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연필·원고지, '어벤져스'망치·활..그게 아날로그야

[김관명칼럼]

김관명 기자  |  2012.04.26 09:38
ⓒ\'은교\' \'어벤져스\' 스틸 ⓒ'은교' '어벤져스' 스틸


'은교'의 연필과 원고지, '어벤져스'의 활과 방패..

지난 25일 같은 날 동시 개봉한 정지우 감독의 '은교'와 조스 웨던 감독의 '어벤져스' 두 한미(韓美) 영화는 아날로그 정서에 호소하는 장치들로 가득하다.


우선 박해일이 70대 국민시인 이적요 역을 연기한 '은교'는 노(老) 시인이 나오는 영화답게 연필과 원고지가 자주 등장한다. 뭉툭한 연필심이 영화의 주요한 소재가 될 정도이고, 원고지 역시 이적요가 17세 여고생 은교(김고은)를 통해 재발견한 자신을 다시 쏟아 붓는 은밀한 공간이기도 했다. 연필과 원고지라는, 키보드와 터치스크린은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그 아날로그적 감성이 영화를 관통한 셈이다.

재미있는 것은 노 시인의 제자로 등장한 젊은 소설가 서지우(김무열) 역시 영화에서 드러난 것만 보면 컴퓨터나 노트북이 아닌 원고지에 글을 쓴다는 점. 700만원대 매킨토시 앰프로 음악을 듣고, 컴퓨터나 전자북이 아닌 문학과지성사 시집을 즐겨 읽는 노시인의 영향 탓 아닐까. 하지만 그도 세속적 성공 이후에는 BMW로 갈아타는 신속한 적응력(?)을 보였다.


마블코믹스의 슈퍼 히어로들이 대거 출동한 SF 블록버스터 '어벤져스'는 첨단기기가 난무하는 21세기 뉴욕을 배경으로 했음에도 온갖 아날로그 무기들이 저마다의 성능을 뽐낸다. 활 통을 뒤에 차고 다니는 호크아이(제레미 레너)는 적중률 100%의 명사수이고, 천둥의 신 토르(크리스 헴스워스)는 웬만한 사람은 들 수도 없는 무거운 망치 묠니르로 괴력을 과시한다.

2차 세계대전 때 죽었다가 환생한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는 비브라늄으로 만들어진 방패가 트레이드 마크. 브루스 배너 박사나 토니 스타크 역시 각자 헐크와 아이언맨으로 변하는 변신 과정을 관객이 찬찬히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모두 아날로그 변신 방식을 택했다. 영화 판권 문제로 빠지기는 했지만 원작 '어벤져스'에 자주 등장하는 스파이더맨은 다름 아닌 거미줄이 핵심. 이들의 이같은 아날로그 사랑은 물론 동명 원작이 '아날로그 시대'였던 1963년에 처음 나왔기 때문이다.


두 영화가 '아날로그'를 적극 영화로 끌어들인 것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도 정확히 연결된다. '은교'는 어느 날 갑자기 젊음(0)에서 늙음(1)으로 변한 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책상 위에 있는 젊은 시절의 흑백사진처럼 알게 모르게 서서히 변해온 시간과 세월에 관한 이야기다. '어벤져스' 역시 핵무기 한방이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믿는 이 시대에, 옛 아날로그 영웅들의 협동심이나 리더십, 희생정신, 근접전에 대한 향수에 방점을 찍은 영화다.

특히 '은교'에서 원고지에 창작을 한다는 것은 '지적 설계'와 '육체적 노동'의 의미가 강하다. '삭제'(DELETE) 키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려두기' '복사하기' '붙이기' 기능도 없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자신의 머리속에 '미리' 담아둔 상태에서 시작해야 하는 그 지적 설계의 압박. 그래서 서지우는 글이 안 써질 때마다 원고지를 찢고 또 찢었고, 이적요는 자신의 원고를 오래된 나무상자에 소중히 집어넣을 수 있었다. 이는 '러브픽션'의 그리 도통하지 못했던 소설가 구주월(하정우)이 조그만 노트북과 옥신각신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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