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드라마 '골든타임'(극본 최희라·연출 권석장 이윤정)이 지난 25일 23회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응급실을 배경으로 중증외상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의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골든타임'은 현실감 넘치는 이야기와 배우들의 호연 속에 월화드라마 1위로 극을 마무리했다.
이선균 이성민 황정음 송선미, 네 명의 주인공을 내세운 '골든타임'은 방송 초기 "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곤 했다. 그러나 그 진가는 회를 거듭할 수록 빛났다. 권석장 PD의 연출 아래 연기 잘 하는 욕심있는 배우들이 몇 달을 꼬박 부산에 틀어박혀 완성해 낸 이야기는 어느 톱스타가 출연한 대작보다 빛났다. 네 명의 주인공 또한 내내 반짝거렸다.
엄효섭 정규수 이기영 김형일 정성용 이기방 조상기 허태희 홍지민 신동미 등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명품 의료진 또한 두말하면 잔소리다. 촉박한 촬영일정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권석장 PD와 뭉친 패밀리 제작진과 이들 믿음직한 배우 군단의 공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빛난 4인 4각라인을 짚어본다.
◆이선균
'골든타임'의 가장 큰 줄기는 주인공인 인턴 이민우의 성장이다. 이민우는 의대 4년을 마치고 미드 자막 만들기에 몰두하면서 한방병원에서 처방전이나 써 주며 억대 연봉을 챙기던 그냥 그런 의사였다. 그런데 환자들을 살리려 분투하는 의사 최인혁을 만나고, 친구 대신 하루 응급실 당직을 서는 동안 갑작스레 실려 온 어린 환자가 눈앞에서 죽음을 맞으면서 그의 삶이 와르르 무너진다. 그리고 이민우는 최인혁의 인턴이 된다. 혹독한 응급실 생활 끝, 기도 삽관 하나를 제대로 못해 부들부들 떨던 그는 전화 지시에 의지해 임산부를 개복하는 대담함과 수술 몇 번을 보고 차이점을 짚어내는 눈썰미와 틈날 때마다 환자의 병상을 오가는 열정을 지닌 재목으로 성장한다.
어리바리 헛발질만 계속하는 인턴 나부랭이부터 대범하고 믿음직한 외상전문의 재목까지, '골든타임'의 이선균의 변화는 섬세하고도 드라마틱했다. 23회에 걸쳐 조금씩 성장하고 변화하는 이민우를 입체적으로 그리는 한편 특유의 생동감을 더했다. 미묘한 뉘앙스를 표현하는 데 탁월한 그의 표정은 황정음과 은근한 러브라인에서도 빛을 발했다. 친구의 애인으로 출발, 응급실의 동료로, 그리고 동료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는 두 사람은 단 한번도 사랑이니 우정이니를 말하지 않았지만 오만 감정을 담아낸 그 표정만으로도 충분했다. "잘 갔다와" 한 마디에 우정과 사랑, 신뢰와 배려를 담아낸 이선균. 후반부로 갈수록 그 존재감이며 탁월한 캐릭터 해석이 빛을 발했다.
◆이성민
사생활 없는 남자, 사생활 없을 것 같이 생긴 남자, 그러나 욕심나는 남자 최인혁. 바쁘고 정신없고 눈칫밥 먹는 구박덩어리에 아쉬운 소리만 해야 하는, 그러나 위급한 환자 앞에서는 누구보다 카리스마 넘치는 믿음직한 의사였다. 그 열정이 인턴 이민우를 움직였고, 냉담했던 동료 의사와 병원을 설득시켰으며 '골든타임' 내내 시청자의 마음을 쳤다. 동시에 우리나라 응급의학과, 중증외상센터의 문제점을 환기시켰다. 그의 눈빛 러브라인 또한 시청자들의 마음을 애타게 했다. 믿음직한 파트너이자 동료인 베테랑 간호사 신은아에게 전한 것은 갑자기 촉촉해지는 애틋한 눈빛이 전부. 카리스마 최선생이 작아지는 순간!
'골든타임'의 가장 큰 수확은 바로 이성민의 발견이 아닐까. 배역마다 늘 캐릭터에 녹아났던 연기 잘하는 배우가 드디어 물을 만났다. 전작 '더킹 투하츠'에서 인간미 넘치는 왕 이재강 역으로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던 이성민은 헌신적이고도 열정적인 외상전문의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파고들었다. 이번 '골든타임'은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해 온 이성민의 첫 주연작. '저 사람 누구야'로 시작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왜 이제야 저 사람을 발견했나'라는 탄식으로 이어졌다.
◆황정음
그녀는 은수저를 세트로 물고 태어난 병원 이사장집의 하나뿐인 외손녀. 서울 내로라하는 의대를 졸업했으나 부산 사는 남자친구를 찾아, 열정적 외상외과의 최인혁에게 반해 억지로 부산 해운대 세중병원에 인턴으로 지원한다. 강재인의 배경을 몰랐던 동료들은 할아버지가 쓰러진 뒤 임시 이사장이 된 그녀에게 기함한다. 그러나 이사장으로서도 능력을 발휘하며 신뢰를 얻어간다. 동료 인턴 이민우와는 우정인지 애정인지 모를 신뢰를 쌓아간다. 똑 부러지는 강단 있는 성격에 이지적이고 성실함까지 갖춘 엄친딸. 드라마 속 엄친딸은 남자들과 문제를 일으키거나 돈 욕심에 눈이 뒤집히는 줄만 알았던 편견을 그녀가 뒤집었다.
멋진 아가씨 강재인 역을 맡은 이는 바로 황정음. 드라마 초반 부산 사투리를 실생활로 구사하는 베테랑 배우들 사이에서 생기발랄한 신세대의 대표주자인 황정음은 이질적인 존재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극이 전개될수록 캐릭터에 녹아든 그녀는 '골든타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히로인이었다. 절제된 연기로 완벽녀 강재인을 그렸다. 황정음 스스로도 '지붕뚫고 하이킥' 이후 '자이언트', '내 마음이 들리니', '골든타임'까지 드라마 연타석 승승장구를 이어갔다.
◆송선미
신은아 선생은 산전수전 다 껶은 최인혁 선생의 단짝이다. 베테랑 간호사로서 최인혁을 늘 곁에서 지켜보며 그 열정을, 신념을 몸으로 배웠다. 이렇게 하면 병원에서 싫어하는 줄, 저렇게 하면 심평원이 트집잡는 줄 다 알면서도 묵묵하게 제 몫을 해낸다. 실의에 빠진 최교수를 위로한 것 또한 은아 선생의 몫이다. 든든하고 사려 깊은 약혼자가 곁에 있지만 결혼해 캐나다로 떠나려니 축 처진 최교수의 어깨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이전 애정일까 동료애일까 동정일까. 결국 약혼자는 그녀를 떠났다.
배우 송선미. 슈퍼모델 선발대회를 통해 데뷔했으며 드라마 '모델'로 연기자 신고식을 치른 경력 15년의 배우. 그간 홍상수 감독의 영화, 일일극과 가족극을 오가며 탄탄히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다져왔던 송선미의 공력이 드디어 터졌다. 무뚝뚝하지만 사려깊고 열정적인 간호사 은아 선생을 더도 덜도 없이 딱 그만큼 표현해낸 송선미. 군더더기 없는 연기에 본토 부산 사투리가 더해진 그녀의 은아 선생은 별다른 대사, 몸짓 없이도 말로 표현 못할 그녀의 복잡한 감정을 고스란히 전했다. 시청자는 배우 송선미를 재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