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 감독 "'남영동', 3000만명이 봤으면 좋겠다"(인터뷰)

전형화 기자  |  2012.11.08 10:12
사진=임성균 기자 사진=임성균 기자


'남영동 1985'는 고(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1985년 9월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22일 동안 고문당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대선을 코앞에 둔 11월22일 개봉한다.


'남영동 1985'는 개봉 시점과 영화 내용, 그리고 참여한 사람들 면면 때문에 정치적인 영화라는 선입견을 준다. '부러진 화살'을 올 초 내놓은 정지영 감독은 발 빠른 행보로 '남영동 1985'를 선보이며 "이 영화가 대선에 영향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남영동 1985'는 정치적인 영화일까? '남영동 1985'는 '색,계'의 베드신이 관객의 허리채를 잡고 끌고 가듯, 고문의 강도를 더해가며 관객을 그 현장으로 몰아간다. 관객을 고문에 동참시킨다. 무심히 이 일들을 잊혔던 사람들에겐 기억을 되돌리게 만들고, 몰랐던 사람들에겐 아픔을 느끼게 만든다.


과연 '남영동 1985'는 대선에 영향을 주려고 만든 영화일까, 아니면 과거를 기억한 채 어떤 방향이든 앞으로 나가자는 영화일까? 정지영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남영동 1985'는 프로파간다(선전영화)인가. 혹은 순교자를 위한 영화인가.


▶지금이 정치의 계절이고, 내가 이 영화가 대선에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그러면서 선입견이 생긴 것 같다. 또 이 영화 실제 주인공이 누구인지 사람들이 알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 선입견을 지운다면 영화를 온전히 볼 수 있을 것 같다. 고 김근태 고문이 남영동에서 겪은 22일은 영광의 22일이 아니다. 굴욕의 22일이었다. 결국 살기 위해 시키는 대로 다 하고 나온 게 아닌가. 그런 기억들을 과연 용서할 수 있을까 묻는 이야기이다.

-왜 이 시점인가.

▶이렇게 고통스럽게 지켜내고 얻어낸 민주주의가 마구 훼손되고 있는데 사람들은 남의 일인 양 지켜보고 있는 게 오늘날의 상황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통해 그 아픔을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도 이 영화를 프로파간다로 본다면 그것도 O.K. 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편적인 희망을 담고 있다.


-김근태 고문 역할을 맡은 박원상이 실제 고문을 체험하면서 연기를 했다. 배우의 열정에 박수치기도 하지만 배우의 열정과 목숨을 담보로 찍은 게 아닌가.

▶맞다. 영화감독은 그래서 독해야 한다. 이번 영화는 30년 동안 영화하면서 가장 아팠다. 박원상한테 도저히 못 참겠으면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건 최대한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으라는 소리였다.

-영화를 기획하고 돌입하는 것과는 별개로 고문 장면을 기술적으로 찍어낼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나. 그 만큼 영화 속 고문장면은 사실적인데.

▶확신이 없었다. 고문 장면을 최대한 디테일하게 찍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 표현에 관객이 아파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찍으면서 점점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일단 그 장면이 내가 힘드니깐 관객도 아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전작 '부러진 화살'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편집돼 이야기를 끌어갔다면 '남영동 1985'는 고문의 강도에 따라 롱테이크까지 다양한 기법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던데.

▶고문실이란 제한된 공간을 갖고 영화를 끌고 가야 하기에 가장 염두에 둔 부분이다. 그 공간을 시각적으로 담을 수 있는 건 다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카메라가 갈 수 있는 곳은 전부 다 갔다. 관객이 같은 장소를 영화 내내 보더라도 지루하지 않고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고문기술자 역의 이경영이 박원상에게 고춧가루를 탄 물고문을 하는 장면은 롱테이크였다. 연기한 사람도 찍는 사람도 정말 힘들었을 것 같은데.

▶그 장면을 37초 찍었다. 세 번 찍었다. 정말 힘들었다.

