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균 기자
천만명을 동원한 감독의 표정은 어떨까? 14일 '도둑들' 천만 동원을 하루 앞두고 최동훈 감독을 만나기 전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도둑들'이 3년 만에 탄생한 천만영화인 만큼 기뻐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고, 멋쩍은 표정은 아닐까 나름 상상했다.
서울 대학로 케이퍼필름 사무실에서 만난 최동훈 감독 얼굴은 여느 때와 별 차이가 없었다. 여전히 달변이고, 여전히 유쾌하고, 여전히 쑥스러워했다.
케이퍼필름 사무실은 최동훈 감독의 부인이자 '도둑들' 제작자인 안수현 대표가 박찬욱 감독과 프로듀서로 일할 때부터 사용했던 곳이다. 그러니 이 사무실은 칸영화제 수상과 천만영화가 나온 복스러운 장소란 뜻이기도 하다.
인터뷰에 앞서 안수현 대표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다. 안 대표는 "내 영화 모두 합해도 천만이 안된다"며 최동훈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그래도 최동훈 감독은 칸에 못 가봤잖냐"고 하자 깔깔 대더니 "칸에는 안 보낼 것이에요"라고 받았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최동훈 감독은 "푸하하"라고 웃음을 터뜨리더니 "예전부터 코냑영화제에 초청된 적은 있지만 칸 영화제 같은 곳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원래 찍으려 했던 마카오 카지노에선 거절을 당했는데 우연히 다른 곳에서 촬영이 허가됐다. 처음부터 운이 따른 영화인데.
▶놀라운 행운이었다. 영화 촬영에 앞서 홍콩과 마카오에 답사 차 김윤석 선배와 같이 갔었다. 원래 촬영을 했으면 하는 곳에 제안은 했지만 답은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마카오에서 여행을 안내해주던 분이 우연히 다른 카지노 관계자와 만나면서 즉석에서 약속을 잡게 됐다. 안 되는 영어로 땀을 흘려가며 30분 동안 이야기를 했더니 담당자가 "당신의 열의를 알겠다"고 하면서 "정식으로 제안을 해달라"고 하더라. 결국 원래 하려고 했던 곳은 거절당했고, 우연히 만난 곳에선 촬영이 허가됐다. 만일 허가가 안됐으면 세트를 만들었어야 했다. 굴러온 복인 것 같다.
-'도둑들'이 15일로 천만을 넘는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볼까 감독으로서도 고민 해봤을 텐데.
▶'도둑들'은 장르 중에서도 하위 장르 아닌가. 천만을 넘을 영화 장르가 아니다. 취향도 많이 갈리고. 그런데 두 번 본 분들도 많고,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보시더라. 왜 볼까란 생각을 당연히 해봤다.
우리 아버지는 '도둑들'이 굉장히 본격적이었다고 하시더라. 나이 드신 분이 보시기에 영화적이란 뜻이다. 그건 그 분들이 영화적이라고 생각했던 '타워링'이나 '대탈출' 같은 고전 할리우드 영화 같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왜 볼까라고 감독에게 물은 들 답이 있겠나. 그저 배우들의 캐릭터와 정서에 사람들이 각각 반응한 게 아닌가 싶다.
'범죄의 재구성' '타짜'를 제작해주신 은인인 차승재 대표님은 "너 늘었더라"고 하시시더라. 정말 기뻤다.
-'도둑들'은 '실미도'나 '괴물' 같은 천만영화들과는 달리 한국적인 정서나 상황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 '해운대'처럼 하이 컨셉트 무비란 점에서 한국적인 할리우드 영화 시대가 열린 느낌이기도 한데.
▶어느정도 공감한다. 저도 윤제균 감독이 '해운대' 제작을 발표했을 때 보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다. 해운대에 쓰나미가 몰려온다는 발상, 하이 컨셉트가 확실하지 않나. '도둑들'은 무엇보다 찍으면서 즐거웠다. 그런 즐거움을 관객들이 알아주신 게 아닌 가 싶기도 하다.
-세속적인 궁금증인데 천만영화가 되면 감독은 어떤 혜택을 받나.
▶우선 인센티브를 받는다. 그리고 사고 싶은 해외 영화 DVD를 마음대로 지를 수 있다.(웃음)
-천만 영화는 감독에게 기쁨이기도 하지만 부담이기도 할텐데.
▶그래서 뇌를 속이려고 한다. 난 천만 감독이 아니다, 천만 감독이 아니다라고. 금단의 열매를 딴 것 같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벤허'를 찍고 난 다음에 2년 뒤에 '아이의 시간'을 찍었다. '벤허'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뒀나. 그런데 다음 영화는 연극을 바탕으로 한 소품이고 그게 또 깊이가 대단하다. 나도 감독으로서 내 원래 욕망을 되돌아보고 있다. 사람들은 '도둑들'을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에 이어 범죄3부작이라고 하지만 나는 '전우치'의 변형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적인 재미와 즐거움. 난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와이어 액션을 비롯해 '전우치' 학습효과가 '도둑들'에 상당히 드러난 것 같은데.
