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건축폐기물 돼버린 '건축학개론' 한가인 집

서귀포(제주)=김수진 기자  |  2012.09.10 11:40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가인 집에서 바라온 풍경 <사진출처=명필름>(위)-현재 건축폐기물이 된 한가인의 집터에서 바라본 풍경(아래)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가인 집에서 바라온 풍경 <사진출처=명필름>(위)-현재 건축폐기물이 된 한가인의 집터에서 바라본 풍경(아래)


첫사랑은 추억일 뿐이고, 추억은 과거일 뿐이었다.

지난 3월 22일 개봉해 첫사랑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영화 '건축학개론'(감독 이용주)에 등장해 관광객 발길을 불러 모은 '한가인의 제주도 집'이 결국 건축폐기물이 됐다.


'건축학개론'은 개봉당시 410만 관객을 동원했을 만큼, 여성 관객 뿐 아니라 남성 관객에게까지 큰 사랑을 받은 로맨틱 영화. 한가인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미쓰에이(민 수지 페이 지아) 멤버 수지는 대중의 첫사랑 아이콘으로 급부상됐다.

1990년대 향수를 자극한 이 영화에서 20대 수지는 건축학을 전공하는 이제훈에게 나중에 자신의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한다. 이 약속은 오해로 인해 지켜지지 못할 약속이 되는 듯 했지만 이들이 어른이 되면서 달라진다.


30대 이혼녀가 된 한가인은 20대 초반 자신의 첫사랑 엄태웅(어린시절 이제훈)을 찾아가 제주도에 집을 지어 달라고 제의하고, 엄태웅 역시 10여 년이 흘러 자신을 불쑥 찾아와 제주도에 집을 지어 달라는 첫사랑 한가인의 제의를 내키지 않지만 수락한다. 한가인은 제주도 집을 싹 밀고 새로 지어 달라고 하지만 엄태웅은 그녀의 어린 시절 추억을 최대한 살리며 이를 완성한다.

영화에서 제주도의 집은 20대 풋풋한 첫사랑의 약속이었으며, 세월이 지나 그 약속이 완성됨을 의미한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집을 지어 주기로 약속하는 두 사람의 모습-15년이 흐른 뒤 다시 만난 두 사람의 모습(아래) <사진출처=명필름>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집을 지어 주기로 약속하는 두 사람의 모습-15년이 흐른 뒤 다시 만난 두 사람의 모습(아래) <사진출처=명필름>


지난 6일 기자는 제주도에 갔다. 여러 차례 제주도를 찾았던 터라 이번 제주 여행에서는 관광명소를 방문하는 목적이 아닌 심신의 휴식을 위한 여행 취지에 맞게 많은 사람들이 가봤다는 '한가인의 제주도 집'을 찾아 가기로 결심했다. 앞서 이곳을 다녀간 네티즌들의 정보공유로 집이 위치한 장소는 바로 알아낼 수 있었다.

영혼의 고요를 선물하는 제주의 아름다운 낙조를 바라보며 한가인의 제주도 집이 위치한 제주 서귀포 남원읍 위미리에 도착했다.

태풍 볼라벤의 피해 상황을 접했던 터라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도착한 그 곳 상황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눈앞에서 태풍이 휩쓸고 간 후 무너져 내린 돌담을 보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설마설마 하면서 영화에서 본 '그 집'을 두리번두리번 찾았다. 아무리 둘러 봐도, 그 집은 없었다. 이상하다 싶어 두리번거리는 이 낯선 사람에게 한 여자 주민이 말을 건넸다.

"혹시 그 집 찾아요?"

머쓱했지만 "네, 맞아요"라는 기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예상이 적중했다는 듯 긴 말을 쏟아냈다.

"볼품도 하나 없는데 왜 이리 사람들이 많이 오는지 모르겠네. 그 집 볼 것 하나도 없어요. 저기에요."

그러면서 공터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건물더미였다. 기자는 "저기요?"라고 되물으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현지 주민은 "저기 맞아요. 이틀 전에 부셨어요"라고 답했다. 덧붙여 "모르면 물어봐야지, 내가 그 집 찾는지 알았다니까. 거기에 카페 들어온다던데"라고 말했다.

앞서 그 집을 방문한 사람들이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이라는 요지의 방문 후기를 접하긴 했지만, 아예 공터가 됐을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터라 허무함이 더했다.

영화 \'건축학개론\'에 등장하는 한가인의 제주도 집(위) <사진출처=명필름>-철거된 한가인의 집(아래) 영화 '건축학개론'에 등장하는 한가인의 제주도 집(위) <사진출처=명필름>-철거된 한가인의 집(아래)


집터의 흔적만 남아 있는 그 집 앞에는 '건축물 폐자재류'로 분류된 건물의 조각조각이 수북하게 담겨 있었다. 사실 기자는 건축폐기물이 된 그 집을 눈앞에 두고도 휴대폰으로 영화 '건축학개론'에 등장한 그 집의 사진과 대조하며 '그 집 맞네, 맞아'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영화에 등장하는 그 집 앞 전신주 두개와 그 위치, 투톤으로 된 축대를 꼼꼼히 확인했다. 결국 기자는 건물 조각으로 뒤덮인 그 집터에 올라서서, 영화에서 한가인이 전체가 유리로 된 거실에서서 바라보던 바다 저 멀리 보이는 지귀도를 보면서 '아 그 집이 맞구나'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많은 관객들로 하여금 아련한 첫 사랑의 기억을 꺼내게 만든 이 영화 속 한가인의 제주도 집은 결국 폐기물이 됐고 사라졌다. 첫 사랑은 추억일 뿐이고, 추억은 과거일 뿐이라는 현실을 마주한 셈이다.

영화 \'건축한개론\'에 등장한 한가인의 제주도 집(위)-철거된 현재모습(아래) 영화 '건축한개론'에 등장한 한가인의 제주도 집(위)-철거된 현재모습(아래)


'철없던 나의 모습이 얼만큼 의미가 될 수 있는지, 많은 날이 지나고 나의 마음 지쳐갈 때 내 마음속으로 스러져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찾아와 생각이 나겠지. 너무 커버린 내 미래의 그 꿈들 속으로 잊혀져 가는 나의 기억이 다시 생각날까..'(김동률 '기억의 습작')

한편 영화 제작사측에 따르면 한가인의 집은 영화 속 모습 그대로, 오는 11월 갤러리 겸 카페로 재탄생된다. 하지만 '건축학개론'이 대중에게 안긴 첫사랑의 감성까지 재생될 수 있을까.

영화 \'건축한개론\'에 등장한 한가인의 제주도 집인근 태풍피해 상황 <사진=김수진 기자 skyaromy@> 영화 '건축한개론'에 등장한 한가인의 제주도 집인근 태풍피해 상황 <사진=김수진 기자 skyaromy@>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타뉴스 단독

HOT ISSUE

스타 인터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