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왕' 연상호 감독 "韓애니 힘 보여주고파"②

전형화 기자  |  2011.11.01 08:55


'돼지의 왕'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낳은 걸물이다.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돼지의 왕'은 넷팩상(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한국영화감독조합 감독상, 무비꼴라쥬상 등 3개 부문을 석권했다. '똥파리'나 '무산일기'가 부산영화제를 기점으로 화제몰이를 낳았듯 '돼지의 왕'은 부산의 적자로 기억될 것 같다.


1억5000만원이란 믿기지 않는 제작비로 만들어진 이 애니메이션은 가족물이던 '마당을 나온 암탉'과는 달리 지독한 성인물이다. 회사가 부도난 뒤 충동적으로 아내를 살해한 남자가 15년 전 중학교 시절 친구를 찾아 당시 벌어졌던 비참한 사건을 이야기하며 실체를 찾아가는 미스테리 물이다. 디즈니를 비롯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과도 다르며, 일본 애니메이션과도 닮지 않았다.

이 물건을 들고 나온 연상호 감독은 의외로 수더분했다. 주변에선 "저놈의 머리를 파헤쳐 봐야해"라고 말한다지만 꿈을 찾아 움직이는 보통 청년이다. 78년생인 연상호 감독은 어릴 적부터 애니메이션에 미쳤다.


'아키라'와 '우르츠키동자' 등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졌고, '건담'을 좋아했으며, 미야자키 하야오에 열광했다. '은하철도999'는 세계관에 미쳤고, '에반게리온'은 왠지 싫었다. 애니 오타쿠였고 그 세례를 받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작품은 지극히 한국적이다. 다만 기괴할 뿐.

연상호 감독이 97년 내놓은 첫 단편은 'D의 과대망상을 치료하는 병원에서 막 치료를 끝낸 환자가 보는 창 밖 풍경'이란 제목을 갖고 있다. 2000년엔 'D데이'를 내놨고, 2003년엔 '지옥', 그리고 2006년 '지옥, 두개의 삶', 2008년엔 '사랑은 단백질'을 만들었다. 제목만 봐도 이 감독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돼지의 왕'을 애니메이션이라고 불러야 하나 만화영화라고 불러야 하나. 너무나 영화 같기에 만화영화란 표현이 더 맞을 것 같기도 한데.

▶ 만화영화란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애니메이션을 하는 분들 중에는 만화영화란 표현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잘 이해가 안 된다. 만화영화란 표현을 사용하면 오히려 애니메이션 관련한 많은 부분을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돼지의 왕'은 OEM(주문자 생산방식, 한국 애니메이션 회사들은 상당수 미국이나 일본에 동화를 납품하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회사에 다녔기에 만들 수 있다고 했는데.


▶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었고 언젠가 감독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OEM 회사에 들어갔는데 1년 반 정도 지나자 여기서 백날 해봐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만 둘 때 이사님이 두 가지만 기억하라고 하셨다. OEM 회사에서 후지게 일하는 게 아니라는 것, 또 하나는 여기 있는 사람들처럼 일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OEM 회사를 다녔기에 어디에서 돈을 줄일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작업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OEM회사에 다녔고, 혼자서 애니메이션을 했다는 것이 결국 '돼지의 왕'을 만들 수 있는 자산이 됐다.

-'돼지의 꿈'은 상당히 강렬하다. 어디서 착안했나.

▶군대에서 꾼 꿈에서 나왔다. 초등학생 정도 되는 세 친구가 모여 한 명에게 복수를 하려한다. 그 놈을 잡아놓고 세 친구 중 한 명이 저주의 시를 읽고 목을 매려한다는 꿈에서 출발했다. 꿈에서 난 밧줄을 헐겁게 하려 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 한 친구가 밧줄을 빼앗아 후다닥 목을 맸다. 경찰차 소리는 허무하게 사라지고 그 친구는 비참하게 매달려 있었다. 영원히 잊지 못할 이미지였다.

-그런 세계를 좋아하나.

▶비정한 세계를 보는 걸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환상특급' 같은 것을 좋아했다.

-반전이 강렬하다. '라쇼몽'처럼 같은 사건을 다른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상당히 스피드하게 보여주는데.

▶반전 직전에 질문을 주고 바로 답을 준다. 그리고 답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런 방식을 처음부터 염두에 뒀다.

-세련되기보단 데츠카 오사무처럼 리미티드 기법(정지된 화면을 반복해 보여주는 방식)으로 클로즈업된 장면이 많은데. 강렬하긴 하지만 세련되진 않은데.

▶정확히 봤다. 데츠카 오사무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돈이 없어서 컷 수를 줄여야 했으니깐. 그래서 감성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클로즈업했다.

-더빙에 참여한 양익준과 오정세 목소리 연기가 탁월했다. 두 사람만 사전 녹음이었다는데. 하지만 초반에는 입이 잘 맞지 않던데.

▶다른 사람 모두를 사전 녹음하기엔 돈이 너무 없었다. 두 사람이야 워낙 연기가 탁월한데다 도움을 많이 받았다. 양익준은 '똥파리'를 기획할 때 서로 시나리오를 주고받았다. 그때부터 해주기로 했다. 오정세는 '사랑은 단백질'부터 인연을 맺었는데 디테일이 탁월하다. 초반에 입이 안 맞는 이유는 그 부분은 사전녹음이 아니라 미리 만들어놨던 부분이라 그랬다. 다시 그릴까 했지만 돈이 없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마당이 나온 암탉'과 다른 방식으로 애니메이션이 가야할 길을 꿈꾼다고 했는데.

▶'마당을 나온 암탉'도 그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한 자신만의 방식이었다. 나 같은 경우는 어느 날 영화하는 사람이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스토리텔링이 안되잖아요,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 편견을 깨고 싶었다.

'돼지의 왕'은 감독 연상호와 제작자 연상호가 나름 대중적인 모색을 한 작품이다. 한국 애니메이션 환경을 들여다봤다. 점점 소년만화에서 성인만화로 사람들의 취향이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도 되겠다 싶었다. 더욱이 1억5000만원으로 만들려면 더 강하고 센 이야기여야 했다.

-한국인 애니메이터들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 상당한 대접을 받으면서. 해외로 진출하고 싶은 계획은 없나.

▶간다면 감독으로서 인지도를 쌓아서 가고 싶다. 그게 한국 애니메이션 힘을 보여줄 길이라고 생각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타뉴스 단독

HOT ISSUE

스타 인터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