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애의 '잊는' 고통 vs 전도연의 '못잊는' 고통

김관명 기자  |  2011.11.09 09:26
\'천일의 약속\'의 수애(왼쪽)와 \'밀양\'의 전도연 '천일의 약속'의 수애(왼쪽)와 '밀양'의 전도연


못 봐주겠다. 힘들다. 뒤틀린다. 고통스럽다.

SBS 월화드라마 '천일의 약속'이 지난 8일로 8회 방송분을 내보내면서 수애의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멀쩡했던 집에 가는 골목길은 갑자기 낯설고, 남자(김래원)의 전화번호는 갑자기 생각이 안 나며, 동생이 가져온 닭죽조차 '내가 시킨 건가?' 초조해하며 되묻는 상황.


의사까지 겁을 줬다. "약을 드세요. 안 그러면 주위 사람들도 증상을 알게 돼요. 업무 능력도 현저히 떨어지고요. 일을 그만둬야 할 겁니다." 병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말한 건데 이 말이 수애에게는 너무 무섭다. 수애는 못들었지만 그 의사는 친구에게 이런 말도 했다. "이제 곧 옆에서 도와줘야 할 거야."

그렇다. 수애의 고통은 친숙한 일상을 '잊어버리게 되는' 고통이다. 하루에 몇 번씩이고 발랐던 립글로스 이름이 생각이 안 나고, 기차가 몇 시에 다니고 간판 글자체는 어떻게 생겼는지까지 훤히 알던 그 골목길이 낯선 도시처럼 느껴지는 그 '망각'의 고통. 결국은 "이제 삼십인" 자신마저 송두리째 잊게 될 그 감당 못할 치매의 고통. 그래서 수애는 이 모든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메모를 하고 열심히 사람 이름을 외웠다.


시청자들이 이런 수애를 보며 '기억상실'의 고통과 두려움을 공감했다면, 지난 2007년 전도연은 고통의 또 다른 얼굴을 관객에 보여줬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 그야말로 창졸간에 아이를 유괴당했던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말만 들어도 소름 끼치고 범인을 세상 끝까지 쫓아가 죽여 버리고 싶은 그 '유괴'!

전도연이 고통스러웠던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유괴당한 자식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그 기억과 추억의 고통. 아들이 갖고 놀던 장난감의 표정, 아들과 함께 타고 가던 자동차 시트와 차창으로 받던 햇살의 감촉마저 '다 기억이 나는' 그런 고통. 이는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 '세븐데이즈'의 김윤진, '체인질링'의 안젤리나 졸리 모두 마찬가지였다.


전도연이 교회를 다니게 된 것도 이러한 '못 잊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게 아니었을까. 1초에 한번씩 떠오른 유괴범에 대한 '원망'과 '살의', 이런 일이 하필 자신에게 일어난 그 몹쓸 운명에 대한 '회환'과 '한탄', 그러면서 사이사이 자신의 몸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 그래서 전도연은 이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용서와 구원이라는 기독교적 교리에 빠져든 게 아닐까.

해서 수애와 전도연이 절망하고 절규할 때, 시청자와 관객 역시 함께 절망하고 절규했다. 그건 "나도 혹시?" 아니면 "내 애도 혹시?"라는 참기 힘든 감정의 이입인 동시에, 인간이란 결국 '잊거나' 혹은 '못잊거나' 서로 다른 두 지점에서 언제든 공격당하고 무너질 수 있다는 원초적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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