사진=임성균 기자 사진=임성균 기자


-원래 고문에 관한 영화를 찍으려다가 김근태 고문의 자전책인 '남영동'을 읽고 이 이야기로 방향을 바꿨다고 했다. 왜 고문에 관심이 있었나.

▶고문 가해자 이야기가 원래 하고 싶었다. 예전에 '붉은 막'이라는 고문에 관한 책이 있었다. 장선우 감독이 영화를 준비하다가 압력 받아 무산된 적이 있다. 집에서는 평범한 가장이, 직장에 가서는 고문을 하는 그런 이야기가 무척 와 닿았다. 그런 이야기를 준비하던 중에 '남영동'을 읽고 이 이야기는 책 자체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에 방향을 틀었다.

-'남영동 1985'에선 고문하는 형사들이 진급과 연애에 고민하는 평범한 사람들로 그려진다. 그들 역시 시대의 피해자라는 시각인데. 시대의 공범자 아닌가.

▶이 영화에는 공범의 범위가 다 나온다. 문성근이 연기한 시대의 적극적인 공범자가 있는가 하면 명계남이 한 출세를 위한 공범자도 있다. 현실이 뭔지도 모르고 먹고 살려고 하는 공범자도 나오고. 자신의 고문기술을 예술이라고 하는 이경영도 나온다. 마지막에 이경영이 이성을 잃을 때 비로소 공범자의 범위에 선이 그어지도록 만들었다.

-에필로그에 복지부장관이 된 김근태 고문이 구속된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만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에서 김근태 고문의 선택을, 감독이 그대로 옮긴 이유는 뭔가.

▶실제 팩트니깐. 영화적인 가공을 더하지 않아도 그 팩트가 더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김근태 고문은 이근안을 용서할 수도 있는데 왜 용서하지 못했냐고 자책한 사람이다. 나중에 한 목사님이 그건 당신의 몫이 아니라고 하기도 했다. 나는 그 지점이 아니라 용서를 했다고 용서가 되는 문제인지 이 시대에 던진 질문이다.

-'부러진 화살'은 정치성향을 떠나 사법부에 대한 공통적인 불만이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다. '남영동 1985'는 많은 사람들이 보라고 만든 게 목적이지만 결국 그랬던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 보고 더 공고해져도 다른 쪽에선 외면받을 수도 있지 않겠나.

▶'남영동1985'가 '부러진 화살'처럼 웃기거나 재밌지는 않다. 그래서 그렇게 잘 들 것 같진 않다. 그래도 내 욕심은 3000만명이 봤으면 좋겠다. 보수든 진보든 다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보수를 선택하든 진보를 선택하든 했으면 좋겠다.

-박원상의 성기가 나오는데. 남성 성기가 나오는 영화가 15세 이상 관람가를 받은 건 처음인 것 같은데.

▶그렇다. 원래는 12세 이상 관람가로 신청했는데 말이다.(웃음) 나체를 보고 폭력성과 음란성이 생기는 게 아니니깐. 12세가 봐도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에 쉬지 않고 전철소리가 들리는데. 에필로그에는 실제 전철이 지나가는 장면이 나오고. 역사의 진행을 의미하는지.

▶그렇다기보단 그 당시 남영동에 끌려간 사람들은 전철 소리도 남영동인 줄 알았다. 남산이나 서빙고엔 기차가 없으니깐. 그래서 당시 남영동에서 고문을 받았던 사람들 중 기차소리만 들어도 패쇄 공포를 느끼는 사람도 있다. 에필로그에 전철이 등장하는 건 김근태 고문이 그 전철을 보고 과거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현재만 봤다면, 전철을 안 봤다면 이근안을 용서했을 수도 있다.

-꼭 한 명에게만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면 누구를 보여주고 싶나.

▶박근혜 후보. 이유는 다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영화는 언제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

▶'남영동1985'가 너무 힘들어서 2년 정도 뒤에 만들고 싶다. 이번에는 분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사람들이 '남영동 1985'를 보는 것과 이번 대선에 투표하는 것과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라고 하고 싶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영화를 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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