렇게 사생아 취급을 받나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결국 연출 때문에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평가절하된 것 같다.

-'7광구'는 처음 안병기 감독의 토일렛픽쳐스와 함께 작업하려 하면서 김지훈 감독에게 연출 제안을 했다가 고사했었다. 이후 김지훈 감독이 '타워' 연출을 하기 전 '7광구'를 연출하고 후반작업은 윤제균 감독이 맡고 그 뒤에 '타워'를 하기로 정리가 되면서 하게 됐는데.

▶처음 고사했을 때는 우리 기술로 그게 가능하겠나 싶었다. 다시 한다고 했을 땐 기술적인 확신이 있었다. '타워'를 준비하다가 중간에 '7광구'에 끼어든 것은 아니다.

-감독이 연출부터 후반작업까지 총괄을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오해 중 하나다. 3D영화일수록 후반 작업에 감독의 역할이 줄어든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오케이 컷을 결정하는 정도 밖에 없다. 감독이 간섭할수록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 더구나 예산과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만큼 역할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윤제균의 기획력, 김지훈의 연출력, 모팩의 기술력이 뭉쳤는데 결과가 기대 이하라는 평을 받는데.

▶3D에 짓눌린 게 있는 것 같다. 3D란 게 수정이 어렵다. 90%가 감독 탓이다. 개봉 이후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영화계에 공공의 적이 돼 버린 느낌이다. 처음엔 인간인지라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현상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게 아니라 냉정하게 봐라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면 합리화가 될 것 같다. 다만 감독은 욕을 먹더라도 스태프와 배우의 노력으로 얻어진 영화적인 가치는 인정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전작인 '화려한 휴가'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평온한 일상에 불안함이 조금씩 싹트고 이윽고 본격적인 재난이 시작되는 게.

▶서로 다른 영화니깐. 본격 괴수영화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드라마의 완성도가 떨어졌다. 제대로 된 괴수영화를 만들자는 데 짓눌렸던 것 같다. 판단미스였다. 드라마를 더 많이 줬어야 하는데 기술에 집중했다. 감독의 탓이다. 그래도 주어진 환경에서 모두들 최선을 다해줬는데 그 가치까지 폄하되는 게 아쉽다.

-기자간담회에서 괴수영화에서 괴물이 사람을 죽이는데 이유가 있겠냐고 했지만 사실 괴물 캐릭터의 문제였던 것 같다. 괴물 캐릭터가 명확했다면 그 부분 역시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 텐데.

▶원래 괴물의 내러티브가 있었다. 새끼를 키우고 그래서 사람들을 죽여야 하고 나중에 새끼를 탈출시키려하는...그런 부분이 후반작업이 늦어지면서 기술적인 퀄리티가 많이 떨어져 부득이 삭제할 수 없었다. 그 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결국 기술이 문제였단 소리인가.

▶선택과 집중을 잘 못한 것이다. 3D 영화, 괴수 영화, 이런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기술적으로 안 되는 부분을 솎아내다 보니 내러티브가 훼손됐다.

-3D라는 건 결국 영화를 보여주는 한 방법일텐데. 3D에 초점을 맞추다가 내러티브를 놓쳤다는 건 본말이 전도됐다는 뜻이 아닌가.

▶3D를 하려 하면서 다른 것을 희생했던 게 있었던 건 사실이다. 감독이 3D와 이야기의 균형점을 잡으면서 해야 했는데 그걸 못했다.

이기범 기자 leekb@ 이기범 기자 leekb@


-영화 초반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중반 이후 괴물 영화로 이야기가 몰입되지 못한 게 가장 큰 패착인 것 같다. 밀실 스릴러를 기반으로 긴장을 주고 괴물이 등장하면서 놀라움을 안기고 나중에 괴물을 없애면서 카타르시스를 줘야 하는 데 그게 실패했는데.

▶맞는 지적이다. 모두의 잘못이다. 모두가 못 봤다. 기술쪽에 포커스를 맞추다보니 내러티브를 놓쳤다. 괴물이 풀고 가는 이야기를 봤어야 하는데 모두가 괴물이 잘 만들어졌는지를 봤다. 결국 두개의 균형을 못 잡은 감독의 탓이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 캐릭터 설정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평면적이고 단순한 캐릭터들이다 보니 연기들이 어설퍼 보이는데.

