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변석개' 음원차트, 스테디셀러 시대 열리나

[김관명칼럼]

김관명 기자  |  2014.03.23 16:56


예전 가요차트는 스테디셀러가 곧 베스트셀러였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음악사이트 멜론이 집계한 1991년 이후부터 디지털음원이 본격 등장하기 직전인 2003년까지 연간차트 1~3위곡을 짚어보면 된다. 지금도 불려지는 초장기 스테디셀러가 대부분이다. 물론 지금처럼 디지털음원이 아닌 CD, 카세트테이프 시절 이야기다.


▷1991년=내사랑 내곁에(김현식), 이별의 그늘(윤상), 미소속에 비친 그대(신승훈) ▷1992년=10년전의 일기를 꺼내어(봄여름가을겨울), 도시인(넥스트), 아주 오래된 연인들(공일오비) ▷1993년=너를 사랑해(한동준), 방황(이승철), 널 사랑하니까(신승훈) ▷1994년=핑계(김건모), 사랑할수록(부활), 달의 몰락(김현철) ▷1995년=잘못된 만남(김건모), 사랑을 할꺼야(녹색지대), 이 밤의 끝을 잡고(솔리드) ▷1996년=달팽이(패닉), 내가 만일(안치환), 널 사랑하겠어(동물원) ▷1997년=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김경호), 애송이의 사랑(양파), 영원(조관우) ▷1998년=포이즌(엄정화), 그녀와의 이별(김현정), 애상(쿨) ▷1999년=슬픈 영혼식(조성모), 오직 너뿐인 나를(이승철), A'D DIO(양파) ▷2000년=아시나요(조성모), 다 줄거야(조규만), Run To You(DJ DOC) ▷2001년=벌써 일년(브라운아이즈), I Love You(더포지션), 미안해요(김건모) ▷2002년=No.1(보아),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성시경), Never Ending Story(부활) ▷2003년=Break Away(빅마마), 점점(브라운아이즈), With Me(휘성)

1994년 3월 넷째주 한국DJ클럽협회 주간차트에는 이런 기록도 있다. 최근 몇년간의 디지털음원 실시간차트만을 본 세대한테는 상상조차 안가는 기록들이다.


▷1위=핑계(김건모. 10주째 1위. 톱100 진입 18주째) ▷2위=달의 몰락(김현철. 13주째) ▷6위=혼자만의 사랑(김건모. 18주째) ▷7위=내게(이승환. 22주째) ▷11위=약속된 이별(박정운. 21주째) ▷15위=신인류의 사랑(공일오비. 28주째) ▷19위=오렌지나라의 엘리스(28주째) ▷20위=그대처럼(와일드로즈. 42주째) ▷28위=사랑과 우정사이(피노키오. 37주째) ▷43위=겨울비(김종서. 53주째) ▷85위=언제나(김원준. 29주째) ▷91위=그대가 나에게(이승철. 122주째) ▷98위=그대 그리고 나(소리새. 96주째) ▷100위=김성호의 회상(김성호. 122주째)

스테디셀러의 미덕은 많다. 한 계절 이상 가요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노래들이 다수 포진함으로써 가요시장의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스테디셀러 등극을 위해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신곡들이 나올 수 있다, 가요계 종사자들의 창작의욕을 꾸준히 자극시킨다, 화제와 요행과 물량투입만으로 한때 반짝 인기를 모으던 거품이 저절로 제거된다, 이로 인해 가품과 진품이 자연스럽게 판명돼 선순환 구조가 이뤄진다 등등. 또한 요즘 와이드릴리스로 컴백(혹은 데뷔)해 첫주(혹은 첫날) 반짝 하고 마는 블록버스터 가요의 폐해, 너도나도 '실시간차트 1위'나 하루 걸러 '음원차트 올킬'을 앞세우는 '1위 인플레이션'의 폐해 염려도 없다.


스테디셀러가 사라진 이유도 많다. 제작비가 CD보다 훨씬 싼 디지털싱글의 범람, 선공개 및 리패키지, 디싱 형태로 정규앨범 대신 수시로 음원 쪼개팔기 유행, 드라마와 영화 OST(이것 역시 쪼개판다)의 창궐 등 무엇보다 신곡들의 '공급'이 넘쳐난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여기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음악사이트 정액제에 가입하면 100원도 안되는 가격에 따끈한 신곡을 구매하거나 그 10분의 1도 안되는 돈으로 스트리밍을 즐길 수 있으니 굳이 '옥석'을 가릴 필요가 없다. 일단 신곡 나오면 들어보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다른 곡으로 넘어가면 그만인 게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최근 음원차트에는 서광이 조금씩 비추고 있다. 제법 스테디셀러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곡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다음은 23일 오후 4시 현재 멜론 실시간차트다.

▷1위=썸(소유 정기고. 2월7일 발매) ▷3위=Come Back Home(2NE1. 2월27일 발매) ▷4위=벚꽃엔딩(버스커버스커. 2012년 3월29일 발매) ▷6위=Mr.Mr(소녀시대. 2월24일 발매) ▷7위=보름달(선미. 2월17일 발매) ▷16위=Something(걸스데이. 1월3일 발매) ▷19위=금요일에 만나요(아이유. 2013년 12월20일 발매) ▷21위=그대가 분다(MC더맥스. 1월2일 발매) ▷24위=노래가 늘었어(에일리. 1월6일 발매)


물론 이 원동력은 팬들의 '수요'다. 공급과다를 즐기던 풍요의 소비자들이 이제 엇비슷한 '신상'과 '가품'에서 벗어나 '웰메이드 진품'을 진중하게 고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러한 스테디셀러를 주도하는 가수들이 지난해 조용필, 이승철, t윤미래, 성시경을 비롯해 올해 임창정, MC더맥스, 린 같은 '믿고 듣는' 중견인 점, 아이돌 홍수속에서도 음악성과 앨범 완성도를 유지해왔던 2NE1, 걸스데이 같은 A급 아이돌인 점, 에일리, 아이유, 효린 같은 자타공인 가창력을 인정받고 가수들인 점도 이에 대한 한 방증이다. 이밖에 고품질음원의 득세와 스마트폰과 하이파이 헤드폰 시장의 확대로 '내귀를 힐링할 수 있는' 음원에 대한 구매력 높은 욕구가 생긴 점도 거론된다.

아직 스테디셀러 반열 운운은 시기상조이지만 '12집 가수' 임창정이 선전하고 있고, 3월 말~4월 초에는 이소라, 이승환, 이선희, 이은미, 박효신 등 전통의 스테디셀러형 가수들이 대거 컴백한다. 차트 1위가 진짜 1위 대접과 축하를 받고, 실시간차트 대신 스테디셀러 차트가 생길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김관명 기자 minji2002@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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