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만 봐달라" 개그맨의 눈물, 韓코미디의 현실

하유진 기자  |  2011.11.01 16:15
개그맨 손민혁ⓒ남윤호 인턴기자 개그맨 손민혁ⓒ남윤호 인턴기자


한 개그맨이 제작발표회 도중 눈물을 참으며 울컥했다. 프로그램이 폐지된 것도 자신이 하차하는 것도 아니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발표하는 '희망찬'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13일 서울 목동 SBS홀에서 열린 '개그 투나잇'의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이날 참석한 SBS 개그맨 손민혁은 첫 소감을 전하기 위해 입을 떼는 순간부터 울컥거림을 참지 못했다.

'개그 투나잇'은 '웃찾사' 폐지 후 SBS가 새롭게 선보이는 시사코미디 프로그램. 지난 해 10월 '웃찾사'가 폐지된 후 약 1년 2개월간 출연 개그맨들은 설만한 무대가 없었다.


그는 "긴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개그 투나잇'이라는 새로운 음식점 오픈했어요. 맛보지도 않고 맛없다고 소문 내지 마시고, 한번이라도 좋으니까 맛을 봐 주세요. 정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최고의 요리사들이 최고의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한번이라도 맛 좀 보시고 맛없으면 맛없다고 얘기해주세요. 한번이라도 부탁드립니다. 한번만 맛보고. 맛 좀 보고 소문 내주십시오. 고생 많이 했습니다"라고 울먹이며 털어놨다.

이날 사회를 맡은 개그맨 황영진이 "손민혁씨는 '웃찾사' 폐지 후에 행사도 안 뛰어서 더 그래요"라고 우스개 소리로 무마했지만 그 한마디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무명에 가까운 그가 털어놓은 말은 한국 코미디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다. 프로그램이 폐지되면 설 무대가 없는 한국 코미디의 현실. 코미디 프로그램은 타 예능 프로그램에 비해 관심을 받기 어려운 반면, 외면받기는 쉽다. 공채 개그맨 대부분이 프로그램 하나에 매달려 생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존폐는 그들과 직결돼 있다.

단순히 생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랜 시간 개그맨의 꿈을 갖고 달려온 그들에게 프로그램의 폐지는, 절망과도 같다. 웃기고 싶은데 웃길 무대가 없다는 것. 이미 많은 이들에게 회자돼 관용어처럼 쓰이고 있지만 개그맨들에겐 이보다 더 아픈 말은 없다.

손민혁 뿐만 아니라 '웃찾사'의 터줏대감으로 벌써 데뷔 12년 차에 접어든 정용국은 "개그를 하고 싶다는 열정이 있었는데 설 무대가 없었다. 올해 1월에 '개콘'에 들어가고 싶어서 KBS 개그맨 시험을 봤다"라는 사실을 전하기도 했다.


이창태CP는 "작년 10월에 '웃찾사' 폐지됐을 때 대기실에서 개그맨이 준 편지를 읽었다. 제발 우리의 무대를 지켜달라는 내용이었지만 이미 마지막 녹화로 결정된 상태라 수고했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었다. 폐지된 후 개그맨들이 수시로 "열심히 하고 있다. 다시 할 수 있나?"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풀빵장사, 주차요원을 한다는 것 듣고 가슴이 아팠다. 짧게는 몇 년에서 10년 이상 개그맨의 꿈을 갖고 달려온 친구들인데 무대가 없어졌다는 것에서 가슴이 아팠고 굉장한 책임감을 느꼈다"라고 전해 심각성을 더했다.

이날 공개된 하이라이트 영상은 한 마디로 웃겼다. 다소 낯선 모습의 개그맨들이 어색하긴 했지만, 곧 그들의 만들어내는 무대에 참석한 취재진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어이없는 상황을 빗댄 '적반하장', 사회 고위층을 일갈하는 '더 레드', 중국인 관광객과 강아지가 펼치는 '하오&차오' 모두 신선하면서도 통쾌한 재미가 있었다.

시사와 풍자, 공감을 무기로 새 발을 내딛은 '개그 투나잇'. 그간 힘들었던 개그맨들에겐 다시 도약할 기회를, 웃음에 목말랐던 시청자에겐 새로운 웃음을 제공할 프로그램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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