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 신수원 감독 "현실은 훨씬 잔혹하죠"(인터뷰)

영화 '명왕성' 신수원 감독 인터뷰

안이슬 기자  |  2013.07.07 14:57
신수원 감독/사진=최부석 기자 신수원 감독/사진=최부석 기자


지난 해 칸국제영화제, 모두가 임상수 감독과 홍상수 감독의 수상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이 낯선 이름의 한국 여성 감독이 '순환선'이라는 단편영화로 까날플러스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그 감독은 이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장편영화 '명왕성'으로 제너레이션부문 특별언급상까지 품에 안았다.

첫 장편 '레인보우'를 내놓은 지 3년, 신수원 감독(46)은 영화계 화제의 인물이 됐다. 해외영화제 라인업을 볼 때면 신수원 감독의 이름부터 유심히 찾을 정도다. 지난 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후 베를린국제영화제 관객까지 만났던 '명왕성'이 드디어 국내 관객을 만난다. 신수원 감독의 영화가 일반 관객을 만난다는 것에 이상하게 기자도 설렜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신수원 감독을 만났다. 사진을 촬영하는 내내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얘기를 꺼내며 호탕하게 웃는 신수원 감독은 에너지가 넘쳐보였다.

최근까지 신 감독의 마음을 졸이게 했던 등급문제, 많이 놀랐겠다고 하자 신수원 감독은 웃음과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언론시사회가 있던 날이 영등위의 재분류 심사 결과가 나오기로 한 날짜라 그날은 거의 '멘붕'이었단다.

"청소년관람불가 나올 것이라고는 정말 예상을 못했어요. 사제 폭탄 같은 부분이 문제였다는데 사실 현실은 훨씬 더 잔혹하잖아요? 학생이 사제폭탄을 만들었던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했고요. 영화제에서도 확실히 아이들이 공감을 많이 했고요. 아이들의 얘기잖아요. 뭐, 어쨌든 결과적으로 영화 홍보에 도움은 됐네요(웃음)."

영화 '명왕성'은 명문 고등학교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유진(성준 분)이 살해되며 준이 용의자로 지목되며 학교에 비밀리에 존재하는 상위 1% 학생들의 스터디 그룹의 정체를 들여다보는 과정으로 흘러간다. 실제 교사로 근무하며 학생들의 현실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봤던 신수원 감독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소설로 쓸까 했었어요. 교사 생활을 하면서 꼭 이런 이야기를 소재로 뭔가 해봐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그냥 폴더에 가지고만 있는 수준이었죠. 교사로서 좀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는데 이런 아이들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정말 학교가 싫어서, 견디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어요. 그런 아이들이 극단적으로 가면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겠구나 했어요."

신수원 감독/사진=최부석 기자 신수원 감독/사진=최부석 기자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그 뒤에 숨겨진 사건을 파헤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명왕성'은 마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하다. 사실적인 묘사를 주로 담는 보통의 스릴러 영화와 달리 '명왕성'은 폭력적인 부분을 대부분 에둘러 표현했다. 예산 문제도 있었지만 감독의 의도도 반영되어 있었다.

"일단 막 폭발하고 그런 스케일 큰 장면은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아예 시도조차 안했어요(웃음). 예산 문제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꼭 직접적으로 보여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꼭 사실적이라고 해서 이해가 높아지는 건 아니니까요. 정말 자제하면서 찍은 것인데 청소년관람불가가 나와서 놀랐죠."

전교 10등 안에 드는 학생들만 모여 있는 진학재, 거액을 받는 '일타강사(일번타자 강사)' 등 '명왕성'에는 과도한 경쟁을 표현하는 많은 장치들이 등장한다. 교사로서 본 '명왕성'은 얼마나 현실에 가까운지 물었다. 신 감독은 등장하는 대부분의 소재들이 실제와 똑같다고 답했다.

"영화의 리얼리티요? 대부분 다 사실이에요. 진학재 같은 특별반이 실제로 존재하고, 몰래 보는 오답노트나 가산점에 연연하는 모습, 시험 끝나고 항의하는 장면, 일타과외 같은 것들은 사실이죠. 영화의 극단적인 부분은 현실에 기반을 둬야하기 때문에 디테일한 부분들을 많이 반영했어요."

영화의 제목이자 테마로도 자주 등장하는 '명왕성'. 질량부족과 궤도 불안정을 이유로 태양계에서 퇴출된 명왕성, 영화는 그렇게 중심에 들어가고자 하는 아이들의 항변을 명왕성에 빗대어 표현했다.

"처음 제목은 '토끼사냥'이었어요. 토끼사냥을 어떻게 하는지 얘기를 들었는데 영화에서처럼 한곳으로 몰아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테마로 했어요. 그러다가 몇 년 전에 명왕성 퇴출됐던 걸 알게 되면서 괜찮다, 주제랑 통하겠다 싶어서 써보기로 했죠. 명왕성이라는 테마가 생기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어요. 준이 과학에 관심이 많은 것도, 천제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거도 다 달라졌죠. 업그레이드를 한 번 했어요."

신수원 감독/사진=최부석 기자 신수원 감독/사진=최부석 기자


'명왕성'은 새로운 얼굴들을 발굴하는 재미 또한 남다르다. 상위 1%를 꿈꾸는 주인공 준을 연기한 이다윗, 매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유진을 연기한 성준, 비밀 스터디 그룹의 비밀을 파헤치려하는 수진역의 김꽃비까지 안정적인 연기로 무거울 수 있는 '명왕성'을 이끌었다.

"다윗은 '시'에서 보고 연기가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로맨스 조' '고지전' 등등 다윗이 나온 영화는 다 봤죠. 성준은 '화이트 크리스마스'에서 보고 캐스팅 했어요. 그 작품에 그 나이또래 신예들이 다 있더라고요. 김꽃비는 워낙 연기를 안정적으로 잘하니 캐스팅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20대 초반으로 봤는데 알고 보니 20대 후반이더라고요. 걱정은 좀 했는데 교복을 입혀놓으니 영락없는 고등학생이었어요."

이미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제너레이션부문 특별언급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명왕성'. 신수원 감독은 칸국제영화제에 이어 베를린국제영화제까지 2년 사이에 세계 3대 영화제 중 두 곳에서 상을 받았다. 베를린에서의 반응을 묻자 감독은 "반응이 굉장히 뜨거워서 놀랐다"고 답했다.

"칸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는 당연히 기분이 달랐어요. 칸영화제는 단편이었으니 큰 부담 없이 갔지만 베를린은 장편을 들고 갔으니 부담이 생기더라고요. 베를린에서 '명왕성'을 상영할 때 정말 놀랐던 것이, 반응을 굉장히 뜨겁게 보여주더라고요. 현지 학생들도 영화를 보러왔는데 꽤 공감하더라고요. 그들도 우리처럼 심하지는 않지만 입시 경쟁 같은 풍토가 있나보다 싶었죠."

지난 해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당시 한 학부모는 영화를 보고 눈물을 보였다. 많은 학생들이 이를 보고 공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신수원 감독은 마지막으로 '명왕성'을 통해 관객들이 '무서움'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보면서 공감하고 함께 느꼈으면 좋겠고요. 어른들도 보면서 분명 생각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명왕성'을 보면서 무서움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그다지 크게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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