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남극일기' 그리고 故박영석 대장

[김관명칼럼]

김관명 기자  |  2011.11.01 12:12
왼쪽부터 유지태, 고 박영석 대장, 송강호 ⓒ김관명 기자 왼쪽부터 유지태, 고 박영석 대장, 송강호 ⓒ김관명 기자


눈, 눈, 눈..

보이는 건 온통 하얀 눈뿐이었던 지난 2004년 8월9일 뉴질랜드 스노우 팜. 송강호와 유지태, 박희순, 윤제문, 최덕문, 김경익 등 배우들은 두터운 옷을 껴입고도 연신 "춥다"를 반복했다. "집이 그립다"는 송강호 입술은 이미 부르터져 있었다. 그래도 임필성 감독은 "강호 형, 마음에 안들어요. 한 번 더 찍죠?"라고 채근했다. 바로 2005년 개봉했던 '남극일기' 촬영현장이었다.


그리고 이런 '아마추어' 남극 탐험가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한 남자가 스태프 사이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다소 왜소한 체격의 이 남자는 한쪽 다리가 불편해 보였다. 어쨌든 송강호 신이 5번만에 OK 사인을 받은 후에야 그 남자는 간이의자에 앉아 뜨거운 커피로 몸을 녹였다. 이 남자가 바로 고(故) 박-영-석 대장이었다.

박영석 대장은 남극의 도달불능점에 도달하려는 한국탐험대 6인의 사투를 그린 이 영화 '남극일기'의 슈퍼바이저(자문가)로 참여하고 있던 터였다. 이날 촬영현장에서 다리가 불편했던 것은 이 해 1월 '무보급' 남극점 탐험에 나서 세계 최단기간 기록을 세웠던 여파였다. 그런 그가 6개월여만에 또 남극을 다룬 영화에 슈퍼바이저로 참여, 배우들과 동고동락을 한 것이었다.


박 대장은 현장을 찾은 한국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썰매 끄는 법부터 다 알려줬어요. 아이젠을 신고 산을 오르는 요령, 사고시 대처 요령까지요." 실제 이날 촬영장에서도 임필성 감독에게 "시나리오에 있는 클립은 좀 모호해보여요. 로프로 바꾸는 게 좋겠습니다"고 즉석에서 제안하기도 했다. "왜 쉬지 않고 또 이런 고생을 하냐?"고 물으니 "재미있을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그랬다. 박영석 대장은 천상 산악인이었다. 지난달 18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등반 도중 실종돼 30일 네팔 현지에서 위령제가 치러지기까지 그는 오롯이 산악인이었다. 뉴질랜드 '남극일기' 제작발표회 겸 파티에서도 그의 얼굴은 따가운 남극 햇볕으로 여전히 거무튀튀했고 입술은 말라붙어 있었다. 그에게 송강호 유지태 박희순은 배우이기도 했지만 언제 위험과 만날지 모르는 후배 산악인들이기도 했다.


2005년 5월1일 북극점에 도달,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거봉 14좌-7대륙 최고봉-남극점-북극점을 모두 밟은 '산악인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것도 어쩌면 이 산악인에게는 쓸 데 없는 훈장인지 모른다. 박영석 대장의 삶과 죽음은 '남극일기'의 두 배우 유지태, 박희순이 옳게 봤다.

2011년 11월1일 유지태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내일 박영석 대장 장례식에 간다. 난 '남극일기'라는 영화를 찍으며 '그 길'을 걷는 박영석 대장과 대원들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지만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금 내가 도전하려는 것을 대입하니 조금 이해의 언저리에 다가간다. '그 길을 걸어야 살아 있음'을.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끼고자 그 길을 걸었던 그리고 수많은 족적을 남기신 박영석 대장님과 대원들의 명복을 빕니다."

박희순도 이날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오늘은 영화 '남극일기'에서 슈퍼바이저로 인연을 맺었던 고 박영석 대장님의 장례식이 있는 날입니다. 극 속 송강호 형님이 눈 속으로 영원히 사라진 것처럼 그분도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그곳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진정한 산사나이! 자랑스러운 한국인! 박영석 형님의 명복을 빕니다."


고 박영석 대장, 신동민 강기석 대원의 합동 분향소는 3일까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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