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균 기자
"이번 영화는 정말 잘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모델로 데뷔해 어느 새 연기자로 활동한지 햇수로 10년, 단역까지 합치면 10편이 넘는 영화를 찍었다는 배우 김민준(36)은 아쉽게도 흥행과는 친하지 않은 배우였다.
그런 김민준이 김대승 감독을 만나 날개를 달았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여인은 자신을 떠났고, 그의 아버지는 남자로서의 자존심까지 빼앗았다. 모든 걸 빼앗긴 채 복수심을 안고 내관으로 궁에 들어간 권유를 연기한 김민준은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 안에서도 권유의 심리변화를 표현해냈다.
개인적인 질문에는 웃으며 농담을 하면서도 영화에 대해 말 할 때는 진중함이 가득 묻어나는 김민준은 '후궁'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보였다. 캐릭터 권유에 대한 애정이 강해서일까. 이정도면 만족스러울 법 한데 김민준은 잘 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아쉬워했다.
-드디어 '후궁'이 뚜껑을 열었다. 완성된 영화를 본 소감은?
▶ 일단 전체적인 톤이 원래 의도대로 나왔다는 것에 안도감이 든다. 보통 배우들은 자기 것 먼저 보고 영화 전체를 보는데 전체적인 균형감과 톤들이 내 색깔을 가지고 있어서 좋았다.
-시사회 후 제작진, 출연진 분위기는 어땠나?
▶분위기 좋았다. 처음에 좀 영화가 의미하지 않는 부분으로 마케팅이 갔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들을 상쇄할만한 강함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야하고 에로틱한 부분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에로틱 하고 야하다. 그렇지만 그 이전에 강력한 스토리 라인이 강점이라고 본다.
영화를 팥빙수라고 치면 그 안에는 여러 가지 고명들이 있다. 떡도 들어가고 우유도 들어가고 연유도 들어가고. 우리 영화는 초반에는 '찹쌀떡이 맛있는 팥빙수야'라고 오해 아닌 오해를 샀던 영화인데 실제로는 '팥이 정말 맛있는 팥빙수'인 것 같다.
떡이라서 좀 이상한가?(웃음) 그럼 녹차빙수로 하자. 녹차빙수라고 알려졌는데 실제로는 팥이 정말 맛있는 빙수다.
-정사신을 찍을 때 합을 완벽하게 맞추는 감독이 있고 배우에게 맡기는 감독이 있다. 김대승 감독은 어떤 스타일이었나?
▶정확히 연출된 부분이 많았다. 감정은 날것이어야 하지만 몸이 표현하는 연기는 정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명과 조명을 최적화 할 수 있는 동작들이 부분부분 나와야 결과물이 좋을 수밖에 없는 촬영이기 때문에 동작의 날 것 같은 부분들은 많이 배제했다.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효과들이 적절하게 잘 들어갔다. 판타지적인 부분에서도 색감에서도. 그걸 다 아우르는 김대승 감독님의 공이였던 것 같다.
-주연인데 출연 분량은 다른 배우에 비해 적은 편이다. 분량에 대한 불만은 없었나 ?
▶자기 하기 나름이다. 적은 양으로도 신스틸러라는 말처럼 자기 걸로 확 만드는 배우가 있다. 나쁜 결과가 나온다면 순전히 다 내 탓이지.
-성원대군(김동욱 분)이 권유의 바지를 벗기는 장면은 어떻게 촬영했나?
▶그 부분을 고민 많이 했다. 실제로 벗고 CG로 처리할지 아니면 카메라에 안 보여줄지. 그냥 김동욱의 몸으로 가려서 감정들로만 표현할지 아예 직접적으로 보여줘서 강한 임팩트를 남길지 고민하다가 일단은 하체 본을 라텍스로 떴다. 그걸 가공하고 비주얼 적인 부분들을 만들어서 그 라텍스 수트를 입고 촬영을 강행했다. 찰나의 노출을 주고 강한 임팩트를 주는 게 맞다 생각했고, 그렇게 연기했다.
-고민한 만큼 만족스러운가?
▶순간이지만 실제같이 나왔다. 왕이 정말 그 장면을 잊을 수 없었을 거다.
-영화에서는 오해로 인해 화연에게 복수를 하려 한다. 자신을 배신하거나 차버린 여자친구에게 복수를 한 적이 있나?
▶소심한 복수는 한다. 예를 들어서 같은 공간에서 마주치면 서로 어색해서 자리를 뜨기 마련인데 그럴 때 끝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난 괜찮아"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거? 엄청 어색해야하는데 '뭐 옛날에 사귀었던 여자인데' 이런 식으로 어필하면 약간 카타르시스가 있지 않나.
