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 마음을 움직이는 첫사랑의 풍경

전형화 기자  |  2012.03.15 09:10


첫 사랑을 다시 만나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그는 알아보지 못한다. 의사 남편 만나 3년 살다가 위자료를 듬뿍 뜯어내고 이혼한 첫 사랑 그녀. 그녀가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한다.


22일 개봉하는 '건축학개론'(감독 이용주, 제작 명필름)은 첫 사랑에 관한 영화다. 96학번 대학교 새내기 시절 건축학개론을 함께 들었던 남자와 여자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단 사실을 알게 된다. 숙제를 함께 하며 친해진 두 사람은 남자가 여자에게 나중에 네가 원하는 집을 지어주겠단 약속을 한다. 그리고 원치 않은 결말을 맞는다.

15년이 지나 다시 만난 남자와 여자는 제주도에 함께 집을 짓는다. 남자 곁엔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고, 이혼한 여자는 아픈 아버지와 고향인 제주도에 살 집을 만들려 한다. 어설프고 순수했던 첫 사랑은 그래서 아팠고, 다시 만난 사랑은 그래서 파도에 스치는 바람처럼 지나간다.


'건축학개론'은 사랑이란 시간과 공간을 함께 나누는 것이라 말한다. 당연한 이야기를 새로운 이야기처럼 말한다. 어릴 적 꿈꾸기 마련인 이 다음에 내가 집을 지으면 마당에 개를 키우고 꽃을 심고 이층집 거실엔 피아노를 둘 거야란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었다.

'건축학개론'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순수했던 첫 사랑과 적당히 때 묻은 현실을 비교한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담겨 있기 마련인 첫 사랑을 더욱 추억하게 만든다.


'건축학개론'은 영민한 멜로 영화다. 이야기는 좋은 집을 짓듯 기초가 탄탄하고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김태용 감독의 '만추'가 떨어지는 낙엽을 연상시키는 가을에 어울리는 멜로라면, '건축학개론'은 꽃들이 만개했다 어느덧 사라지는 봄 같은 멜로다. 그건 첫사랑이 봄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용주 감독은 어릴 적부터 남자가 살던 집, 둘만의 추억이 담긴 빈 집, 남자가 친구와 만나는 도서관 옆 골목, 그리고 제주도에서 새로 짓는 집으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그 공간에서 관객이 웃고 울고 추억하게 만든다. 카메라를 남자의 앞모습에 가져가다가 마지막 두 사람의 감정이 폭발할 땐 남자의 뒷모습, 그리고 여자의 앞모습을 조명한다. 남자의 감정을 따라가다가 마지막에 비로소 여자를 보게 한다. 관객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엄태웅 한가인 이제훈 수지, 과거와 현재를 그려낸 배우들의 연기도 참 좋았다. 엄태웅은 중심을 지켰고, 한가인은 예뻤으며, 수지는 찬란했고, 이제훈은 잘생긴 류승범 같았다. 이제훈은 20대 남자배우 중 선두를 이룰 게 분명하다. 이제훈의 친구로 출연한 뮤지컬 배우 출신 조정석은 '건축학개론'의 발견이다.


어느덧 한국영화에 90년대가 추억의 시대가 됐다. 96년 대학교 교정은 풋풋했고, 삐삐는 덜그럭 거렸다. '건축학개론'은 교문 앞에서 기다리던 그 때 그 여자와 그 남자들에게 술 한 잔을 권한다.

'건축학개론'의 최대 수혜자 중 한 명은 김동률이 될 것 같다. 김동률이 전람회 시절 불렀던 '기억의 습작'은 영화에서 쿵 하고 첫 사랑처럼 다가오고 흘러간 시간을 추억하게 만든다. 종종 영화 속 음악과 음향은 뉴앙스를 지워버리고 하나의 감정으로 몰기 마련이다. '건축학개론'은 좀 다르다. 제주도 집 앞에서 들리는 파도 소리는 '봄날은 간다'에 솨아솨아 하는 바람 소리처럼 마음을 움직인다.

이용주 감독은 공포영화 '불신지옥'으로 인상적인 데뷔를 한 뒤 '건축학개론'으로 비로소 자신 이야기를 했다. 한 때 졸속으로 만들어졌던 공포영화들은 재능 있지만 데뷔를 못해 조바심을 냈던 많은 신인감독들을 사장시켰다. 한 편만 만들고 그 뒤론 소식이 끊긴 감독이 태반이다. 이용주 감독은 살아남은 자로서 자신의 재능을 입증했다.

'건축학개론'은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 계보를 잇는 멜로영화가 될 것 같다. 일본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다치 미츠루의 초기작을 보는 기분일 것이다. 첫 사랑의 풍경이 마음을 움직인다.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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