▶'전우치' 학습효과가 확실히 있다. '전우치' 때 CG 공부도 했고, 액션 공부도 했다. 액션이 너무 길면 드라마를 멈추게 하는 요소가 되더라.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듯 '순류역류' 같은 장면들이 머리에서 모자이크가 됐다. 하지만 이 영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은 '전우치'다. 김윤석이 액션은 연기라고 하더라. 그래서 이렇게 연기를 하면 어떻겠냐라고 해서 같이 술을 마시고 새벽에 일어나 콘티를 새로 짰다. 그런 순간이 멋진 것 같다. 김윤석은 정말 대단한 배우다.
임성균 기자
-최동훈 감독은 캐릭터를 상당히 잘 구축하지만 깊이 있게 들어가기 직전 빠르게 템포를 전환하곤 했다. '도둑들' 이후에는 깊이를 더욱 추구해도 될텐데.
▶그런 추천을 듣고 싶었다. 나는 장르적인 쾌감에 집중하고 내러티브를 좋아한다. 그런데 '도둑들'은 이야기가 꽉 짜여 있지는 않다. 오히려 느린 것이 즐거울 수는 없을까 고민했다. 전부 느릴 수는 없지만 거기서 오는 즐거움, 그리고 깊이. 차기작 고민이 한층 더해질 것 같다.
장르의 쾌감을 줄이고 인간의 깊이를 담는 건 내게 큰 도전이 될 것 같다.
-'도둑들'은 세 커플의 사랑 이야기에 느려지는 호흡 등 상업적으론 위험할 수도 있는 시도를 했는데.
▶이야기를 짤 때 플롯부터 고민한다. '도둑들'은 기승전결,기승전결, 이렇게 가다가 긴 시퀀스로 마무리한다고 생각했다. 무모할 수 있었고, 나조차 상업적으로 잘 못 느끼겠더라. 그래서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했다.
-천만을 넘어서면 이젠 '아바타'를 넘을 수 있을까에 이야기 초점이 맞춰질 텐데.
▶천만도 저한테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아바타'는 무리이지 않겠나. 지금도 너무 흥행속도가 빨라 어리둥절하다. 처음에는 영진위 통합전산망 오류인 줄 알았다. 나중에 영진위가 전산 오류였다고 발표하면 어쩌지 라고 걱정도 했다.(웃음)
-천만 감독이 됐는데 해외 진출 욕망은 없나.
▶욕망은 있다. 하지만 난 해외에서 알려진 감독이 아니다. '타짜'도 카드가 아니라 화투이지 않나. 사실 그래서 '타짜' 때 카드로 해볼까도 고민했었다. 그런데 내가 뭐하나 싶더라. 우리 관객에게 보여주는 게 우선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외국에서 연출하는 건, 난 의외로 소심하다. 외국배우와 작업하는 데 두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도둑들' 촬영을 하다 보니 배우는 어디나 비슷하구나란 생각이 들더라.
-누구는 '도둑들'에 칭찬을 쏟아 놓고, 누구는 '도둑들'이 과연 천만영화냐고 한다. 그런 평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평들보단 지금은 내가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려고 했는지에 대한 복기가 우선이다. 원래 하려고 했던 늬앙스나 캐릭터, 정서들을 제대로 관객에게 전했는지 생각해보고 있다.
-최동훈 감독 영화는 장르 영화다보니 작품마다 음악을 강하게 사용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선 과거 작품보다 음악사용이 덜하던데.
▶영화에 음악은 늬앙스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이 영화에선 음악은 두 곳이 가장 중요했다. 마카오박과 펩시가 방에서 만나고 헤어질 때 흘러나오는 음악과 씹던 껌이 죽을 때 나오는 음악. 전자는 아주 고전적인 음악으로 쓸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제는 후자인데. 슬픈 음악을 넣으면 다음 장면에서 감정을 끌어올리기가 어렵더라. 그런데 즐거운 음악을 넣었더니 씹던껌이 불쌍해지면서 바로 다음 장면으로 템포를 바꿀 수 있더라. 그래서 기자시사회 전날 밤에 음악을 바꿨다. 음악이야말로 깊은 내공이 필요한 것 같다. 두 명의 음악감독이 너무 고생이 많았다. 됐다고 악수하고 새벽3시에 전화해서 다시 해달라고 매일 했으니.
-상 욕심은 없나.
▶나보단 배우들이 상을 받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 스태프 상들도 마찬가지고. 난 각색상이면 바랄 나위가 없다.
-차기작으로 경찰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다른 생각들이 많이 난다. 난 아직 너무 멀었다. 이제 헤엄치는 법을 배우고 깝친다는 느낌이다. 너무 쪽팔린다. 그래도 영화는 욕망이 강한 사람이 하는 것 같다. 실력이 별로여도 눈높이는 높은.(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