▶미우니깐 계속 미운 것만 보이는 게 아닐까.(웃음) 배우나 제작환경의 문제는 아니다. 감독의 문제다. 궤도를 이탈해도 목적지를 잘 찾아가면 무한도전이 되지만 목적지를 잘 찾지 못하면 무모한 도전이 된다.

-하지원의 경우 여전사 캐릭터에 포커싱이 맞춰지다보니 캐릭터가 짓눌린 듯한데. 괴물이 등장할 때마다 어깨가 긴장돼 소위 '어깨차렷'이 되던데.

▶여전사를 표현하는데 짓눌린 부분이 있다는 건 인정한다. 단순한 플롯을 가져가야 한다는 데 짓눌리다보니 드라마를 쌓아놓고 풀어가지 못했다. 인간의 캐릭터보다 괴물의 캐릭터 구축에 신경을 더 썼다. 그런데 그 부분이 날아가 버리면서 괴물도 놓쳤고 인간 캐릭터도 놓쳤다.

-'박수쳐'가 웃음도 주지만 어이없다는 반응도 있다. 김성수 감독이 '무사'를 찍을 때 있었던 에피소드를 그대로 살린 건데.

▶시나리오에 원래 있었다. 난 반,반이었다. '화려한 휴가' 이후 어느 순간 코미디에 자신이 없어지더라. 원래 삭제된 부분에 캐릭터들의 코미디가 많았다. 박수쳐 장면은 극의 몰입도가 떨어지다보니 그런 지적이 나오는 것 같다. 외국 상영 버전에 삭제를 했었는데 다시 넣었더니 그 부분에서 또 많이 웃더라. 다음엔 안할 것이다. 많이 혼났으니깐.

-일부 어색한 장면을 제외하면 기술적인 완성도는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원래 주어진 예산은 70억원 정도였다. 3D 컨버팅 비용이 40억원이고 세트가 20억원, 남는 돈으로 개런티와 진행비를 써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한국에서 3D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난 처음엔 300만명 정도를 생각했고, 윤제균 감독은 400만명 정도를 생각했다. 그런데 기대가 커지고 예산과 시간에 압박을 느끼고 결국엔 변명 같지만 결과가 이렇게 됐다. 그래도 시간과 비용 대비 3D 완성도는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기술이 영화를 만드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김지훈 감독이 생각하는 오락영화에 대한 개념적인 접근, 아니면 CJ E&M이 생각한 기획영화로서 접근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지.

▶이번에 반성을 많이 했다. 관객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런 쪽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아니었다. 관객이 이걸 보고 싶겠지라고 생각했더니 아니었던 것이다. 여름에 괴수영화, 보고 싶을 것이다 이런 접근 방법이었다. 성장통을 엄청나게 겪고 있다. 처음에는 이 영화의 본질이 이게 아닌데 왜 이러나 싶었는데 귀를 열고 들으니 다 맞는 이야기더라.

-윤제균 감독이 '7광구'로 과도하게 질타를 받는 것도 같은데.

▶이 영화를 할 때 윤제균 감독과 하지원의 의리를 보고 순수함을 느꼈다. 하지원이 몇 년 동안 이 프로젝트를 기다려주고 그 신뢰에 보답하는. 과연 그런 순수함이 한국 영화판에 얼마나 많이 있을까란 생각이 들더라. 행복해 보였다. 나도 그 행복에 동참하고 싶었다. 물론 잠깐 행복했다. '7광구'가 해외 46개국에 수출됐을 때.

얼마 전에 무대인사를 가는데 하지원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하지원이 울먹이며 '내가 더 오토바이를 잘 타고 더 굴렀어야 하는데 죄송하다'고 하더라. 울컥했다.

-'7광구'의 결과가 자칫 '타워'에 악영향을 끼칠 지 걱정되는데. 간섭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도 걱정되고.

▶너무 간섭이 없어서 걱정이다.(웃음) 저도 솔직히 아노미 상태다.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반성 중이고. 다만 시간이 흘러 이 영화에 스태프와 배우들의 노력은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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