싸이월드 같은 거 보다가 예전에 내가 선물한 반지를 끼고 있으면 '반지 돌려줘'가 아니고 '그 반지는 안 끼는게 맞지 않나?' 이런 문자 하나 보내면 재미있지 않나. 반지 돌려줘 이것도 아니고 '내가 선물한 건데 안 끼는 게 맞지 않아?' 그런 문자 하나 보내며 소심하게, 쪼잔한 복수를 하는 거.
-예능에서 보여주는 김민준 표 개그를 '허무개그'나 '썰렁개그'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표현하기에는 해학적이고 철학적인 블랙 유머 같다. 그냥 말꼬리 잡는 게 아니라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은유법이기도 하고, 우문현답 같기도 하고. 나는 직설적으로 표현을 못한다. 그래서 하기 시작했던 게 그런 화법이다. 그렇게 치부 되기에는 좀 더 메시지가 있는 말이라고 믿고 싶다. 예능이기 때문에 장난으로 했었는데 평소에도 말을 그렇게 한다. 평소에는 조금 더 진지하게.
-DJ로도 활동하지 않았나? 2010년 월드 DJ페스티벌에서 공연을 봤던 기억이 있다.
▶그 때는 진짜 사고였다. 이건 진짜 해명해야 한다. 아민 반 뷰렌이 바로 내 전 타임이었다. 내가 셋팅해 놓은 믹서기를 보더니 매니저를 통해서 이걸 좀 쓸 수 있겠냐고 물어서 세계 최고의 탑 랭커가 내 믹서기를 쓰고 싶다는데 쓰시라고 했다.
그리고 느긋하게 대기를 하고 있는데 내 타임이 다 되도록 끝나질 않는 거다. 그때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소음규제로 사운드 데시벨은 자꾸 낮추고 있고, 나는 보장받은 플레이 타임이 줄어들고 있는 거다.
주어진 한 시간 반에 맞춰 음악을 세팅했는데 주최측에서는 30분 만 음악을 틀라고 했다. 내가 쓰던 믹서를 다른 사람이 썼고, 플레이어를 다른 사람이 건드리면 세팅할 시간이 10분은 주어져야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이 바로 플레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비트 매칭이 전부다 다 나가버렸다. 완전히 얼치기가 되어 버렸다. 결과만 놓고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애가 무대에 올라온 것이다. 그래서 월드디제이페스티벌은 정말 가슴 아팠다. 아마 내 DJ 플레이 사상 최악의 경험이지 않을까.
-요즘도 열심히 디제잉 하고 있나?
▶안한다(웃음). 지금은 리스너다. 영화를 찍으면서도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다. 나에게는 카페인과 니코틴 이상의 것들이기 때문에 리스너로서는 아직까지도 열정적이다.
-다음 작품 계획은?
▶JTBC '친애하는 당신에게'라는 드라마 한다. 박솔미와 슈퍼 신인 두명(배누리, 홍종현)과 함께 한다. '연애시대'로 유명한 노자와 히사시 소설을 베이스로 한 드라마라고 들었다. 사람의 내면을 잘 관통하지 않을까 싶다.
불륜의 소재도 있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하는 것처럼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것에 대한 공감을 살 수 있을 만큼 탄탄한 필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연기만 잘하면 된다. 글은 굉장히 좋다.
-불륜에 빠지는 역할인가?
▶명분 있는 불륜이다. 명분은 사랑이다. 사랑이 아닌 걸 선택했다가 결국 모든 걸 버리고 사랑을 택하는 캐릭터다.
-마지막으로 '후궁'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과 내가 연기했지만 잘했다 싶은 부분이 있는지 궁금하다.
▶진짜 아쉬웠던 부분은 심경변화를 보일 수 있는 여건이 조금 있었더라면 하는 것.
감독님께 권유가 개인적인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 드렸었다. 방이라도 있다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권유의 심경이라도 어떻게 표현이 안되겠냐고. 그냥 극의 전개를 위한 매개체로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었다.
잘한 건 진짜 없다. 심지어 권유라는 캐릭터를 다른 사람이 잘했더라면 그걸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다. 영화에 대한 애정이 높아서 그런 것 같다. 만약에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때 촬영을 고사하고 정말 좋은 연기자가 권유를 잘 성공시킨 것을 극장에서 보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권유 제가 할게요'라고 하고 똑같이 연기하고 싶다. 미리 알고 걱정했던 부분들을 어떻게 만족하게 처리를 할까 하는 건 아직도 숙제인 것 같다.
-너무 겸손한 발언 아닌가?
▶ 별의 별 생각을 다했다. 카메라도 완전 타이트하게 안 들어오고 바스트샷 안에서 갈등과 심경 변화를 표현해야 하는데 손도 안보이고 자세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하고. 경솔한 행동은 안되고 동작은 눈동자 굴리는 것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심지어 '턱근육을 써야하나, 어금니를 악물어야 하나'도 고민했다. 그래봤자 화면에는 안 보인다. '어떻게 해야하지?' 이렇게 생각하다가 끝나버린 신들이 많다. 방법을 못 찾았다는 것에 대해 많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