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범 기자
'아바타' 이후 3D가 일시적인 유행일지, 아니면 주류가 될지, 세계 영화계에선 숱한 토론이 일었다.
누군가는 블록버스터는 3D로, 그렇지 않은 영화는 필름 방식으로 제작될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텔레비젼, 노트북 등 하드웨어들이 점차 3D 방식을 택하는 만큼 영상 콘텐츠 중 하나인 영화도 3D로 갈 것이라 했다. 사라지는 좋은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국내도 마찬가지였다. 장치산업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고, 3D 콘텐츠를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었다. 정부도 3D 콘텐츠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윽고 3D 에로영화 '나탈리'가 선보였고, 한국형 3D 블록버스터 '7광구'가 개봉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한국형 3D 영화는 시기상조란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할리우드와 비교도 많이 했다. 준비 중이던 또 다른 3D영화들에 브레이크가 걸리기도 했다.
과연 3D는 영화의 미래일까? 한국영화에 3D는 멀고 먼 일일까?
마침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선 아시아영화인들이 모여 3D영화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했다. 7000만원으로 만든 초저예산 3D영화 '물고기'가 선보였으며, '괴물' 3D 버전도 상영된다.
홍콩이 낳은 세계적인 감독 서극에 답을 물었다. 서극 감독은 12월 중국 개봉을 앞둔 3D 무협영화 '용문비갑'을 찍었기에 이번 영화제에서 3D영화에 대해 가장 많은 목소리를 낸 사람이기도 했다.
서극 감독은 "필름으로 영화를 찍은 사람 중 한 명으로 안타깝긴 하지만 3D는 영화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화는 현실을 스크린에 진짜처럼 보여주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며 "무성에서 유성으로, 흑백에서 칼라로, 음향도 서라운드 시스템으로 발전해왔다. 3D는 보다 더 현실을 실제처럼 느끼게 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자동차가 달려가다가 부딪히는 장면을 찍을 때 기존 방식은 실제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촬영부터 편집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하지만 3D는 그 자체로 관객에게 생생한 느낌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서극 감독은 "'아바타'가 개봉한 뒤 3D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며 "그렇지만 현재 할리우드 영화 상당수가 3D로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영화의 발전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과학기술과 노하우, 시작의 수요가 합쳐져 결국 3D영화가 주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 이상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듣지 않고 CD와 디지털 음원으로 음악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란 것이다. 시장의 수요 또한 점차 극장들이 3D상영관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조건은 충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극 감독은 "중국은 1만개 스크린이 있는데 그 중 4000개가 3D 스크린"이라며 "하루에 2개씩 스크린이 늘고 있는데 새롭게 생기는 대부분 극장이 3D"라고 말했다.
서극 감독은 "중국에선 5년 뒤에 4만개 정도 스크린이 생길 것이고 대부분은 3D 극장이 될 것"이라며 "지금은 토론보단 3D기술을 익히고 행동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기범 기자
또 서극 감독은 "일부 3D영화가 미흡한 것을 보고 혹평하기도 한다"면서도 "처음 칼라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도 과장된 효과가 많았다. 노하우가 축적되면 그런 부분은 차츰 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3D 영화를 주목하고 계속 만드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고 했다.
서극 감독은 '아바타' 이전에도 할리우드에서 3D영화를 만들었다며 "대부분 저예산 공포물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아바타'가 성공하면서 큰 자본을 투입해 3D로 만들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메이저 스튜디오가 알게 됐다"며 "그 이후 여러분은 '트랜스포머3' '해리포터' 등이 3D로 만들어져 흥행에 성공한 것을 목격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엄청난 자본이 투입돼 만들어지는 할리우드 3D블록버스터와 경쟁에서 한국을 비롯한 비 할리우드에선 어떻게 3D영화를 만들어야 할까?
서극 감독은 "우선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 할리우드가 아닌 로컬에서 만들어지는 3D영화를 응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할리우드에선 캐릭터와 이야기가 모자란 점이 있어도 엄청난 자본과 기술로 3D영화를 만들어 부족한 점을 보충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비 할리우드 지역에서 3D영화를 만들 땐 돈과 시간이 모두 부족하기 때문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비해 부족한 면이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극 감독은 "관객의 선택이긴 하지만 소규모 자본으로 3D를 만드는 시도를 응원해야 계속 발전할 수 있다"며 "지금 3D영화는 과학기술과 문화의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초기 단계다. 로컬 3D영화를 응원하는 것은 미래의 전망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서극 감독은 "할리우드는 판타지, SF 등 다양한 장르에서 3D를 활용한다"며 "아시아는 아시아의 문화로 새로운 이야기에 3D를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양은 서양의 상상력을, 아시아는 아시아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드는데 아시아의 이야기 풍부함이 서양보다 훨씬 깊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서극 감독은 "나는 지금 무협영화를 3D로 찍고 있다. 하지만 더 다양한 이야기가 3D로 만들어질 것"이라며 "나 역시 3D로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뉴스나 스포츠, 이런 것들이 3D로 보여질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3D에 더 익숙해질 것"이라며 "나 역시 거기에 일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서극 감독은 자신의 말이 사견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그의 말에는 역사의 한 면을 통찰하는 현인의 울림이 느껴졌다. '7광구'에 비난의 목소리를 퍼부었던 사람들이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지적이기도 했다.
올 부산영화제에선 2013년 개봉을 목표로 준비 중인 김용화 감독의 3D영화 '미스터 고' 일부가 공개됐다. '미스터 고'는 한중 합작을 목표로 관계자들이 이번 영화제에서 막바지 조율을 하고 있다.
좁은 한국 시장과 자본의 한계를 중국과 합작을 통해 돌파하려는 시도다.
과연 3D가 영화산업의 미래가 될지, 한국영화는 미래를 차분히 준비하고 있는지, 조만간 정답을 목격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