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세 감독이 '미스터K'에서 끝내 하차한다. 3일 제작사 JK필름에 따르면 이명세 감독 대신 '미스터K'를 이승준 감독이 연출하기로 결정했다. 이승준 감독은 '해운대'와 '퀵' 연출부 출신이다.
이명세 감독의 '미스터K' 촬영중단과 하차는 4월 한국영화계를 뜨겁게 달군 사건이었다. CJ E&M이란 대기업이 감독의 창작 자유를 억압한다는 의견과 100억 영화를 만들면서 감독이 최소한 합의를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했다. 선한 창작자와 악한 자본의 구도로 사건을 보는 시각이 성립됐다. 과연 그럴까?
이명세 감독 '미스터K' 하차에 얽힌 일들을 취재해 순서대로 사건일지를 작성했다.
#이명세 감독과 제작사 JK필름이 손을 잡은 건 2010년 10월. 이명세 감독은 2007년 영화 'M' 이후 오랜 동안 차기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본에서 준비했던 미야모토 무사시 영화와 의욕을 갖고 추진했던 '영자야, 내 동생아' 제작이 여의치 않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명세 감독과 JK필름은 손잡고 '미스터K'를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미스터K'는 박수진 작가가 2010년 7월 원안을 작성한 뒤 JK필름과 계약한 작품. 이명세 감독과 JK필름에서 각색했다.
#2011년 12월 '미스터K' CJ E&M에서 GLC(그린라이트커밋. 신호등에서 파란불이 커지면 통과하듯 투자가 확정되는 것을 일컫는 용어) 통과.
#3월 12일부터 3월 17일까지 태국에서 6회차 촬영이 진행. 귀국한 뒤 국내에서 남양주 세트장 등에서 5회차 촬영이 더 이뤄졌다.
#4월4일 이명세 감독이 태국 촬영분량을 비롯한 현장 편집본을 제작사에 보냄. JK필름은 현장편집본이 시나리오에 한 장 분량을 채운 대사들이 사라진 채 영상으로만 찍히는 등 당초 기획했던 것과는 다른 것을 발견. 이후 투자사 CJ E&M과 촬영방향을 재논의 해야겠다는 의견을 교환.
#4월5일 윤제균 감독이 오수미 프로듀서에게 촬영일정을 미루고 촬영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고 전화. 오수미 프로듀서는 이명세 감독과 함께 일하는 스태프. '미스터K'는 촬영 전 오수미 프로듀서 역할을 놓고 제작사 JK필름과 갈등이 있었다. 제작사 프로듀서가 있는데 역할 분담이 모호하다는 것. 결국 이명세 감독 뜻대로 같이 일하기로 결정.
JK필름측은 8일부터 지방 촬영이 예정돼 있어서 그 전에 촬영방향을 협의하기 위해 전화했다고 주장. 이명세 감독은 당시 김포 아시아나 교육장에서 촬영 중이었다.
#4월6일 오전까지 이명세 감독은 촬영 방향을 논의하자는 제작사의 연락에 무대응. 결국 윤제균 감독이 이명세 감독에게 이메일을 보냄. 윤제균 감독은 태국 촬영분 대사가 없어졌고 합의한 내용이 아니며 국내에서 촬영한 반군캠프 장면이 애초 기획한 것과는 너무 다르다고 밝힘.
설경구가 맡은 주인공 역할이 밖에서 일할 땐 완벽한 프로지만 아내에겐 전전긍긍하는 애초 캐릭터와 달리 인질을 구하는 첩보원의 모습이 과거 이명세 감독의 '개그맨' 같았다는 것. 윤제균 감독은 JK필름의 내부 모니터 결과 유치하고 올드한 감성으론 지금 관객들을 잡을 수 없다는 의견이 모아졌다며 애초 합의한 시나리오대로 꼭 해주길 바란다고 요청. 내러티브는 사라지고 비주얼만 보인다, 배우들의 연기가 어색하고 억지스럽다, 처음 의도했던 영화와 차이가 너무 난다며 이런 것들을 지켜주지 않으면 같이 못갈 수도 있다고 적음.
이날 오후 촬영장에 이명세 감독 지인이라는 변호사 등장.
#4월7일 새벽에 촬영 종료. JK필름이 스태프에게 더 이상 촬영을 진행하지 말라는 내용 전달. 이명세 감독은 촬영이 끝난 뒤 스태프와 밤새 술자리. 이 자리에서 오수미 프로듀서가 "촬영 중단은 윤제균 감독과 CJ가 짜고 이명세 감독을 몰아내려는 계략이다"고 주장.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윤제균 감독이 이명세 감독에게 2차 메일 발송. 남들이 반대하는 오수미 프로듀서와 계속 일을 같이 하려고 얼마나 노력한 줄 알면서 어떻게 윤제균이 이명세 감독을 몰아내려고 하는 계략이라고 할 수 있냐는 내용.
이날 CJ E&M에서 이명세 감독의 현장 편집본에 대한 모니터 내용을 JK필름에 전달.
#4월8일 이명세 감독이 JK필름을 방문해 윤제균 감독에게 "법대로 하자"고 밝힘. 이명세 감독이 윤제균 감독에게 "더 할 말 없냐"고 하자 윤제균 감독 "없다"고 함. 윤제균 감독이 이날 오후 이명세 감독에게 3차 메일 발송. 주위 간신배 이야기 듣지 말고 자신의 진정성을 알아달라는 내용.
#4월9일 JK필름측 '미스터K' 스태프 미팅. '미스터K'에는 JK필름측 스태프와 이명세 감독측 스태프들이 함께 일하고 있음. 이명세 감독은 지인들과 만나 억울함을 호소. 이명세 감독은 이날부터 친분 있는 기자, 평론가, 과거 영화를 함께 한 제작사 A대표 등을 계속 만남. 창작자와 자본의 싸움이란 프레임이 영화계로 퍼지기 시작.
