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는 남자'의 김민희 / 사진제공=CJ E&M
'우는 남자'는 제 2의 '아저씨'라 불린다. '아저씨'의 이정범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액션 스릴러고, 원빈에 이어 장동건이라는 미남 킬러가 주인공이다. 짙은 회색이 깔린 화면에 피가 튀고 총성이 울린다. 스타일은 바뀌었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한 여자를 지키려 마음먹은 킬러의 고군분투가 펼쳐진다.
가장 큰 차이라면 여주인공을 맡은 김민희(32) 그 자체일 것이다. 기댈 곳 없던 소녀 대신 어린 딸을 잃고서도 회사에 다니는 어머니가 여주인공이 돼 전에 없던 분위기를 불어넣었다. 김민희는 M&A 전문가로 활약하는 커리어우먼이자, 예기치 않은 음모에 휘말려 딸을 잃은 어머니 모경으로 분했다. 흐트러짐 업는 차림새를 하고 또각또각 걸어 사무실에 출근하고는 있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딸을 잃은 고통과 상실감에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롭다. 김민희는 가면이라도 쓴 듯한 모습이다. 우연일까. 그녀는 '화차'에서도 보이는 것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여자를 그렸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연기라면 모를까, 경험을 되살리며 연기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었어요. '화차'도 그렇고 그렇게 상상만으로 만들어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재미있어요.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듯 캐릭터도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런 게 더 재미있기도 하고요. '우는 남자'의 모경이는 하나의 감정을 끌고 가요. 복합적이거나 하는 게 전혀 없고, 아이를 잃고, 가족을 잃고, 희망을 놓아버린 그런 감정으로 쭉. 그래서 마치 심장이 멎은 채 움직이는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거기에 살을 붙이고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데 재미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그런 감정을 사람들 앞에서는 표현하지 않고 억누르고 있는 차갑고 싸늘한 공기가 매력적이었어요."
조심스럽게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해 물었다. 아이를 잃은 어머니가 돼 영화를 촬영하고 나서 터진 비극은 그녀에게 더 크게 다가왔으리라. 조심스런 질문에 그녀 역시 조심스럽게 답했다. 영화와는 별개임을 전제하면서. 그녀는 "마음이 크게 아팠다"며 "어찌 제가, 다만 연기를 하면서 그런 인물을 그렸다고 해서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어요."
영화 '우는 남자'의 김민희 / 사진제공=CJ E&M
김민희는 이번 작품으로 대표적인 미남스타 장동건과 처음 호흡을 맞췄다. 극중 두 사람은 시작부터 악연이다. 더욱이 킬러인 곤(장동건 분)이 마지막 타깃인 그녀를 마음먹은 대로 죽이지 못하면서 모경과 곤 모두 드라마틱한 반전과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그 사이 미남미녀의 러브라인이라고 생기지 않을까 기대했다면 잠시 접어두는 게 좋다. 그러나 큼직큼직 부리부리한 장동건과 가녀린 선의 김민희는 서로 뚜렷한 대조를 이루며 괜찮은 어울림을 보여준다.
"설정만 보면 할리우드 영화 비슷하지 않냐 하실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아요. 두 주인공이 전형적이지 않아요. 영화에서 몇 번 안 만나요. 사실 호흡을 맞췄다고 할 수 있는 장면은 딱 한 신이에요. 하지만 내내 현장에 같이 있고, 또 연기하시는 걸 보면서 서로 호흡을 맞췄어요. 그 감정 또한 좋았고요. 그래서 또 다른 매력이 있더라고요. 멜로는 전혀 없고요. 아쉽지 않았냐고요. 다음번에 좋은 기회가 있으면 같이 하려고요."
김민희가 꼽은 '우는 남자'의 관전 포인트는 자신의 분량보다는 이정범 감독의 장점이 묻어난 액션 장면들이다. 직접 연기하지는 않았지만 본인의 촬영이 없을 때도 지켜보며 얼마나 공을 들여 촬영하는지를 실감했단다.
"영화로 보는 것과 굉장히 달라요. 찍는 걸 보면 더더욱. '와'하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장면을 만들어 내려면 한 신을 하루 종일 합을 맞추고 반복해야 하거든요. 너무 힘들고 대단해 보이더라고요. 특히 곤(장동건 분)은 액션 중에서도 감정이 실린 액션을 끌어내야 해서 굉장히 힘들었을 거예요. '제 2의 아저씨'라고 하시지만 조금 더 사람에, 감정에 집중하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해요. 액션 하나하나에도 동작보다 감정, 눈빛에 신경을 쓰고 작업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영화 '우는 남자'의 김민희 / 사진제공=CJ E&M
1999년 가녀린 잡지 모델로 데뷔해 올해로 16년째. 서른 이후 김민희는 더 신뢰받는 배우로 거듭나고 있다. 2012년 '화차'에서는 이전의 삶을 버리고 전혀 다른 삶을 살고자 했던 처연한 여인을 그리더니, 지난해 '연애의 온도'에서는 평범한 직장인이 돼 생활 밀착형 연애담을 보여주며 더욱 입지를 굳혔다. 비슷한 시기 배우로 활동을 시작한 또래의 모델 출신 배우들이 함께 30대 여배우군을 형성한 점도 흥미롭다.
"예전엔 모델 출신에 대한 편견 같은 게 있었어요. 또래 모델 출신 배우들이 똑같이 그런 고민을 가지고 있었을 테죠. 비슷하게 시작해 함께 지금에 왔다는 게 기분이 좋아요. 다만 지금 결정적 시기를 맞았다, 중요한 시기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거 없어요. 그럼 나머지들은 중요하지 않은 게 되어버리잖아요. 그냥 매 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뭐 하나가 너무 특별할 것도, 중요할 것도 없어져요. 그래서 저도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제가 노력하고 예상했던 것과 다르더라도 실망도 적을 수 있고요. 돌이켜보면 늘 그랬어요. 저는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김현록 기자 roky@mtstarnews.com