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범 기자
'피에타'는 두 주인공이 이끌어가는 영화인만큼 조민수와 이정진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조재룡'이라는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조민수의 목에 칼을 겨누고 이정진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던 그 강렬한 모습은 머릿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순라군1, '풍산개'의 암살단 2, '의뢰인'의 CCTV 직원 등 '이름'이 주어지지 않았던 조재룡이 '피에타'를 통해 계승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점점 존재감을 알리고 있는 배우 조재룡을 만났다.
먼저 축하를 건넸다. '피에타'가 황금사자상에 이어 흥행까지 잘되고 있으니 기분이 좋겠다 물었더니 조재룡은 머쓱한 듯 웃었다.
"일단은 약간 얼떨떨한데 황금사자상 받은 영화에 출연할 수 있다는 게 축복인 것 같아요. 더 잘 됐으면 좋겠고. 보너스도 주신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김기덕 감독님 스타일의 영화를 원래 좋아해요. 이런 영화들이 좀 더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악마 같은 남자 강도(이정진 분) 때문에 다리를 절게 되는 역할을 연기한 조재룡. 출연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그는 계룡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나름의 디테일을 연구했다. 그는 다리를 저는 모습을 리얼하게 담기 위해 스스로 다리에 끈을 묶었다.
"나중에 다리를 절게 되잖아요. 다리를 좀 아프게 하기 위해서 끈을 묶었죠. 피가 통하지 않게. 김기덕 감독님이 연기적인 부분에서는 아주 세밀하게 지적을 하는 편은 아니셔서 편하게 찍었어요. 조민수 선배도 편하게 해주셨고요."
매니저에게 조민수의 목에 칼을 대는 장면에서 칼이 살짝 닿았다는 에피소드를 듣고 정말이냐 묻자 그는 손을 내저으며 절대 닿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조재룡은 칼이 닿지는 않았지만 조민수가 그 장면을 찍은 후 몸살이 날 정도로 격정적인 장면이었다고 말했다.
"칼은 정말 안 닿았어요. 흥분해서 머리를 잡는 신이 있긴 한데 저는 약간 원초적으로 연기를 하다 보니 진짜로 세게 잡고 했더니 실제로 겁을 먹으신 거예요. 머리가 좀 아프셨을 거예요. 그 신 이후 몸살이 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죄송하다고 했죠. 제가 밟히는 신을 나중에 찍었는데 조민수 선배가 '너 그때 밟아 버릴거야'라고 하시더라고요. "
ⓒ이기범 기자
고등학생때부터 연기를 준비하는 요즘 세태에 비하면 조재룡은 뒤늦게 연기에 입문한 케이스다. 어릴 때부터 남을 웃기는 걸 좋아했던 그에게 TV에서 우연히 본 연극은 고급스러우면서도 여러 사람을 단번에 웃길 수 있는 매력적인 것으로 다가왔다.
"군 제대하고 서울예대에 뒤늦게 들어갔어요. 1999년부터 연극을 하면서 영화나 드라마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연극 작품이 엎어지면서 영화 오디션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오디션 정보를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다가 조금씩 적응이 됐어요."
"처음에는 영화판 자체가 부담스러웠어요. 하다보니 조금씩 연기가 늘더니 '풍산개' 때는 유일하게 전재홍 감독님이 저에게 애드리브를 허용해주셨어요."
영화 '풍산개'를 통해 김기덕 감독과 첫 인연을 맺었다는 조재룡, 여러모로 '풍산개'는 그의 연기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되어 준 영화였다.
"'풍산개'에서 만난 전재홍 감독님이 적극추천해주셔서 '피에타'까지 오게 됐죠. 주로 맡았던 역할이 코믹을 담고 있는 역이었는데 '피에타'는 코믹한 게 아니잖아요. 처음 캐스팅 됐을 때는 '왜 나에게 이 역할을 주셨을까? 오히려 남편 역이 더 어울릴텐데'했는데 진지한 역할을 주셔서 감사했어요. 웃기는 것도 좋지만 저도 진지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죠."
ⓒ이기범 기자
'조자룡'을 연상시키는 조재룡이라는 이름은 실은 가명이다. 본명은 이재룡. 탤런트 이재룡과 이름이 같아 성을 바꿨단다.
"원래 이름은 이재룡입니다. 이재룡 선배와 이름이 같아서 가명을 쓰기로 했는데 이름을 바꾸는 건 좀 그래서 조자룡이 연상되게 조재룡으로 정했어요. 아버지는 '너 이씨니까 두재룡으로 해'라고 하셨었어요."
연극을 하며 만난 10살 연하 미모의 아내와 아들까지, 그는 이미 한 가정의 어엿한 가장이다. 조재룡은 자신보다 많이 어린데다 미모까지 겸비하고 쿨 하기 까지 한 아내를 보면 절로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애처가의 면모를 보였다. 아내 자랑에 이어 생후 6개월을 갓 넘긴 아들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제 아들이라 그런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귀여워요. 아이가 복덩이 인 것 같아요. 애가 생기면서 일이 잘되고, 일도 많이 생기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가난하긴 하지만 희한하게 아이가 생기면서 캐스팅이든 아르바이트든 뭔가 생기긴 하더라고요."
줄곧 영화를 해온 조재룡은 이번에 tvN 드라마 '유리가면'을 통해 시청자들을 만나게 됐다. 큰 역할은 아니지만 영화와는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조재룡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속옷회사 사장의 오른팔인 이실장 역할인데 약간 차가워 보이는 캐릭터예요. 처음에는 감독님이 약간 밝고 재미있는 역할로 캐스팅을 했는데 김미려씨가 출연하게 되면서 그 분이 그런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저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고 진중하게 해보자고 하셨어요. 무뚝뚝하고 차가우면서도 인간적인 인물이에요."
이제 갓 주목받고 있는 지금, 조재룡에게 닮고 싶은 롤모델이 있을까. 목표가 되는 배우가 있는지 물었다.
"솔직히 롤모델은 없어요. 지향하는 배우는 변화무쌍한 배우에요. 굉장히 싸구려 코미디에서 멜로도 했다가 진중한 역할도 할 수 있는 그런 배우들이 대단해보여요.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아니까요. 외국 배우 중에 짐캐리 같은 배우가 그런 것 같아요. 모든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얘한테는 뭘 맡겨도 믿음이 간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배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