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쌍 <사진제공=정글엔터테인먼트>
'작년 한해는 미쳤어. 'TV를 껐네'는 28일간 지켜냈어. 제일 꼭대기 칸. 바쁘니까 가지 못한 시상식도 많아. 적어도 벤틀리는 타야 인정해 주잖아. 100억 정도 돼야 좀 있어 보이잖아' (리쌍 8집 '개리와 기리' 노랫말 中)
개리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힙합 음악이 '자화자찬' 일색이라지만 리쌍은 지나치게 솔직하다. 개리의 잘난 척에 길이 '정신차려! 지나면 다 한 때. 잠시만 멈추고 흐트러진 마음 갖추자'며 다독인다.
매주 토요일 '무한도전'에서 재미없다고 구박받던 길의 모습도, 한 여자를 묵묵히 지키며 재미를 준 '런닝맨' 속 월요 커플남 개리의 모습은 없었다. 새 음반은 리쌍표 음악으로만 오롯이 채워졌다.
지난해 정규 7집 '아수라 발발타' 전곡이 음원차트 1~10위를 휩쓸었던 리쌍은 이번에 확실한 변화를 줬다. 찌질한 감성을 자극하는 '이별시리즈' 혹은 'TV를 껐네'에서 보여준 음흉한 멘트로 재탕의 인기를 노릴 법도 한데, 리쌍은 '밴드' 프로젝트란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리쌍의 이번 앨범에는 보컬과 연주의 매력이 듬뿍 담겼다. 전체적으로 복고코드가 풍기는 새 음악에는 세련된 힙합 음악이 없다.
대신 촌스럽고 담백한 소리가 풍성한 밴드 사운드와 맞물리자 매끈한 음악이 빠졌다. 조영남의 1991년작 '겸손은 힘들어'가 21년의 시간을 거슬러 다시 태어났지만, 2012년 버전은 더 짙은 복고 냄새를 풍긴다. '우리 지금 만나'에서 보여준 리쌍표 복고 음악의 정점이다.
리쌍 <사진제공=정글엔터테인먼트>
리메이크곡이 3곡이나 수록된 덕에 옛 음악의 향수는 더욱 짙어졌다. 리쌍이 다시 부른 이남이의 '울고 싶어라' 봄여름가을겨울의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는 원곡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담백하고 옛스럽게 표현했다. 길의 허스키한 음색과 바비킴, 정인, 쌈디 등 동료들이 다정하게 마이크를 이어받았고, 옛 음악의 차분함은 개리의 찰진 랩이 더해지면서 세련미를 갖추고 있다.
두 남자 특유의 목소리에 '밴드'란 날개를 달자 생기 있는 음악이 만들어졌다. 장르에 대한 모험도 묵직함을 더했다. YB와 만나 강렬한 록 음악을 만든 '썸데이'(Someday), 'Hola'에서는 보사노바가 꿈틀댄다. 또 'Bururi'에서는 정인의 날카로운 보컬이 풍성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
인디 밴드와의 합동작업은 지난해 앨범으로부터 시작된 것. 7집이 '맛보기'였다면 8집에선 대놓고 밴드와의 접점을 찾고자 했다. 사랑과 이별 노래로 자리매김한 리쌍이 향후 오랜 음악 생활을 위해 택한 방법은 '밴드'. 새 음악에 대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분명 아쉬운 점도 있다.
리쌍 <사진제공=정글엔터테인먼트>
밴드의 매력을 살리기 위해서라지만, 힙합음악을 하는 리쌍의 색깔은 옅어져 다소 아쉽다. 윤도현과 정인 등 파트너를 번갈아 가며 특유의 허스키 음색을 뽐낸 길의 활동 폭이 넓어진 반면, 개리의 래핑이 살짝 가려져 안타깝다. 물론 보컬, 밴드, 연주, 랩이 모두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한 과정이다.
리쌍은 복고코드를 이용해 '명곡'을 새롭게 다시 불렀다. 무엇보다 지난 해 대히트를 기록한 7집의 히트코드가 분명함에도 불구, 이를 따르지 않은 리쌍의 용감한 선택이 돋보이는 앨범이다. 사뭇 진지한 노랫말이 묵직함을 더하고 장르와의 결합도 여전히 꽤나 매끄럽다.
리쌍의 마초적인 매력은 더 짙은 향기를 냈다. 두 사람이 선사한 깊은 감수성과 음악적인 재치를 꿰어낸 인생사가 그려졌다. 노랫말이 직선이라면 음악은 곡선이다. 실연의 아픔이 슬프다 못해 처절해도 묵직한 리듬을 타니 경쾌하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리쌍표 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