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구혜정 기자
이만하면 밉상 연기에는 도가 튼 것 같다. MBC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에서 뻔뻔하고 얄미운 경민을 연기한 지 올해로 딱 10년이 됐다. '마이 리틀 히어로' 속 김래원의 모습은 마치 그 때의 그를 떠올리게 한다.
하는 짓은 얄밉지만 어딘지 인간적이다. 종종 보이는 철이 덜 든 모습이 측은하기까지 하다. SBS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 매번 몰아치는 감정을 연기해야 했던 김래원은 편안하고 따뜻한 영화 '마이 리틀 히어로'로 10년 전의 미워할 수 없는 밉상의 모습을 되찾았다.
20대였던 그 때와 30대에 들어선 지금, 같은 '밉상 캐릭터'지만 그가 느낀 작품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 젊은 시절 홀로 빛나고 싶었던 김래원은 이제 남을 빛내며 자신도 함께 빛나는 법을 배웠다.
오는 9일 '마이 리틀 히어로' 개봉을 앞둔 김래원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어제 밤,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는 그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영화에 대한 짧은 감상과 함께 '정말 얄밉게 밉상 연기를 잘한다'는 말을 건넸다. 그는 '미워'보이는 것도 '얄미워'보이는 정도를 잘 지키는 것이 힘들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얄미운 것과 미운 건 다르잖아요. 그걸 잘 맞추기 위해 신경 썼어요. 너무 미워져서 반감을 사게 되면 후반부에 감정 이입이 안될 수도 있으니까. '허세'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어요. 시나리오에서는 오히려 귀여운 허세 같은 것 보다는 정말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재미있게 하니까 밉상인 것이지 사실은 원래 굉장히 이기적인 사람이었어요."
군대 전역 후 첫 영화, 편한 길을 선택 할 법도 한데 김래원은 짊어져야 할 무게가 상당한 '마이 리틀 히어로'를 선택했다. 기댈만한 톱스타도 없고, 또 다른 주인공은 연기 경력이 전무한 아이인 '마이 리틀 히어로'는 김래원에게 하나의 도전이었다.
"예전에 아역 배우와 작품을 하려고 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자신이 없었어요. '나 하나도 감당하기 힘든데'하는 마음이 있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언뜻 생각이 섰어요. 배우들이 가끔 자기 몫 이상을 할 때가 있어요. 모든 신에 다 욕심을 부리니까 나도 헷갈리게 되는 거죠. 이번 영화는 아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니까 그런 조율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결과적으로 아이가 어느 한 부분에서 잘 살아주면 그 힘이 내게까지 영향을 미치니까요. "
ⓒ사진=구혜정 기자
언론시사회에서 김성훈 감독이 "김래원은 원래 얄밉다"고 했던 발언이 생각나 평소에도 일한과 닮은 구석이 있는지 묻자 그는 오히려 감독이 정말 얄밉다며 목소리 톤을 높였다.
"감독님이 정말 얄밉다니까요.(웃음) 스태프들한테 다 물어보면 감독님이 제일 얄밉다고 해요. 터울 없이 편하게 지내면서 다 이용해요. 격 없이 지내면 부탁 할 때도 쉽잖아요. 유일한을 연기하면서 감독님을 보고 연기한 부분도 있어요. 감독님이 이렇게 얄미운 건 모니터로 하도 유일한을 많이 봐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한참 감독의 얄미운 면을 털어놓던 김래원, 마지막에는 김성훈 감독의 연출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 넉넉지 않은 예산으로 대규모 뮤지컬 신을 만들어내고 미국 브로드웨이 로케까지 실현시킨 것은 김성훈 감독의 공이 컸다.
"사실 이만한 예산에 이런 영화를 찍었다는 건 감독님 능력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원래 미국 촬영도 못하는 것이었는데 감독님이 딱 5일 일정으로 최소한의 스태프들만 데리고 가셨어요. 아마 그때 현지인들은 저희를 보고 학생들이 독립영화 찍는 줄 알았을 거예요. 5일 만에 미국 분량을 다 찍어야 했으니 아쉽기도 하죠."
지금까지 김태희, 수애, 려원 등 미모의 여배우들과 로맨스 연기를 주로 해왔던 김래원, '마이 리틀 히어로'의 조안과는 어째 러브라인이 분명하지 않은 느낌이다. 김래원도 그 부분을 아쉬워했다.
"로맨스를 좀 더 살리고 싶었는데 감독님은 이 정도가 적절한 선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런 제 영역이 아니니까요. 아는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정도로만 표현하셨어요. '이 정도만 해도 알 사람은 다 안다, 아님 말고' 이런 마인드 이신 것 같아요.(웃음)"
ⓒ사진=구혜정 기자
'마이 리틀 히어로'는 뮤지컬에 도전하는 영광(지대한 분)의 성장 드라마이기도 하지만 철없는 어른 유일한이 잃었던 열정을 되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에게도 일한처럼 뜨거운 시절이 있었을 터, 배우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시절을 묻자 "지금이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잘 모르겠어요. 이제 좀 더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달라진 건 연출자와 할 얘기가 많이 생겼다는 거예요. 굉장히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몸으로 막 잘하려고 노력했다면 지금은 좀 많이 생각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쥐어짜내서 보여주려고 하는 그 자체를 싫어해요. 그래서 과한 걸 많이 빼려고 했어요. 일부러 촬영 전에 어떤 준비도 안 하기도 했어요. 너무 준비하면 또 안될 것 같아서요.(웃음)"
브로드웨이 진출만을 꿈꾸며 달려온 일한, 김래원에게도 일한처럼 앞만 보고 달리게 하는 목표가 있을까? 그는 "그렇게 까지는 말고 슬~슬하면 될 것 같아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지금은 여유가 생겼어요. 목표는 있죠. 정-말 좋은 작품을 두 작품 정도 하는 거예요. 스스로도 정말 만족할 수 있고 나중에 내 아이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작품이요. 전에는 단순히 욕심만 보였다면 지금은 '의욕'인 것 같아요."
군인에서 사회인이 된지 사흘 만에 드라마 '천일의 약속' 촬영에 들어가 곧바로 영화 '마이 리틀 히어로'까지 쉴 틈 없이 달려온 김래원. 2013년 상반기에는 휴식이 절실하단다.
"너무 많이 지쳐 있어요. 쉬면서 책도 많이 보고 여행도 하고, 내년 상반기에는 좀 쉬면서 지내고 싶어요. 이래놓고 좋은 시나리오 들어오면 또 바로 영화에 들어갈지도 모르지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