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여정, 김해숙, 조민수(왼쪽부터) ⓒ스타뉴스
여배우의 결혼이 곧 은퇴를 의미하던 시절이 있었다. 세월이 더 지나 조금 사정이 나아졌지만 40대에 접어든 여배우들은 누군가의 엄마 혹은 이모 역에 만족해야 했다.
2000년 하고도 12년이 더 지난 지금, 올 해 영화계는 그야말로 '중년 여배우 전성시대'다. 젊은 시절의 미모는 변했지만 연기력은 오히려 더욱 차올랐다. 영화 속 그 깊은 내공이 역시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올해 베니스영화제의 여왕은 조민수였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로 연기 인생 처음으로 세계3대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조민수는 영화 상영 후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지목되며 세계 각국 언론들의 찬사를 받았다. 여우주연상 수상은 불발 됐지만 한국영화 최초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해 폐막식 시상 무대에 오르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조민수는 스크린에서 주목받던 배우는 아니었다. 그의 필모그래피에 영화 주연작은 단 4편, '피에타'를 제외하면 그나마도 1990년 작품이 최신작이다. 주로 드라마에서 활약했던 조민수는 김기덕 감독을 만나며 말 그대로 물을 만났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조민수의 눈물과 눈빛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조민수가 베니스의 여왕이었다면 윤여정은 칸의 여인이다.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와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에 모두 출연한 윤여정은 두 편의 영화가 모두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는 영예를 안았다.
윤여정의 연기는 '돈의 맛'에서 특히 빛났다. 윤여정은 돈에 대해 환멸을 느끼는 다른 주인공들과는 달리 마지막까지 재벌의 탐욕스러움을 연기했다. 남편의 배신도, 젊은 남자에 대한 욕구도 모두 돈으로 해결하는 윤여정은 영화 '돈의 맛'이 말하는 자본의 논리 그 자체다. 30세 연하 김강우와 베드신까지 감행한 윤여정의 용기까지, 윤여정은 많은 이들에게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중년의 로맨스가 어디 불륜뿐이랴. '도둑들'의 김해숙은 임달화와 함께 아름다운 중년 로맨스를 선보였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 김윤석 김혜수 이정재 전지현 등 화려한 주연배우들 속에 김해숙은 크게 주목받는 배우는 아니었다.
그러나 영화가 공개된 후, 김해숙과 임달화의 로맨스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며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손꼽혔다. 나이 50이 넘어서도 첫사랑 같은 수줍음과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던 씹던껌은 김해숙이 드라마에서 보여주던 억척엄마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영화에서 웃음과 눈물을 함께 선사하며 존재감을 톡톡히 과시한 김해숙, '도둑들' 1200만의 일등공신임을 부정할 수 없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증명해주고 있는 중년 여배우들, 깊어지는 주름만큼 연기도 깊어지고 있다. 이미 30년이 넘는 세월을 카메라 앞에서 보낸 그들이지만 마치 신인처럼 다음 행보가 궁금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