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을 처음 찾은 건 2004년 2월이었다. 탤런트 이승연이 추진하던 위안부 영상 프로젝트가 파문을 일으키자 할머니들을 찾아 사죄하기 위한 길에 동참했다.
이승연은 당시 의도야 좋았다지만 생각이 짧았던 탓에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나눔의 집 마당의 자갈은 알이 굵고 날카로웠다. 자갈 위에 무릎을 꿇은 이승연은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보기가 불편했다.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 아닌가 싶었다. 목구멍에 실타래가 차 있는 것 같아 괜히 캑캑 댔다.
돌이켜 보면 이승연이 불편했던 게 아니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관심을 무의식 저편에 던져놨다가 이런 때만 꺼내 단죄를 했던 스스로에 대한 불편함이었다. 이승연에게 돌을 던지는데 동참했지만 그럴 자격이 있나는 자괴감도 있었다. 괜히 나눔의 집 마당을 서성였다.
그해 5월 다시 나눔의 집을 찾았다. 역시 이승연 때문이었다. 이승연은 동료들과 함께 나눔의 집을 찾았다. 비공식적으로 몇 번 나눔의 집을 찾았던지 훨씬 얼굴이 보기 좋았다. 할머니들도 반겨줬다. 그 때 깨달았다. 비록 보여주기 위한 일일 지라도 진심이 담겨 있으면 괜찮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할머니들은 반겨주신다는 걸.
김구라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창녀에 비유한 과거 막말이 들춰져 물의를 빚었다.
김구라는 2002년 인터넷 라디오 방송 '김구라 황봉알의 시사대담'에서 했던 발언이 최근 도마에 오르면서 물의를 빚었다. 당시 김구라는 서울 천호동 텍사스촌 윤락여성들이 경찰의 무차별 단속에 반발해 전세버스에 나눠 타고 서울 인권위 사무실 앞에서 집단 침묵시위를 벌인 데 대해 "창녀들이 전세버스 두 대에 나눠 타는 것은 예전에 정신대라든지 이런, 참 오랜만에 보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이런 발언이 뒤늦게 알려지자 김구라는 결국 출연 중인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김구라는 "대중들이 TV에 나오는 제 얼굴을 볼 때마다 더 이상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방송인으로서의 자격이 없을 것"이라며 "저는 오늘 이 시간부터, 저 자신을 돌아보고 자숙하는 시간을 보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김구라의 막말은 시한폭탄이었다. 10년 전에 한 말이고 어떤 이유로 새삼 들춰진 것이라 하더라도 용서받을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인터넷 시절 김구라의 막말과 욕설이 인기를 얻었던 것 중 하나는 권력과 영향력 등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남들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말들을 화장실 낙서처럼 쏟아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침묵시위를 벌였던 집창촌 여성들과 위안부 할머니는 사람들이 애써 외면하는 약한 위치에 놓여있는 사람들이다. 김구라가 먹고 살기 어려워 세상에 대한 분노가 가득 찼다지만 그보다 더 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폭언이었다.
김구라가 지상파로 자리를 옮겨 인기를 끈 건 다른 연예인들이 하지 못하는 독설로 시원하게 긁어줬기 때문이다. 독설과 막말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종이 한 장에 낄낄 대던 사람들이 이제 김구라에 돌을 던진다.
김구라에 돌을 던지는 사람들은 막말에 분노하지만 정작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 16일 불거진 김구라 막말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지만 18일 여느 때처럼 열린 할머니들의 수요 집회에 세상의 관심은 없었다. 나눔의 집 김정숙 사무장은 "김구라 발언이 알려졌어도 할머니들에 도움을 준다거나 동참하겠다고 연락 온 건 없었다"고 씁쓸해했다.
김구라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살기를 담아 짱돌을 던진다. 그 짱돌은 김구라를 넘어 다른 사람을 정조준하고 있다. 막말을 일삼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고 단죄한다.
짱돌을 던지는 사람들 중 과연 몇이나 할머니들을 생각해 봤을까? 연예인에게 성직자 수준의 윤리의식을 강요하지만 국회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짱돌을 던질까?
김구라가 나눔의 집을 찾았으면 좋겠다. 굳이 알릴 필요 없이 조용히 할머니들을 찾았으면 좋겠다. 김정숙 사무장은 "나눔의 집 홍보대사였던 김미화가 전화가 왔었다. 김구라가 사과를 드리려 찾아오면 받아주실 수 있냐고 물었다"고 했다. 이어 "할머니들은 사과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거절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밴자민 프랭클린은 "분노와 어리석음은 나란히 걸으며 후회가 그 뒤를 쫓는다"고 했다. 김구라의 인터넷 시절은 세상에 대한 분노로 어리석게 행동 했던 때였다. 그 후회가 지금 쫓고 있다.
김구라는 시청자에 대한 사과는 했다. 이제 할머니들 차례다. 보여주기 위해서면 어떤가, 진심이 있으면 할머니들은 받아주신다.
나눔의 집 전화번호는 031-768-0064로 걸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