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왼쪽부터 송강호, 한석규, 최민식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15년 전, '넘버3'의 주역들이 2012년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종횡무진중이다. 한석규, 최민식, 그리고 송강호다.
송능한 감독의 1997년작 '넘버3'는 2000년대 경쟁적으로 쏟아져 나온 조폭 코미디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면서도, 함량미달의 여느 작품들과는 격이 다른 블랙 코미디를 선보였던 수작이었다.
무대포 정신으로 무장한 삼류인생 건달들의 이야기를 코믹하고도 냉소적으로 풀어낸 이 작품의 세 주역이 바로 한석규, 최민식 그리고 송강호였다.
'쉬리' 이전이었으나 이미 '은행나무 침대', '초록물고기', '닥터봉'의 주연을 거친 한석규는 당대의 톱스타였고, 최민식 또한 드라마 '서울의 달' 등 드라마의 주연을 거쳐 브라운관에 진출한 터. 여기에 당시 연극무대를 거쳐 간간이 영화에 얼굴을 비췄던 신인이나 다름없던 이가 바로 송강호였다.
넘버3 조폭 한석규, 막가는 검사 최민식은 물론 주목받았고 '현,현, 현정화야"를 외치며 불사파를 이끌던 송강호는 단숨에 명품조연으로 떠올랐다. 이후 각기 다른 길을 걸었던 세 배우가 15년만에 나란히 주목받고 있는 셈이다.
영화 '넘버3'의 송강호, 최민식, 한석규
송강호는 이후 '쉬리'의 조연을 거쳐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의 북한군 오경필 중사, '반칙왕'의 소심한 직장인 대호를 지나며 톱스타배우로 자리를 굳혔다. 평단과 관객의 지지 속에 꾸준한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괴물', '우아한 세계', '밀양',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박쥐', '의형제', '푸른소금' 등 주요 작품만을 나열하기에도 숨이 차는 그는 2012년 한국영화계가 가장 신뢰받는 이름 중 하나다.
16일에는 이나영과 함께 한 영화 '하울링'이 개봉했다. 승진에 대한 압박 속에서 늑대개 연쇄살인을 수사하는 고참 형사로 극을 든든히 이끈다. 최근 강동원, 신세경, 이나영 등 젊은 배우들의 앙상블을 연이어 선보이고 있는 가운데 그에 대한 신뢰는 여전하다. 봄부터는 봉준호 감독과 함께하는 '설국열차' 촬영에 돌입한다.
'넘버3'으로 영화계 신고식을 치른 최민식 또한 한국의 대표적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조용한 가족', '쉬리'를 거쳐 '해피엔드', '파이란', '취화선', 그리고 '올드보이'까지 매 작품마다 관객을 빨아들이는 연기로 스크린을 쥐락펴락했다. 그러나 '친절한 금자씨'와 '주먹이 운다'를 선보인 2005년 이후 수년간 그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스크린쿼터 지키기 투쟁의 선봉에 섰던 여파에 이런저런 악재가 겹치면서 별다른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그랬던 그가 2010년 지독한 살인마로 분했던 '악마를 보았다'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 재개에 나섰다. 현재 300만 관객을 향해 가고 있는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는 여전히 건재하다는 최민식의 선언과도 같다. 비열한 웃음을 흘리는 로비의 신 최익현을 보고 있자면 이 좋은 배우를 왜 이렇게 묵혀놨나 한탄이 나올 지경이다.
'넘버3' 이후 한국 블록버스터의 새 역사를 다시 쓴 '쉬리'로 명실공히 한국 최고의 톱스타로 인정받은 한석규에 대한 광객과 시청자의 신뢰 역시 못지않다. 이후 심은하와 함께 한 스릴러 '텔미썸딩'을 거친 그는 조금은 느리게, 그러나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작품을 선보였다. '주홍글씨', '그때 그 사람들', '음란서생' 등이 대표적이다. 배우의 묵직함과는 별개로 작품의 흥행성적이 안정적이지는 않았다.
그랬던 그가 브라운관을 통해 제 2의 전성기를 알렸다.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다. 서슴없는 현실주의자 아버지를 극복하고, 어리석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 제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던 세종대왕이 그의 몫이었다. 부담감 백배의 실존 캐릭터를 입체적이고도 절절하게 그려낸 한석규에게 찬사가 쏟아졌다. 다음엔 류승완 감독의 액션대작 '베를린'이 기다리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영화 '하울링'의 송강호, '범죄와의 전쟁'의 최민식, '뿌리깊은 나무'의 한석규
핫이슈에서 잠시 멀어진 것 같았던 배우들이 재조명받는 게 어디 이들뿐이랴. KBS 2TV 드라마 '브레인'으로 하균앓이를 일으킨 신하균, '부러진 화살'로 국민배우의 입지를 다시 알린 안성기 등 반가운 활약상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유아인, 장근석, 송중기, 이제훈 등 젊은 부역들의 급부상한 가운데 1990년대부터 활동해 온 묵직한 배우들이 나란히 조명받으며 활동의 기지개를 켠 2012년의 초입, 충무로는 들썩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