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맛', 이 정도로 노골적이면 차라리 코미디①

[★리포트]

전형화 기자  |  2012.05.16 09:22


임상수 감독의 영화는 노골적이다.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해?'라고 할 법한, 무의식 저편에 던져놓을 만한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의 영화에는 놓여있는 화병에도, 걸려있는 그림에도, 마시고 있는 와인에도 위선이 알알이 담겨있다. 그래서 불편하다.


15일 임상수 감독의 신작 '돈의 맛'이 기자시사회를 통해 첫선을 보였다. 제65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작품인만큼 시사회장인 롯데 건대시네마에는 영화 관계자들이 구름 같이 몰렸다. 마케팅 직원이 얼굴 아는 기자들은 아직 안 왔는데 벌써 표가 동이 났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돈의 맛'은 천장까지 돈다발이 쌓여있는 비밀금고에서 돈을 퍼 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재벌가 집사노릇을 하는 샐러리맨 주영작(김강우)은 돈의 맛을 보라는 윤회장(백윤식)의 말에 냄새만 맡을 뿐 돈다발을 품에 담지는 않는다. 트렁크에 가득 담긴 돈은 검찰총수 차에 고스란히 실린다. 아들을 그냥 검찰청에 출두시키기만 하면 된다는 말과 함께.


아내 백금옥(윤여정)을 정점으로 한 재벌가 삶에 지친 윤회장은 필리핀 하녀와 사랑의 도피를 꿈꾼다. 두 사람의 관계에 분노한 백금옥은 주영작을 강간하다시피 하고 윤회장의 일을 대신 맡긴다. 이혼하고 재벌가로 돌아온 나미(김효진)는 주영작을 꼬드기고, 주영작은 점점 돈의 맛에 중독된다. 파멸의 순간이 점점 다가온다.

'돈의 맛'은 노골적이다. 백금옥과 윤회장, 나미, 그리고 검찰에서 풀려난 재벌2세 윤철(온주완)이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는 장면부터 노골적이다. "대한민국에 우리 돈 안 먹은 사람 있냐"는 말이 오고가는 자리에서 윤회장은 필리핀 하녀 엉덩이를 더듬는다.


외국 자본가 역할로 등장하는 달시 파켓이 "한국은 돈이 너무 문제"라고 하자 "너희는 제국주의 시절부터 안 그랬냐"고 되묻는다. 한국 재벌과 외국 자본가는 사이좋게 난교 파티를 벌인다.

쌍용 자동차 진압 장면이 TV에서 소개되자 "우리가 저 사람들 아파트 한 채씩 갖게 해서 중산층 놀이 하게 만들어야 했는데"라며 쯧쯧 거린다. 고 장자연 사건을 언급하며 "나도 그 자리 몇 번 참석했는데 걔는 그게 죽기보다 싫었다는 거 아냐, 반성 많이 했어"라고 말한다. 임상수 감독이 재벌을 취재하고 만들었는지, 상상력의 산물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 정도로 노골적이면 차라리 코미디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 들여다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다. 임상수 감독은 거꾸로 인생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희극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돈의 맛'은 재벌로 상징된 가족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면서 낄낄 댄다.


임상수 감독은 노골적이다. 그의 숨김없는 어법은 때로는 주먹을 부른다. 하지만 그의 지인들은 임상수 감독을 알아 갈수록 그의 어법이 귀엽다고 입을 모은다. 임상수 감독과 임상수 감독의 영화는 그래서 닮았다. 그의 영화들은 노골적이어서 불편하지만 그래서 음미할 만하다.

임상수 감독과 '돈의 맛'은 닮았다. 아니 닮게 만들었다. '돈의 맛'에는 전작 '하녀'가 노골적으로 담겼다. 가족들이 집에 있는 극장에 모여 '하녀'를 관람한다. 재벌가 처사에 반발하던 주영작을 납치해 린치를 가했던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가 상영된다. 나미는 어릴 적에 "우리집에서 불타 죽은 하녀가 있지 않냐"며 '하녀'를 추억한다. 감독이 이처럼 자신의 영화에 전작을 노골적으로 담는 경우도 드물다.

'하녀'도 그랬지만 '돈의 맛'은 미술에 철저히 공을 들였다. 날카롭고 각이 진 건물과 명품으로 치장된 그림들, 그리고 불에 탄 바이올린은 '돈의 맛'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돈의 맛'이 연극적인 느낌이 드는 것도 무대에 올라있는 광대들을 보여준 탓이다.

임상수 감독은 '하녀'에선 전도연이 이야기를 풀어갔다면 '돈의 맛'에선 김강우에게 그 역할을 맡겼다. 돈에 중독되는 월급쟁이. 임상수 감독은 "대중이 '하녀'의 전도연에게 자신을 동일시하지 못했다는 걸 느껴서 이번엔 김강우에게 몰입하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문제는 시점이다. '돈의 맛'은 김강우의 시점과 백윤식의 시점, 윤여정의 시점과 나미의 시점, 그리고 온주완의 어린 딸 시점이 고루 담겼다. '하녀'처럼 이야기를 관통하는 시점이 없다. 각 등장인물의 시점이 퍼즐처럼 영화를 완성하다보니 마지막까지 전체 그림을 보기가 쉽지 않다. 나무로 숲을 그리는 임상수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돈의 맛'에서 주목할 배우는 김강우다. 김강우는 '찌질이'에 어울린다. 그는 어깨힘을 잔뜩 준 역할보단 겉은 멀쩡한데 알고 보면 찌질한 역할에 더할 나위없다. 김강우라는 배우의 장점이다. 영화 속 김효진의 다리 길이는 역대 최강이다. 화려한 조화 같은 아름다움과 적당한 백치미를 동시에 갖고 있는 이 배우는 얼굴이 여러 개다.

'돈의 맛'은 누구에게는 카카오 99% 초콜릿일 수 있고, 누구에겐 40% 초콜릿일 수 있다. 먹어봐야 그 맛을 알 수 있다. 임상수 감독은 온주완 딸을 주인공으로 재벌3부작을 만들 것인가? 아니라고 했지만 두고 봐야 알 것 같다.

17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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