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의 외국인 타자로 꼽히는 펠릭스 호세. 이런 타자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일단 여지는 생겼다 /사진=OSEN
한국프로야구에 외국인 선수 3명 시대가 열릴 예정이다. 지난 5일 프로야구 10개 구단 단장들은 2014년 외국인 선수 보유수를 확대하는 안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구단이 늘면서 선수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관중도 늘리고, 경기 질도 높이려면 외국인 선수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제 9구단 NC 다이노스는 내년까지, 제 10구단 KT 위즈는 2016년까지 외국인 선수 4명 보유에 3명 출전으로, 나머지 8개 구단은 외국인 선수 3명 보유에 2명 출전으로 하며, 각 팀은 반드시 1명 이상 야수를 뽑아야 한다.
사실 각 구단들은 외국인 타자보다 외국인 투수들이 적응력이나 영향력 측면에서 더 유리하다는 이유를 들어 최근 2년간 외국인 선수를 투수로 채웠다. 그 이전 해에도 타자는 카림 가르시아(38, 2011년 당시 한화) 1명뿐이었다.
올 시즌 페넌트레이스 관중수는 6,441,855명으로 지난해 7,156,157명에 비해 70만 명가량 줄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과 팬들은 거포 부재로 인한 홈런 개수 급감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했다.
결국 이번 외국인 선수 확대시 '야수 1명'을 강제로 영입하도록 한 조치는 토종 거포가 부족한 상황에서 국내 선수들을 단시간에 키워낼 수는 없으니, 외국인 타자를 영입 해 홈런을 늘리고, 한국프로야구의 붐업까지 함께 꾀하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외국인 타자'를 강제로 지정한 부분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외국인 타자가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당연히 기존 선수 가운데 한 명이 자리를 잃게 된다. 이 1군 주전 선수가 자리를 잃으면서, 2군과 3군에 있는 선수들까지 자리를 잃게 되는 연쇄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게다가 아마야구에까지 여파가 번질 수 있다. 현 시점에서도 아마야구는 '거포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우투좌타'로 대변되는 '똑딱이형 타자'들이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구단에서 거포의 자리를 외국인으로 채운다면, 파워를 갖춘 아마 타자들의 프로 진출이 어려울 지도 모른다.
프로농구에서는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 후, 국내 가드+외국인 빅맨 조합은 필수가 됐다. 그 과정에서 토종 빅맨들은 설 자리를 잃었고, 국가대표 경기에서 높이에 밀려 아시아를 호령하던 시절은 과거가 되고 말았다. 대학시절까지 정상급 빅맨이었지만, 프로 입단 후 '장신 슈터'로 변신하는 경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몇 년간 토종 빅맨의 중요성을 깨닫고, 적극 육성에 나서고 있지만, 과거의 성세를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프로야구라고 해서 같은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거포 부재로 인해 외국인을 도입하지만, 이로 인해 아마추어 거포들이 사라지는 악순환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는 의미다. 현 시점에서 외국인 타자를 도입하는 부분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몇 안되는 토종 거포 박병호. 외국인 거포를 영입해 프로야구 붐업을 일으키는 동안, 국내 거포들을 키우는 일이 병행되어야 한다 /사진=OSEN
한편 대승적인 차원에서 한국프로야구의 인기 회복을 위해 외국인 타자를 도입하겠다는 뜻은 좋지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하나 더 있다. '외국인 타자'를 강제로 지정할 것이라면 왜 기존 외국인 2명을 투수 1명+야수 1명으로 하지 않고, '확대'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는지 하는 부분이다. '단시간 내에 거포를 키워낼 수 없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그 부분을 꼭 외국인 선수 자리를 늘려서까지 메울 필요가 있는지 여부는 의문이 생긴다.
'투수 1명+타자 1명'의 구조가 되더라도, 타자들의 자리가 뺏기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나마 투수들이 설 자리는 늘어나게 된다. 이미 기존 외국인 투수들에 의해 토종 투수들은 들러리로 전락한 상태다. 다승 10걸 가운데 외국인이 6명, 평균자책점 10위 안에 외국인이 7명이고, 탈삼진 부분은 10위 안에 8명이 외국인이다.
당장 오승환, 윤석민 등 스타급 투수들이 해외로 빠져나갈 전망이다. 이 자리를 채우기 위한 가장 간단하면서 현실적인 방법은 외국인 투수로 채우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타자 자리까지 하나 더 들려준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현재 일본프로야구는 28명의 엔트리중 4명을 외국인으로 등록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는 전체 28% 정도가 외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외국인 엔트리가 2명뿐이기 때문에, 3명으로 늘린다고 해서 큰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일본, 미국과 사정이 다르다.
우리나라 아마야구 저변은 일본, 미국에 비해 약하다. 일본과 미국은 각각 4,000개, 12,000개가 넘는 고교야구팀이 있지만, 이들이 반드시 프로로 향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에 입단하지 않아도 사회인 야구나 실업야구, 독립리그 등에서 선수들을 흡수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56개의 고교야구팀에 불과하지만, 이들마저도 흡수할 곳이 없다. 10개 프로구단을 제외하면 독립구단인 고양 원더스 정도가 유일하다. 당장 프로에 가지 못할 경우 '먹고 살' 걱정부터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외국인 선수를 늘린다면 아마추어 선수 수급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프로야구계에서 아마추어의 저변을 넓히고 좋은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고사하고, 그들의 자리마저 뺏으려 하는 셈이다.
한국프로야구 외국인 타자 도입에 불을 지핀 발렌틴 /사진=OSEN
외국인 선수 영입 비용 부분도 문제다. 현재 한국 프로야구의 외국인 선수 연봉의 상한선은 30만 달러다. 이 규정을 위반할 경우 5년간 해당 선수 등록이 금지되고, 해당 구단은 당해년도 추가 외국인 선수 영입이 금지된다.
하지만 이 규정을 지키는 구단이 얼마나 있는지 의문이다. 각 구단들은 매년 외국인 선수와 계약할 때마다, "계약금 5만 달러, 연봉 25만 달러에 계약했다"고 밝힌다. 정해진 규정에 맞게 계약한 것이지만, 구단의 발표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몇몇 외국인 선수들은 표면적으로 미국 현지에서 받던 연봉보다 더 낮은 돈을 받고 한국에서 뛰는 경우도 있다. 올 시즌 후반,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던 선수가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런데 연봉이 30만 달러라고 발표 됐다. 메이저리그 최저 연봉인 48만 달러보다 낮은 금액이다. 심지어 해당 선수는 2014년 시즌까지 연봉 50만 달러로 계약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결국 이면계약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들에게 100만 달러(약 10억 7천만 원), 200만 달러(약 21억 4천만 원)를 지급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오히려 외국 에이전트들이 한국 사정을 더 잘 알고, 더 높은 금액을 부르는 실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 선수 자리를 늘리기 전에 이런 실정부터 개선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하면, 또 한 명의 외국인 선수에게 10억 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차라리 외국인 선수를 확대하지 말고, 그 돈으로 국내 선수들과 아마야구에 투자하는 것은 어떤가?
"팬들의 흥미 유발을 통한 한국 프로야구 붐업"을 위한 외국인 선수 확대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길게 봤을 때 악수(惡手)에 가까워 보인다. 블라디미르 발렌틴(29, 야쿠르트 스왈로스) 같은 거포가 필요하다면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춘 외국인 타자를 데려오면 된다. 하지만 '없는 자리 만들어서' 영입하는 것은 문제다. '있는 자리 빼서' 데려오는 방식이어야 한다. 더불어 몸값도 투명하게 데려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