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문ⓒ사진=소속사, SBS 제공
올해 방영된 드라마 중 최고의 반전은 아마 SBS '뿌리깊은 나무'(극본 김영현 박상연 연출 장태유)의 가리온이 정기준으로 밝혀진 순간일 것이다. 밀본의 존재를 밝히기 위해 천민 백정 가리온을 추구하던 강채윤(장혁 분)은 그가 밀본의 수장 정기준임을 알고 경악했다. 시청자들도 뒤집어졌다. 반전영화의 최고봉이라 꼽히는 '유주얼 서스펙트'를 빗댄 '뿌주얼 서스펙트' '가리온 소제'라는 용어가 쏟아져 나오며 이슈의 중심에 섰다.
탄탄한 극본이 빚어낸 결과일 수도 있으나 정기준을 감쪽같이 감췄던 배우의 힘도 한몫했다. 윤제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9일 오후 드라마 촬영에 한창인 배우 윤제문을 수화기 너머로 만났다. 걸걸하면서도 차분한 음성은 가리온이기도, 정기준이기도 했다.
윤제문은 현재 함께 출연중인 장혁의 추천으로 이 작품을 알게 됐다.
"장혁과 '마이더스'를 같이 했는데, 혁이가 '뿌리깊은 나무'라는 작품에 좋은 역할이 있다고 해서 알게 됐다. 그때 혁이가 자기가 나이를 더 먹었으면 이 역할 하고 싶다고 하더라. 내가 하면 참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알아봤더니 원작소설도 재밌고 해서 하게 됐다."
1인 2역에다 천민과 양반이라는 상반된 인물. 연기하기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가리온 역할 할 땐 편하다. 행동이나 말하는 게 어떻게 해도 상관이 없는데, 정기준 역할은 대사가 어렵다. 양반이다 보니까 연기나 행동반경도 좁아지고 국한되다 보니까 좀 답답한 면도 있고 그렇다. 어렵다. 정기준이 가상의 인물이니 더 어렵기도 하다."
복잡하면서도 깊이 있는 스토리이니만큼 캐릭터 분석이 관건. 하지만 윤제문은 시놉시스와 작가의 힘을 믿었다.
"꼼꼼하게 해석하진 않는다. 해석이랄 것도 없는 게 대본이 영화 시나리오처럼 끝까지 결말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1부 대본보고 결정했는데, 4부까지 다 합쳐도 정기준 얘기는 어린 시절 잠깐 나오는 게 다다. 시놉시스만 보고 작가에게 어떤 인물이라는 얘기만 듣고 정보를 알고 있었다. 캐릭터를 해석하고 어떻게 하겠다고 할 수 없는 상태였다. TV드라마 대본이란 게 시청자 반응 보고 나오고 쓰이는 거라 내가 어떤 캐릭터를 잡고 갈 수도 없었다. 작가를 믿고 쓰인 대로 열심히 할 뿐이다."
당초 '뿌리깊은 나무'는 한석규 장혁 신세경 주연으로 소개됐다. 하지만 극이 중반부 이상을 달린 현재, 주연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건 윤제문. 극중 세종과 탄탄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탓에 묵직한 존재감으로 자리 잡았다. '반전' 덕분이다.
"그 정도까지 (이슈가) 될 지는 예상 못했다. 당황스러웠다. 개인적으로 이런 반전이 있어서 재밌어 하겠다는 생각은 했다. 하는 나로서도 재밌었고 대본 봤을 때 재밌겠다 싶었는데 반응이 예상보다 너무 좋으니 당황스러웠다."
지난 16회분에서 정기준은 한글을 반포하려는 세종(한석규 분)을 막기 위해 치열한 두뇌싸움을 펼쳤다. 회를 거듭할수록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 셈.
"이제 시작일 뿐이다. 더욱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다."
선배연기자 세종과 라이벌 구도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한석규 선배와 호흡 좋아요. 연기 면에서도 배울 점 많죠. 선배님은 워낙 정확하고 연기를 잘 하신다. 일상생활이나 후배 대하는 태도 등 모든 면에서도 배울 점이 많은 선배님이다. 기싸움 같은 건 항상 얘기하는데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자기 역할에 충실해서 그냥 하는 거다. 상대방 기를 누르거나 하는 건 하지도 않는다."
작품을 추천해줬을 만큼 장혁과의 친분도 두텁다. '마이더스'에 이어 '뿌리깊은 나무'까지 연이어 두 작품을 함께 했다. 그가 보는 장혁은 어떤 배우일까.
"되게 꼼꼼하다. 섬세하고 작품 분석력 같은 게 정말 꼼꼼하다. 완벽을 추구한다. 그리고 수컷이다. 남성미가 있다. 남자가 봐도 참 남자다 할 정도로 멋있고, 의지도 있다."
영화에서 드라마까지 많은 작품을 필모그래피에 남긴 윤제문.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더욱 큰 획을 그은 그에게 '뿌리깊은 나무'가 갖는 의미는 남다를 것 같았다.
"좋은 경험을 하는 것 같다. TV사극이 처음이다 보니까 사극에 맞는 대사들이 제가 기존에 했던 작품과 달라서 힘든 부분이 없잖아 있다. 그런데 이 경험들이 앞으로 연기를 해나가는데 있어서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매주 다음 회 분량을 촬영해야 되고 쫓기지만, 힘들게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참 좋은 경험인 것 같다. 다음 영화를 할 때도 힘들었던 것들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1인 2역에다 반전의 주인공이 된다는 의미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