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병진 토콘, 떼토크 시대에 찾아온 돌연변이

[이수연의 클릭!방송계]

이수연   |  2011.12.22 14:46


“골라, 골라, 만원에 열 개. 골라, 골라.”

한 때 시장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장사꾼이 리어카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물건들 위에 올라가 원하는 대로 사가라고 외치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값도 싸고, 종류도 많아 신나게 고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었다.


요즘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 이상하게 ‘골라, 골라’ 하던 장사꾼이 떠오른다. 프로그램 종류가 워낙 많으니 따뜻한 집에서 뒹굴뒹굴하면서 리모콘 버튼만 누르면 원하는 프로그램을 딱딱 고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 홍수가 제작진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시청률’ 경쟁이 더더욱 치열해지니까.

오랜만에 컴백해 토크쇼 MC로 야심차게 나선 주병진 역시 ‘시청률이 가장 무섭다’고 컴백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아직까지 주병진 토크쇼는 그 무서움을 덜어낼 만큼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주병진 토크쇼가 화제인 만큼 시청률이 저조하자, 올드하다, 잔잔하다 등등의 각종 평가가 이어진다. 물론 공감되는 의견들이지만, 단점들은 다들 지적하니까 이번엔 장점을 짚어보고 싶다.

주병진 토크쇼의 가장 큰 장점은 편안함이다.


11시 넘은 늦은 밤, 집안 불 다 끄고 잠옷 차림으로 편안하게 누워서 보기에 딱 좋은 느슨함이 묻어나는 프로그램이다. 대부분의 토크쇼는 일명 떼토크, 여러 게스트가 나와서 왁자지껄, 시끌시끌하게 웃기거나, 충격 고백 등의 내용이다.

그래서인지 왠지 볼륨도 좀 크게 하고 시청해야 그 스튜디오의 분위기가 전해지는 것 같이 느껴지곤 한다. 그런데, 주병진 토크쇼는 볼륨을 최대한 작게 하고 조용히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어도 좋을 만큼 편안한 느낌이란 얘기다.

또 하나의 장점은 주병진은 게스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MC라는 점이다.


우리는 그 동안 MC들이 게스트에게 질문을 하고, 게스트가 어떤 이야기를 하면 받아서 바로 웃겨주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그런데, 주병진은 게스트에게 질문만 한 마디 던져놓고는 뒤로 빠진다.

희한한 건 그저 질문만 했을 뿐인데 게스트가 술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병진의 노련함을 엿볼 수 있다. 그가 던지는 질문은 단지 한 문장이다. 그것도 빙빙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인 한 마디. 그런데 그 특유의 유머가 함께 섞이니 불편할 수 있는 질문도 전혀 거부감 없이 들린다.

게다가 그가 나서지 않고 한 발 뒤에 서 있는 포지션이 되어주니까 게스트가 주체적인 입장이 되어서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다. 주병진 토크쇼를 보면 MC가 주인공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게스트가 손님이 아니라, 주인처럼 포장되어 보인다.

그래서 다른 토크쇼에 나가길 꺼려하는 게스트들도 이곳엔 마음 편하게 들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주병진 토크쇼가 지금 당장 시청률의 재미는 볼 수 없어서 제작진들은 많이 아쉬워하리라. 하지만, 조용한 밤, 편안한 여유를 즐기고 싶은 시청자들은 조만간 주병진 토크쇼의 문을 두드리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일단 오늘 밤은 어떨까?

<이수연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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