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프로그램에 나간 김기덕 감독은 "그래도 김기덕은 김기덕"이라 했다. 그 말이 맞았다. '피에타'는 여전히 김기덕다웠고, 김기덕은 여전히 변화 중이었다.
4일 오전 서울 왕십리 CGV에서 김기덕 감독의 18번째 영화 '피에타'가 첫 공개됐다. 한국영화로는 7년만에 제 6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작품이자, '비몽' 이후 한국에서는 정식으로 영화를 개봉하지 않았던 김기덕 감독의 귀환을 알린 작품이기도 했다. 감독과 배우들은 이미 베니스로 떠난 뒤였지만, 한국에서 첫 상영되는 '피에타'를 보기 위해 여러 영화 관계자들이 모였다.
제목인 '피에타'는 '신이여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이자 죽은 예수를 무릎에 누이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을 담은 조각상의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는 제목처럼 모자지간이라며 얽힌 두 남녀를 중심에 두고 돈, 돈, 돈으로 미쳐가는 도시의 아이러니를 그려낸다. 기독교적 은유 또한 담겼다.
영화를 공개하기 전 "극단적 자본주의로 치닫는 현대사회에서 우리 모습을 진단해보고자 했다"는 감독의 말은 두 주인공의 입을 빌려 공격적으로 직접적으로 전해진다. 복수와 속죄, 짐승같음과 인간다움, 도시의 발전과 그늘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있는 돈, 돈, 돈.
주인공 강도(이정진 분)는 사채업자의 돈을 받아내는 추심인. 청계천을 돌며 공장일을 하는 채무자들을 장애인으로 만들어 보험금을 챙기는 짐승같은 남자다. 그러던 어느날 그 앞에 자신이 엄마라는 여인(조민수 분)이 나타난다. 강도는 욕설을 하며 뿌리치지만 흔들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처음으로 어머니의 손길을 느끼며 강도의 삶이 바뀌어가는 가운데, 여인의 비밀이 조금씩 드러난다.
'피에타'는 참으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같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동물의 창자, 꿈틀거리는 장어, 짐승같은 남자와 절규하는 사람들… 펄떡이는 묘사들은 온전히 김기덕 감독의 것이다. 붉은 피가 튀고 살점이 뜯기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몇몇 장면은 잔혹한 설정 때문에 화면을 직접 바라보기 힘들 정도다. 근친상간의 모티브도 분명하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남에게 고통을 주는 남자에게 극을 맡긴 자체는 또 어떤가.
그러나 여전히 거칠고 섬뜩한 이야기 속에서도 김기덕 감독의 변화는 분명하게 다가온다. 폭력과 섹스는 직접적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지옥같은 세상 속에서 전한 김기덕식 속죄와 구원의 결말은 그의 전작과는 다른 방식으로 지워지지 않을 긴 자국을 남겼다. 무엇보다 조민수와 이정진, 묵직하게 느껴진 두 배우의 존재감은 배우를 장기 말처럼 썼던 김기덕 감독의 여느 작품에서는 맛보지 못했던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정진은 내내 영화를 이끌며 자신이 지닌 전혀 다른 얼굴을, 또 다른 가능성을 입증해 보인다. 김기덕 감독으로부터 '흑발의 마리아'라는 찬사를 받았던 조민수는 그 칭찬이 결코 입에 발린 말이 아니었음을 실감케 한다. 17년만의 영화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팜므파탈을 만들어냈다.
영화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첫 황금사자상의 영예를 안을까. 국내에서는 오는 6일 개봉한다. 청소년 관람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