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균 기자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은 대부분 비현실적이다. 실장님은 너무 젊고, 의사는 너무 잘생겼으며 40대 아저씨들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들과 너무 다르다.
드라마 속, 잘생기고 자상한데다 능력까지 겸비한 비현실적 남자주인공 중 요즘 특히나 각광받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지난 19일 종영한 MBC수목드라마 '아이두 아이두'(이하 '아이두')의 조은성 역을 연기한 박건형이다.
박건형은 '아이두'에서 독신주의자 산부인과 의사를 연기했다. 지금껏 독신주의자로 살다가 극중 황지안(김선아 분)과 맞선을 본 뒤, 사랑에 빠져 결혼을 결심하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아이의 아빠가 되겠다고 자청하며 변하지 않는 순애보로 여심을 흔들었다.
임신도 상관없다며 프러포즈 할 만큼 멋진 남자, 그러나 그녀의 사랑을 위해 뒤로 물러설 줄 아는 남자 조은성을 연기한 배우 박건형을 만났다.
◆ "'아이두' 마지막 장면에서 굉장히 슬펐다"
드라마 '아이두'는 해피엔딩으로 종영을 맞았다. 그런데 이 해피엔딩이라는 것은 황지안(김선아 분)과 이태강(이장우 분)을 위한 해피엔딩이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고 행복해 하던 모습을 실제 뒤에서 지켜보던 은성의 마음은 어땠을까?
"마지막에 지안이 아기를 낳는 장면에서 어르신들과 가족들이 다 모였다. 거기서 태강이 애를 받고 좋아하고 다들 아이를 보며 좋아하더라. 그런데 그렇게 가족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굉장히 슬펐다. 그렇게 보고 있자니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박건형은 시청자들이 조은성이라는 인물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게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본인이 먼저 조은성을 이해하기 위해 도 닦는 마음으로 산에도 올라가고, 캐릭터에 대한 연구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촬영에서 선생님들이 내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시고 제 마음을 아셨는지 피해주셨다. 그랬더니 박영규 선생님이 '그게 배우의 삶이야' 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동안 너무 조은성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살다보니 마지막에 울컥했다."
3개월 동안 맡은 배역에 푹 빠져서 행복하게 연기했다는 박건형. 그는 처음부터 어차피 두 사람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실제 자신의 눈으로 엔딩을 확인하니 그제야 슬펐다고 말했다.
"나는 은성을 연기하며 지안과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끝을 생각하지 않고 가능성을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아마 여기까지 못 왔을 것 같다. 그 끝을 알기 때문에 어차피 안 될 것을 알고 연기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다보니 마지막에 직접 보면서 슬펐나보다."
ⓒ임성균 기자
◆ "'어떤 일이 생겨도 이 여자를 사랑하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두' 속의 은성은 멋있기도 했지만,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도 있었다. 보통의 한국 사람으로서 이해하기 힘든 일들도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모두 받아들였다. 이에 남성 시청자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나도 초반에는 고민했다. 독신주의자로 살다가 생전 처음으로 마음에 들었던 여자가 있어서 결혼생각까지 생각하고 잘 해보려는데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데 어떻게 은성이처럼 할 수가 있느냐고 감독님께 물어봤다. 내가 정말 조은성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시청자에게 보여줘야 하니까 내가 조은성을 납득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에 이해하려는 노력을 거듭했다."
그러나 박건형은 '아이두'에서 말도 안 되는 캐릭터가 아니라 너무 만나고 싶은 캐릭터로 거듭났다. 그는 사랑으로 캐릭터를 감싸 안았다고 말한다.
"나는 조은성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실제로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그렇지 못한 것이지 왜 없겠냐고 생각했다. 한국남자들이 좀 바뀌어야 된다는 생각도 함께 했고. 중요한 것은 '어떤 이유 때문에 이 여자를 사랑한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나는 어떤 상황이 생겨도 이 여자를 사랑하겠다'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그러니까 아기가 있고 이런 것을 떠나서 역할을 이해하게 됐다."
ⓒ임성균 기자
◆ "분위기 메이커? 남들이 지칠 때 조금 덜 지친다"
배우 박건형을 처음 본 느낌은 '에너제틱 한 사람이다' 였다.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한 배우라서 그런지, 목소리와 몸짓에도 힘이 넘쳤다. '아이두' 드라마 제작진에 따르면 박건형은 촬영장에서도 분위기 메이커라고 한다.
"드라마 현장에서 애드리브를 많이 쳤다. 분위기 메이커까지는 모르겠고 다들 잠을 못자고 피곤하니까 분위기 좋게 가보려고 그랬다. 일주일 내내 촬영하다 보면 피곤하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나는 남들 지칠 때 좀 덜 지치는 스타일인 것 같다."
계속되는 드라마 촬영에 지칠 법도 한데 참 긍정적인 사람이다. 일주일에 7일을 드라마 촬영하면서도 밤도 좀 새고 해야 진짜 드라마 찍는 기분이 난다며 웃는다.
"시쳇말이지만 항상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 예전에 '햄릿' 공연을 하다가 공연중 칼 맞아서 눈을 다친 적이 있다. 그때 눈에서 피가 쏟아지고 그래서 나는 눈만 보이게 된다면 진짜 열심히 살겠다고 기도했다. 큰 병치레를 하다보면 착해진다고 하는데 맞는 것 같다. 그 전에도 긍정적으로 살려고 했지만 그 이후 굉장히 강력해졌다."
◆ "두 번의 의사역할.. 그리고 새로운 도전"
박건형은 올해에만 의사역할을 두 번 했다. 지난 4월 종영한 종편 jTBC '신드롬'에서 의사 역할을 맡았던 박건형은 이어 캐스팅 된 '아이두'에서도 산부인과 의사 역할을 맡은 것이다.
"연속으로 의사역할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처음에는 혼자 빵 터졌다. 그런데 전작이 메디컬드라마라서 '아이두'에서 맡은 산부인과 의사 역할은 부담스럽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한테 의사가운이 잘 어울려서 좋았다."
두 번 연속 의사역할로 안방극장을 찾았던 박건형은 이제 다시 무대로 돌아간다. 다음달 막을 올리는 뮤지컬 '헤드윅'에서 트랜스젠더 헤드윅 역을 맡아 공연한다. 실제로 박건형은 이날 인터뷰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오전 내내 뮤지컬 연습을 하고 왔다. 드라마에서 조은성 역으로 여성 팬들의 지지를 받다가 트렌스젠더 헤드윅으로 변신한다는 것이 겁나기도 할 텐데 그는 도전하기로 결심했다고 힘줘서 말했다.
"배우 박건형으로서 새로운 도전이다. '헤드윅' 한국 초연때부터 작품섭외가 들어왔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감당을 못할 것 같아서 거절했다. 지금은..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면 어떻게 한번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겁도 난다. 내가 어떤 모습일지 두렵기도 하고.. 그런데 이렇게 겁날 때 도전해야 되는 것 같다. 또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는 이미 베테랑 뮤지컬 배우지만 '헤드윅'은 워낙 유명한 작품인데다가 배우 한명이 무대 위를 오롯이 혼자 책임져야 하는 만큼 박건형의 어깨는 무겁다.
"공연이 다가 올 때까지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지 궁금하면서도 그날이 너무 두렵다. '아이두'에서 여성시청자의 마음을 뺏기 위해 노력했다면 이번에 나의 목표는 객석의 남자를 반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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