#4월10일 이명세 감독이 윤제균 감독에게 이메일 보냄. 윤제균 감독이 보낸 이메일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 태국 촬영은 소스 촬영이었으며, 서로 합의하지 않았냐며 촬영 재개를 희망한다는 등의 내용.
JK필름측 이상직 프로듀서, '미스터K' 스태프에게 이명세 감독과 더 못할 것 같다고 전함.
#4월15일 A 대표와 윤제균 감독 첫 통화. 명분과 실리를 생각하면서 '미스터K' 촬영 재개를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 않겠냐고 조언. 한겨레에서 이명세 감독 해고설은 창의성 막장 예고편이란 칼럼 실림.
#4월16일 '미스터K' 촬영이 중단됐으며 감독 교체 논의 중이라는 스타뉴스 보도 이후 '미스터K' 촬영 중단 기사가 각종 언론에서 보도. 이날 오후 이명세 감독과 윤제균 감독 만남. 이명세 감독 "액션은 내가 찍을테니 코미디는 윤제균 감독이 찍어라"고 제안. JK필름, 현실성 없다며 거절.
#4월17일 이명세 감독과 윤제균 감독 다시 만남. 윤제균 감독 "CJ 내부에서 '미스터K' 접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엎어질 수도 있다. 살려달라"며 이명세 감독에게 하차해 달라는 뜻을 전함.
#4월18일 이명세 감독이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 집행위원장과 만남. 윤제균 감독, 이춘연 영화제작가협회장 만남.
#4월20일 윤제균 감독과 이현승 감독 만남. 이날 오후 영화감독조합 권칠인 감독이 윤제균 감독에게 전화함.
#4월21일 윤제균 감독과 권칠인 감독 만남. 이날 오후 김정곤 조감독이 윤제균 감독에게 "이명세 감독이 물러나겠다고 하신다"며 "명분과 실리는 A 대표와 이야기하라"는 내용 전달.
#4월22일 A 대표가 윤제균 감독에게 "영화를 살리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고 전함. 3억원 이야기가 오감.
#4월24일 이명세 감독 '미스터K' 하차 기사. 당초 이날 이명세 감독과 윤제균 감독은 둘 사이를 중재하려는 또 다른 인물 B와 만나기로 했음. 하차 기사 이후 만남 무산. 이명세 감독이 B를 통해 윤제균 감독에게 "최고장을 보냈다"고 전함.
최고장은 채무 관계에서 돈을 받을 의무가 있는 사람이 상대에게 보내는 것.
#24일자로 이명세 감독이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미스터K' 저작권자로 등록됨. 이명세 감독은 자신이 '미스터K' 저작자라며 2011년 12월11일 저작한 것으로 등록. 이명세 감독은 스타뉴스와 통화에서 "박수진 작가가 초고를 쓴 것은 맞지만 자신이 아이디어를 냈다"고 주장.
이명세 감독이 '미스터K' 저작권을 등록한 것은 향후 '미스터K' 촬영이 자신을 배제한 채 진행될 경우 제작금지가처분 신청을 낼 수 있는 주요한 증거자료가 될 수 있음.
#4월25일 JK필름, 이명세 감독이 보낸 최고장 받음. 한국일보에서 이명세 감독 하차 진실공방 기사 보도. 이명세 감독은 인터뷰에서 자신은 하차하겠다는 뜻을 밝힌 적이 없다고 함.
이날 이명세 감독이 윤제균 감독에게 전화해 "퇴직금이나 마찬가지니 잘 생각해달라"고 함. 이후 윤제균 감독과 이명세 감독이 만나 2억원에 합의하기로 함. 세부사항은 조감독과 논의하기로 함.
#4월26일 김정곤 조감독이 JK필름을 찾아 길영민 대표와 돈문제 협의. 합의금에 더해 '영자야, 내동생아'를 진행하면서 지인에 빌렸던 3000만원과 '미스터K' 법인카드 1400만원도 달라고 함. 합의금 세부내용을 미지급금으로 해달라고 요구. 길영민 대표가 CJ와 상의한 뒤 그런 식으론 합의할 수 없다고 전달.
#이날 오후 이명세 감독이 전도연 만나 억울함 호소.
#포털 다음에 이명세 감독을 응원합니다 아고라 개설.
#4월27일 '미스터K' 주인공 설경구와 문소리가 JK필름 방문. 영화를 찍기 위해 빨리 문제가 좋게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뜻 전함.
#이날 이명세 감독 트위터 시작.
#4월30일 김동호 부산영화제 명예위원장이 이명세 감독과 윤제균 감독을 함께 만나 원만하게 합의를 하려고 중재하려 했다가 무산.
#5월2일 JK필름, 이명세 감독 대신 이승준 감독으로 연출 교체 결정.
이명세 감독과 윤제균 감독은 '미스터K'를 선의로 모여 시작했지만 오해에 오해가 쌓여 결국 최악의 순간까지 치달았다.
이명세 감독은 분명 한국영화가 자랑하는 거장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M' 등을 통해 빼어난 영상으로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런 이명세 감독이지만 현재 영화제작 시스템에선 5년 동안 차기작을 찍지 못했다. 이명세 감독과 윤제균 감독이 손을 잡은 건 두 사람에게 모두에게 기회였다.
'미스터K' 사건은 진행 중이다. 11회까지 31억원이 투입됐으며, 촬영을 중단한 채 손해만 쌓이고 있다. 감독을 교체했다고 '미스터K'에 얽힌 이야기들이 풀리진 않았다. 오해도 그대로다. 여러모로 한국영화계에 씁쓸함을 안긴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